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한장 남은 사무실 달력엔 온통 눈꽃이 뒤덮인 태백산의 설경이 눈이 부시다.
바쁜 아침 시간에 쫓겨 설겆이도 마치지 못한 채 문구점으로 달려 가면서 뒤돌아 볼 시간도
없이, 그저 오늘 하루 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한 자신에게 울컥 화가 치밀었다.
엉망진창인 집안을 볼 때마다, 묶어줄 시간이 없어 풀어헤치고 다니는 딸 아이 머리를 볼 때
마다 그동안 잠잠했던 짜증이 또 고개를 든다.
남편과 나의 추구하는 바가 다르니...
어쩜 그렇게도 남자라는 종족들은 한가지 밖에는 모르는 것인지...
오죽하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일까?
자기야 문구점일 하나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열심히 하면 되지만...
난, 직장일에다, 집안일에다 거기다 문구점까지 챙겨야 하니 아무리 나 자신을 다독이고,
또 다독여도 이렇게 틈만 있으면 어떤 억울함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 것을 어쩔수 없다.
무엇보다 가슴이 아픈건 제대로 돌봐 주지 못하는 딸아이 때문이다.
초등 4학년이면 그래도 자기 일은 자기가 건사해야 할 나이이기도 하고, 요즘 맞벌이 아이
들이 한둘인 것도 아니건만 딸 아이를 볼때마다 왜 이리 마음이 저며오는지 모르겠다.
형제 하나 없이 외동인 것도 마음이 아프건만, 왜 그리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어수룩하고
여리기만 한지,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하는 생각이 들 만치 맑고 깨끗한
아이이다.
얼굴도 자그마하고 오목조목해서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참 이뻐해주는 그런 아이다.
어렸을때는 데리고 나가면 항상 예쁘다는 얘기를 듣곤 하던 아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늘 지나가던 사람들에게서 먹을 거며, 심지어 인형까지 선물을 받고 하던
그런 아이였다.
그런 딸이 2학년이 되면서부터 나는 직장을 다녀야 했다.
딸아이는 남편이 '마마걸'이라고 할 정도로 엄마에게 애착이 강한 그런 아이였다.
오죽 했으면 지금까지 키워오면서 잃어버린 일이 한번도 없을 정도였으니...
그런 딸에게 열쇠목걸이를 채워주고 일을 하러 나가야 했으니...
그애의 상실감이 오죽했으랴...
그 때문이었을까, 딸아이에게서 틱증상이 나타났다.
얼마나 되었던 것일까, 틱이라는게 워낙 여러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아주 눈에 띄는
행동이 아니면 알지 못하고 넘어갔던것 같다.
마침 추석 즈음이라 친정식구들이나 사촌들이 "너 눈을 왜 그러니?" 하는 소리들을 여기
저기서 듣고 난 다음에야 인터넷을 통해 그런 증상이 틱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딸아이를 데리고 신경정신과를 찾아갔고,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아일 데리고, 상담을 받고, 알약을 하루에 한알씩 먹고... 그런 치료를 6개월
동안 받았고 증상은 호전이 되었다.
하지만 이 틱이라는게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이 딱히 있는것도 아니어서 이렇게 증상이 없어
졌다가도 또 나타나기도 한다고 했다.
딸 아일 데리고 신경정신과를 다니면서, 장애를 가진 엄마들 생각을 많이 했다.
그 엄마들의 마음은 얼마나 만신창이가 되었을까...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이 편견 많은 사회
에서 살아내기에...
그 엄마들의 마음 고생에 비하면 난 그야말로 가벼운 감기 앓는 정도 밖에 되지 않으리라.
엄마는 이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가장 자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난 너무나 평범하고 나약한 사람이기에 피곤하면 아이한테 짜증을 냈다.
가뜩이나 살던 아파트 처분하고, 좁은 집으로 이사까지 해야 했기에 달라진 환경에 적응
하기도 힘들었을 아이한테...
한동안 괜찮던 아이가 며칠전부터 눈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그 예쁜코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난 자고 있는 딸을 꼭 안아 주었다.
자는 줄 알았는데 딸이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난 말없이 그 작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딸... 엄마는 널 엄마 목숨보다 더 사랑한단다'
오늘도 난 여린 속살을 등껍질로 감싼 거북이가 되어 못난 남편의 아내로, 소중한 우리 딸의
엄마로 그렇게 하루를 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