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틀---------------------------------김순일
얼마만인가 어머니는
형제들이 함께 깔고 덮고 자던
기름때 반들반들한
이불과 요의 솜을 타왔다
군소리 하나 없이 품안에 데리고 살던
땀내 지린내 궁둥내 발꼬락내
보얗게 보얗게 씻어내고
허파 속에 숨어살던 먼지도 몰아내고
아침저녁으로 밟고 뒹굴어서
단단하게 뭉쳐 있는 굳은살을
솜틀에 넣고 얼르고 얼러 타왔다
다시 꿰맨 요에 벌러덩 누워
이불을 덮으면 온몸에서
푹신하고 포근한 사랑이
목화송이처럼 피어올랐다
어둡고 험한 동굴을 지나오는 동안
단단하게 다져지고 뭉친
내 몸뚱이랑
가슴 속에 데리고 사는
온갖 냄새며 먼지며 얼룩진 때를
솜을 타듯 타내어
푹신하고 포근한 이불 요가 되려면
어떤 자궁을 어디서 다시 만나야 하나
계절에 앚추어 옷을 갈아 입듯이
덮고 자는 이불도 춘하추동으로 바뀐다
이불장을 열어보면
이불의 뚜께를 제외하고라도 색깔만으로도
어느계절에 덮어야 할 것인가를 알수있다
붉은색 계통의 꽃무늬 금색의 포인트가 들어간
보기만해도 따뜻해 보이는 겨울이불
노랑과 흰색의 나비가 수 놓아진 이불
분홍바탕에 잔잔한 꽃무늬가 있는 얘들은 봄 이불
흰 인조견을 자잘하게 누벼 연두색 테두리를 두르고
네 귀퉁이에 수를 누빈건 여름이불
그리고 풀을 빳빳하게 해서 덮는 한 여름 삼베이불
갈색톤의 스프라이트 무늬의 이불은 역시 가을용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아기때 사용했던 이불 한채
이불이 간직한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까
한겨울 연탄을 때던 그 시절에는
방바닥에 늘 이불을 깔아놓았다
누구든지 밖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은 이불안으로
손을 쑤욱 집어넣으며 발을 쑥 집어넣으며 따뜻해했던 기억들이 있을것이다
목까지 이불을 단정하게 덮고는 이제 그만 자자는 말을하면서도
형제들과 이불속에서 서로 간질이며 발가락 장난을 하던 이불속
할머니의 젖가슴을 서로 만지려고 엉석을 부리던 이불속
무서운 귀신이야기는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하는 이불속 단골메뉴
어쩌다 친구랑 나란히 자기도 하는 날이면 밤새 쏘곤대느라 잠 못들던 이불속
때로는 이불속에서 남 몰래 흘리던 눈물을 기억하는지요
어릴땐 엄마에게 혼이나서 울고
사춘기땐 토라진 친구땜에 마음이 아파 울고
청춘시대엔 헤어진 그 사람의 기억때문에 울고
지금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등 돌리고 울때가 있지요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루를 끝내며
행복한 마음으로 이불을 끌어 당기도록 해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을 생각하며
내일의 밝은 희망을 이불과 함께 나를 덮도록 해 주자고요
모든것을 덮어주고
모든것들을 포근히 감싸주고
모두에게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주는 이불에게
오늘은 너의 노고를 치하한다는 한마디 말을 해주고 싶답니다
이불장을 정리하며 해보는 생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