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묵을 먹으며 내가 녀석의 첫사랑임을 들었다
날씨가
사람을 웅크리게 한다
햇살은 여전한데 바람이 차다
전국적으로 오늘은 추울거란다
그러면 어떡할까
얇은 흰 면장갑을 꺼내어 끼고
파카를 걸치고
산으로 향한다
산은 늘 거기에 있는데
한번도 지겹다 하지않고 산을 오를 수 있음은
내가 하는 생각들이 매번 같지않고
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늘 다르기 때문일거다
오늘은 산의 중턱이라할 수있는
쉼터에 누군가 전을 펼쳤다
'햇 도토리 묵 팝니다'
해마다 시골 계신 이모가
도토리를 주워서 묵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묵을 두부판 같은
사각틀에 넣어 매번 보내주신다
쫄깃하면서 야드리한 그맛
감칠맛나는 양념장에 겨울초를 뜯어넣고
김가루를 좀 뿌려 쓱쓱 비벼 먹으면
아!!
입안 가득 머무는 행복
그저 먹는 즐거움이 제일인거야
내려갈때 사가야지 생각하며 산을 오른다
아닌게 아니라 배도 좀 고프다
공복이 주는 편안함은
먹는 즐거움을 더해주겠지
'잘라놓은거 하나 얼만가요'
3000원이란다
해인사 옆 도토리라는데 맛을 보라며
잘라주신다
'너도 하나 먹으라'며
옆에서 쫄랑대는 귀 두짝과 꼬랑지를
보라와 노랑으로 염색한
애완용 개에게도 인심을 쓰신다
개도 맛있게 먹고
나도 맛나게 먹고
개 주인도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그녀와 내가 눈이 마주쳤다
어~~당신
아니~~자기
웬일이니...
세월이 빠르게 뒷걸음질을 친다
거진 10년의 세월을 넘어
그녀와 내가 있었다
그래 우리는 그렇게 만났었지
그녀는 새로 지은 아파트 입주민이었고
나는 아파트 상가에 입주를 한 슈퍼마켓 안주인이었다
서로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삶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같은곳 같은 시점에서의 시작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친하게 되었다
나이도 비슷했고
결혼도 비슷하게해서
아이들도 그만그만하게 비슷했다
그녀는 집에서 아이들을 모아
피아노를 가르쳤고
나도 처음으로 해보는 슈퍼마켓일에 열심이었다
시간이 나면 그녀가 우리가게 카운트옆에서 커피를 마실때도 있었고
내가 그녀의 집에서 칼국수를 먹을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서로 이사를 가게되고
나도 10년 세월에 몇군데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만나게되었으니
둘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집에 가져갈 묵을 하나씩 싸놓고
한 쟁반을 썰어달래서 산에서 먹으며
그간의 소식들로 말하랴 먹을랴 바빴다
뜬금없이 그녀가 그랬다
자기~~ 헤이 미영씨
우리아들 첫사랑이 누군줄 알아
응 꼬맹이 현수
그때 현수가 여섯살쯤 되었지
그녀석이 처음으로 자기 슈퍼에 다녀오던날
'엄마,슈퍼 아줌마 억수로 이쁘다 진짜 이쁘다'
그런거 자기 모르지
그때 그랬었나 서른 다섯 그해에 내가 이뻣던가
가버린 날들에 대한 아쉬움이여,그리움이여 보고싶음이여
그땐 나를 보는 사람들마다 슈퍼 아줌마 같지 않다고..
그런 말들을 많이 했었지
고정관념속의 슈퍼아줌마란 돈전대를 허리에 메고
부씨끼리한 그런사람이었던가
현수는 늘 이쁜 아줌마라고 불러주었지
자기~~
내가 그때 왜 잠깐이긴 하지만
머리를 길런줄 알아
아니 몰라 왜?
현수가 자기처럼 머리를 길러라고
나보고 얼마나 보챘는지 모르지
ㅎㅎㅎ
진짜야
치사하긴 했지만 머리를 길렀었잖아
자기가 우리 현수 첫사랑이야
첫사랑이란 그 말만으로 황홀해지거늘
나를 그처럼 좋아라 했다는 꼬맹이 현수...
핑크빛의 작은 보석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꼬맹이 현수가 가게문 안으로 들어온다
날렵한 몸매에 눈웃음이 가득한 자그마한 아이
카운트앞에 서서 이것저것 말을 많이 시키던 아이
유치원을 가면서 집으로 가면서 빼꼼 들여다 보던 아이
그애가 나의 작은 사랑이란다
ㅎㅎ
지금 현수가 나를 보면
지 첫사랑의 여인에 대한 이미지가 무너지지 않을까
현수 엄마,언제 현수 데리고 산에 와라
나도 그녀석이 보고싶어지네
지금 한참 커가는 녀석 16섯살의 소년
자기 자신의 꿈과 이상과 현실속에서 혼돈을 겪고 있을 나이
애송이 솜털을 이제 마악 벗어나려는 아이
잠시나마 내 젊은날의 그 시절을 돌아보게 한 녀석
녀석을 만나게 되면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그녀와 나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헤어졌다
그녀는 동쪽으로 나는 산의 서쪽으로
우리는 또 다시 만나게 되겠지
산의 정상에서....
살아가는 날들속에 우연처럼 만나지는 인연들에게 사랑을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