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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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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펼쳐놓은 이야기들


BY 꿈꾸는 바다 2003-10-18

      햇살이 펼쳐 놓은 이야기들 가을 하늘이 참 맑습니다 이렇게 볕이 좋은날은 햇살을 위해 창을 열고 무엇이든 뽀송하게 말리고 싶어집니다 헹궈서 땟물이 빠진 뽀얀 옷들을 빨래줄 가득 널어 까슬까슬하게 마르기를 기다리며 얇은 이불들을 내다널면 따뜻한 공기에 솜들이 적당히 부풀어 올라 바람이 서늘한 가을밤 목언저리까지 끌어올린 이불깃에서 햇살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면 행복 만땅 일텐데요 좋은꿈도 꿀 수 있을텐데요 가을이 가을다운날 햇살을 바라보고 있으면 두루마리처럼 펼쳐지는 기억들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햇살을 살가웁게 느낀건 서너살 무렵 아버지와 함께간 산속의 오솔길 이었을 겁니다 정묘사 앞을 지나 꼬불꼬불 나있는 산길 걸으면서 낙엽도 줍고 들꽃도 꺽어 들었을 테지요 산고개를 넘어서면 눈아래 펼쳐지는 '성지곡 수원지' 햇살때문에 은가루를 뿌려놓은듯 반짝이던 물결들,눈부심 아버지와 난 그곳에 가면 물밤 찾는 놀이를 했었답니다 물밤을 찾아내어 자랑스럽게 웃고 있는 아이의 빰 위로 물밤을 들고있는 두 손위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햇살을 닮은 아이를 바라보며 한없이 마음이 충만했을 지금의 내 나이보다 10년은 더 젊었을 아버지의 얼굴 위 로도 햇살은 와 닿았을 겁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산길을 걸으며 나를 번쩍 안아올려 목마를 태우고 업어주기도 했던 아버지 아버지의 넓직하고 포근한 등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들기도 했었지요 따스한 햇살때문에... 좀더 자란 대여섯살 언니와 나는 선생님이라 부르던 옆집 큰언니와 정묘사로 가을 나들이를 갔더랬지요 정묘사 뜰에 연못이 있었고 무엇에 한눈을 팔았던지 연못에 풍덩 빠져버린 나 놀라 입술이 파래지도록 울었던 나는 겉옷을 벗어 나뭇가지에 걸쳐놓고 언니와 선생님이 절 구경을 끝내고 돌아올 때까지 햇살아래 서 있었지요 등이 따가운 햇살아래서 눈물과 젖은 머리를 말리며 파랬던 입술에 앵두빛이 돌아올때까지 연못속에서 한가로이 헤엄쳐 다니는 잉어떼들을 따라 다녔었지요 그때 그 눈부시게 반짝이던 햇살을 떠올리면 지나간 추억에 웃음이 납니다 가을 햇살속에 등을 구부리고 있는 울엄마는 무얼하고 계시나요 널찍한 장독대 하나 둘 채반을 올려놓고 호박 가지 박 무우 고구마줄기를 말리고 계시네요 동그랗게 길쭉하게 저 생긴 모양대로 잘려서 물기를 머금은 채 햇살을 향해 누워있는 모습은 반들반들 윤이나게 닦여 내 얼굴이라도 비추어 줄 것 같았던 장독들과 어울려 가을속에서 만나는 낯설지않은 풍경이었는데... 이 가을 지금의 나는 어디쯤에서 무엇으로 머물고 있나요 인생의 봄 여름을 다 지나고 가을의 문앞에 서있는 사람 '나' 지금의 나는 또 어떠한 햇살속에서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논두렁 밭두렁 풀잎들 사이마다 주렁주렁 메달려있는 호박들처럼 살아온 만큼의 열매를 메달고 있겠지요 작은 행복들의 열매,땀흘린 보람의 열매, 아이들이 내게준 기쁨들, 친구들과의 우정,그리고 특별한 만남들과 나누는 세상사는 이야기들.... 그러나 삶은 내가 원하는 열매들만 주는 것은 아니지요 새싹이 삐죽하고 올라왔을때 뽑아버려야 했던 것들... 남을 미워하고 눈흘김 했던 마음, 좀 더 너그러워야 했고 이해 했어야 했던 마음 남을 탓하는 마음,원망했던 기억들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했던 괴로움과 갈등들의 열매 환하게 웃음지을수 있었던 열매들은 햇살속에 좀 더 놓아두렵니다 조금 더 튼튼히 실하게 잘 자라라고요 눈을 찌푸리며 울게 했던 열매들을 다 따내어 햇살속에 널어 말리겠습니다 말려서 박제가 된 열매들을 속이 훤하게 들여다 보이는 유리병속에 넣어 햇살좋은 창가에 놓아두고 다시 또 그런 마음들이 생길때마다 바라보며 새롭게 마음을 다지겠습니다. 이런 햇살이면.. 햇살이 좋은 날이면.. 무엇이든 자꾸 말리고 싶어집니다 아! 햇살좋다. 진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