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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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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머리를 염색하며...


BY 행운목 2003-12-18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반추라도 하는 듯 유난히 흰머리가 늘어난 남편의 모습에

"염색좀 해야겠네..."했더니, 남편은 "염색은 무슨 염색..." 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우리 문구점을 찾은 한 아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며칠 전, 퇴근후 남편과 교대한 내게, 가끔 우리 문구점을 찾는 초등학교 2학년짜리

남자아이가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했다.  

"누가 주인이에요?"

"응?"

"누가 주인이냐구요"

"주인?, 그야 아저씨가 주인이고, 아줌마도주인이지..." 했더니, 눈을 꿈벅이면서 "왜요?"

하는거였다.

"아저씨랑 아줌마랑 부부니까 둘이 다 주인이지..." 그랬더니 "에이, 거짓말..." 이러는 거다.

난 너무 황당해서 "왜? 아저씨랑 아줌마랑 부부 아닌 것 같아?" 하고 물어 보았더니

그 아이는 너무도 당당하게 "네."하고 대답을 했다.

왜 그렇게 생각을 했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차마 못하는 거였다.

아마도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남편을 꽤나 나이들게 본 모양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남편도 동안이라 언제나 나이보다는 적게 보곤 했었기에, 남편은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리고는 당장 염색을 해 달란다.

 

아이들 푼돈을 상대하다 보니 돈아까운줄 모르고 펑펑 써대던 남편이, 점심식사 한끼값에도

벌벌 떠는 그런사람으로 변했다.

그러니 당연히 염색도 염색약 사다가 집에서 해 달라고 했다.

그럼 제발 일찍 들어오라는 내 부탁에 밤12시에 집에 들어왔다.

하긴 다른날은 늘 1시나 되어야 들어오니 딴엔 일찍 들어온 터였다.

선잠자다 깬 나는 약간 짜증이 났지만,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남편을 보며 하는 수 없이

염색을 시작했다.

목에 비닐천을 두르고, 영양액을 머리에 바른뒤, 혼합한 염색약을 가는 빗으로 찬찬히 빗질

했다.

하얀 비닐천을 두르고 염색약으로 도배를 한 남편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30분 뒤에 머리 감아" 하고는 난 침대로 들어가 잤다.

 

오늘 아침, 남편의 머리를 보니 초보 솜씨치고는 그래도 꽤 염색이 자연스럽게 잘 되어

있었다.

"아이들 상대하려면 신경좀 쓰는게 아무래도 좋겠지?" 하며 남편이 괜히 멋적은 듯 변명아닌

변명을 한다.

잠을 조금 설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수고로 5년은 젊어진 남편을 보니,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이번 일요일엔 내머리도 염색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