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게 실비가 내리는 아침, 이 비 그치면 겨울이 오려나
허긴 입동이 지난지도 열흘, 바람마져 선득선득 불어오니
사십중반 여인네의 몸은 날씨의 변화에 가장 먼저 예민해지나보다
여기 저기가 찌뿌둥,머리속은 뒤죽박죽,마음은 가을이 갔구나,또 한 해가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심란스럽기만 하다.
비는 오락가락하다 제 풀에 지쳐 그쳤지만
여전히 음산하고 우울한 잿빛 날씨,이런날은
가만히 있기만해도 좋을 친구랑 뜨끈뜨끈한 온돌에 등을 지지고
배를 깔고 누워 준비되지않은 영순위의 수다를 떨고싶다.
폰번호를 야무지게 꾹꾹 다져'나 좀 구제 해주라,찜질방 가자'
ok싸인이 떨어지고 나도 12-6시까지의 외출증 도장을 찍었다
광안대교를 건너고 장산터널을 서너개지나
바다가 납작하게 엎드린 송정 바닷가 언덕배기에 차를 세웠다.
***황토찜질방
평일이라 그런지 북적대지 않고 단촐한것이 마음에 들었다
저온 황토방의 문을 여니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온돌의 따끈따끈함과
솔가지의 상쾌한 향이 코속을 통과해 몸속을 누비고 다닌다
일상을 떠난 여유와 편안함이 노골노골 가라앉는 몸과는 다르게
유머가 되어 입 밖으로 나온다
얘,눈이 녹으면 뭐가 되지? 넌센스야
물
아니지,봄이 되는 거란다
내가 너 땜에 못사러(못살어).......
아니 왜 못살어
ㅋㅋㅋ 내가 너 땜에 못사러 ..................철물점 간다[막녀야 언니 잘했지]
후후..
얘,저 천장보니까 옛날 시골집 천장이랑 똑같이 생겼지,그러면
시골 이야기가 왕창 쏟아져 나오고
우리 남편 나이가 내년이면 쉰살이란다,그러면
남편 이야기가 와르르 쏟아지고
그러다 다른사람이라도 들어오면 공공의 예의상 입을 다물다
다른방으로 자리를 옮긴다.
맥반석이 있는 방은 동쪽이 완전히 창으로 되어있다.
가만히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열기가 후끈 달아올라 뺨이 홍조를 띠고 넓은 방에 둘만 있으니 방도 침묵,
바같의 바다도 침묵이다
철이 지난 바닷가,회색의 하늘이 내려앉아 쓸쓸한 적막감이 도는 바다지만
바람이 불어대는 까닭인지 밀려드는 파도만이
아직 바다는 살아있다고 성깔을 부린다...
홍조탓인지 흘린 땀 때문인지 반질해진 얼굴이 새색시 얼굴이라며
서로를 부추기면서 더 많이 사랑하며 살자고 더 많이 위로해 주며 살자고
다짐을 한다
땀을 많이 흘린탓인듯,갈증이 난다
냉녹차 한통씩 들고 서쪽으로 창이 난 휴계실에 앉으니
뒷산 풍경이 고스란히 눈에 잡힌다
흐린 하늘과 소나무들 사이로 듬성듬성 가을의 색을 띤 잡목들이 있는 야트막한 산
그 풍경을 돋보이게 하는 건
찜질방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무때는 연기이다.
연회색의 연기는 나무사이를,색이 바래어 비틀어진 나뭇잎 사이를
기가막히게 빠져 나가고 있었다
'어릴적 동구밖에서 놀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마을의 집 굴뚝마다 솔솔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알고있냐고'친구가 물었다
'나는 시집가던 그해 겨울 시골집에 내려가서야 그 풍경을 볼 수가 있었는데
아직도 그 풍경을 가슴에 담고 있지롱 가슴 뭉클한 따뜻함을 받았다고나 할까'
연기가 주는 매력에 빠져든 친구의 눈동자는 예일곱살이었을 것이고 내 눈동자는
스물 일곱의 나이였을 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마음이 맞다는 것이...
비록 서로가 바빠 반나절의 호사로 끝나는 휴가아닌 휴식이지만
어느 누구의 시간 못지않게 서로의 생활에 활력소가 되어줄 귀한 시간이 아니던가
요란함도 없고 화려함도 없는
그저 서로의 가려운 곳을 알아서 긁어주고
상채기 난 곳은 말없는 토닥임으로 힘을 실어주는 서로이기에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반나절 호사[好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