밭에서 가져온 흙을 큰 플라스틱 대야에 붓고
화원에서 푸대로 사온 거름을 섞고
분갈이 할 화분의 흙들도 차례로 쏟아내어
화초의 몸집에 맞는 새집을 선물하는 중이었다.
여러해동안 멋진 자태를 뽐내며 겨울을 화사하게 빛내주던
군자란이 올해는 꽃을 피우지않고 새끼들로만 곁가지를 쳤다
"야~가 올해는 꽃도 보여주지않고,내 마음을 쓸쓸하게 하는구나"하며
흙을 쏟아내려는데 도무지 요지부동이다
화분이 크기도 하거니와 주둥이 부분이 좁아서 힘이 든다
흙을 살살 달래어가며 파내고
꺼꾸로 들어보기도 하고 화분과 나는 실랑이를 벌였다
내 등살에 못이겨 "쑥"하고 흙덩이가 빠져나오는데 아뿔사
내가 본것은 한덩어리로 얼켜있는 뿌리였다
헛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아이 손가락 굵기정도의 뿌리가 얼키설키 스크렘을 짜고
흙 아래에서 피나는 전쟁을 하고 있었다
군자란은 겨우내 꽃대를 밀어올려야하는 본연의 임무보다
흙아래로 뿌리를 뻗어가는일에 열중하느라 꽃을 피우는 일을 잊은것인가?
몸집에 비해 턱없이 좁아진 화분안에서 여러개의 새끼를 치고
살아남기위해 서로 뿌리만 열심히 내린것 같았다
꽃만 쳐다보고 푸른잎만 바라보며 좋아할 것이 아니라
진작에 새끼들을 나누고 좀더 큰 화분으로 옮겨줬어야했다
내 무관심과 무지를 탓하며 칼로 포기를 나누며 뿌리들을 정리하면서
사람의 사는 일도 이와같은 것인가?
우리는 살면서 뿌리가 중요하다고 뿌리를 잘 내리도록 노력해야한다고
스스로에게 말을 하기도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나 넘치는 것은 모자람보다 못한것
"사랑"이란 뿌리를 내 마음속에 내리게 하고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내 가족 내 이웃 내 벗들을 내 울타리안에 묶어놓으려 한 적은 없었던가
각자 스스로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넉넉히 주었을까?
한가지 일에만 치중하여 내가 해야 할 다른 의무들을 잊고 있는것은 아닐까
빡빡한 뿌리들를 정리하고 넉넉한 화분에 흙을 넣고 군자란들을 심었다
그제서야 군자란이 제대로 숨을 쉬며 편안해하는거 같아 보이는건
내 마음에 뿌리내린 쓰잘떼기없는 고집과 아집,사랑이란 이름의 집착들을
함께정리한 때문일까?
뿌리를 내리는것만이 인생의 성공이 아닐것이다
가지를 뻗고 잎사귀를 내고 꽃을 피워 그윽한 향기에
새들이,벌과 나비가,모일 수 있다면
사람이 쉬어갈 수 있는 한뼘의 그늘이라고 만들 수 있다면
그때서야 이땅에 뿌리를 내린 "나"도 비로소 행복해 질 것이다
어느 한곳에 치우치치않는 중용의 美를 생각해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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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바다
2004-04-23
저는 님의 글을 읽으면서 잠깐 삶의 여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군자란의 뿌리처럼 너무 빽빽한 뿌리로 숨조차 쉴수 없었던 공간이 어찌보면 우리들의 삶도 닮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분갈이를 하면서 뿌리를 잘라 어미와 새끼를 나눠 놓으면 그만큼 숨쉴틈의 여유공간이 생기듯 우리들의 삶에 필요없는 가지치기를 해준다면 좀더 넉넉해지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저는 한 열흘전 십여개의 분을 갈아주었습니다...하루 걸렸습니다...ㅎㅎ 베란다를 꾸미면서 말이에요 ^^
꿈꾸는 바다
2004-04-23
동해바다님,저도 님의 생각에 동감한답니다 때로는 설렁설렁한 여유를 부려보고 싶답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가려서 잘라내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것인지요 ㅎㅎ 저도 분갈이를 하고 난 베란다를 바라보며 얼마나 흐뭇하던지요 참나리꽃을 사가지고 왔거던요 주황색을 고운 자태도 자태지만 그 도도하고 은근한 향이 사람을 환장하게 하더군요 님의 꽃밭에도 사랑이 가득하시길 바래요
土心
2004-04-24
두 분의 분갈이 담소가 하도 정겨워서 잠시 끼어 듭니다...그러고 보니 화분 하나 제대로 없는 우리집이 참 썰렁 하군요...바다님들의 말씀이 그대로 법문 입니다...풀 한포기 돌 하나 스승아닌 것이 없다 하더니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않는 바다님들의 참 성품을 이로서 엿보았다 하겠습니다.
그냥
2004-04-24
저는 님의 글을 읽고 그런 생각을 헸습니다 님의 표현 중에 얼키설키 스크랩을 짜 고라는 표현에서
어쩜 이 세상살이가 그런 것 아닐까요 엉킨 울타리에서 상처 주고 상처받고 ...
밥푸는여자
2004-04-24
너무 이쁜 풍경 더하여 마음..공간의 여유로움이 얼마나 좋은 것 일까요..너와 나 사이의 중용의 거리..노력하며 삽니다..
빨강머리앤
2004-04-24
'중용'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을 일인걸 항상 절감하며 살고 있습니다. 님의 글에서 여러 생각거리를 얻습니다. 항상 생각하고 실천하며 자연을 사랑하고 그 자연과 함께 하시는 님에게서 저는 배울것이 많습니다. 분갈이를 직접하시는걸 보니 화분관리를 아주 잘 하시는것 같아 부럽습니다. 그래서 우리집 화분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며 나의 부족함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산골향
2004-04-27
마음을 담아 분갈이하는 꿈바다님의 모습이 정겹게 그려집니다. 꿈바다님의 사랑과 정성의 거름을 먹고 자라는 군자란이 올해는 향기로운 꽃으로 꿈바다님댁에 화사하게 피어나겟지요. 제 방에 올리신 경쾌한 음악 감사드려요. 전 음악 올릴줄 몰라 답답한데 바다님이 올려주신 음악이 어찌나 기분을 좋게하는지 모르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어쩜 이 세상살이가 그런 것 아닐까요 엉킨 울타리에서 상처 주고 상처받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