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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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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버리 울남편


BY 행운목 2003-10-23

"**문구 아줌마다! 안녕하세요?"

아침. 한손에 도시락을 들고 남편의 문구점으로 향하는 길...

등교길 아이들의 인사를 받으며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며 오늘도 하루가 시작된다.

입구부터 아이들이 복작거리고, 안쪽으로는 늘 허둥대는 남편의 모습이 들어온다.

문구점 오픈 7개월이 넘었건만 남편은 언제쯤 여유로운 모습을 찾을 것인지...

웬지 서툴러 보이고 어설퍼만 보인다.

동네 아줌마들이 누구나 아저씨, 장사 처음이시죠? 할만큼 표가 나는 남편이다.

뭐든 빨리빨리 해야 좋아하는 사람들속에 물건 찾는 것도 느리고, 담아주는 것도 서툴다...

 

7개월동안 남편은 매일 아침7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새벽 1,2시가 되어야 집에 들어왔다.

처음 하는 일이라 모든게 낯설기만 했다.

물건은 알아야 판다는데 이게 뭐에 쓰는 물건인지, 명칭이 뭔지조차 모르고 뛰어들었으니...

사람의 일이라는게 한치 앞을 알 수 없다고, 문구점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해 봤었다.

하던 사업이 실패하고, 사람들에게 질린 남편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뭔가 하려고 알아보던

중, 우연히 집하고도 가깝고, 내 사무실하고도 가까운 그런 곳에 난 이 문구점을 만났던

것이었다.

얼마나 허름하고, 지저분하게 해 놓았던지...

거리가 가깝다는 것, 그리고 학교앞이라는 거만 빼면 별볼일 없는 문구점이었다.

그런데 인연이 있어서였는지 평소 그렇게 깔끔을 떨던 남편이 그만 덜컥 계약을 해 놓았고 -

오래된 건물이라 월세가 싼 것도 크게 작용을 했던 것 같다. - 그후 지금까지 우린 이 도깨비

굴 같은 문구점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바닥깔고, 천장도 새로하고, 매대도 새로짜고, 페인트칠도 새로하고, 가장 포인트를 둔 건

조명이었다.

기존에 침침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돈을 더 투자해서 항상 대낮같이 환하게 바꿔 놓았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쉴 틈없이 바빠진 나 자신을 감당할 수 없었다.

집은 집대로 엉망이지, 딸은 딸대로 엄마손길이 없어지자 생활이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남편은 남편대로 누구하나 도와주지 않는다며 짜증을 부리곤 했다.

남편은 그야말로 문구점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보였다.

오픈하고 지금까지 하루도 쉰 적이 없다.

매장을 새로 꾸미면서도 밖에 물건을 쌓아 놓고 한쪽으로 치워가며 장사를 했으니, 등교시간

이후 한가한 시간에 천장 페인트하고, 저녁시간에 바닥깔고, 여름방학, 휴가철에 나머지

인테리어 하고, 조명바꾸고...

그리고 시아버지 제사에도, 추석날에도, 친정아버지 칠순여행때도 남편은 굳건히 문구점을

지켰다.

 

난 그런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가족의 행복보다 우선인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문구점이란게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매상이 팍팍 올라가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어차피 포화상태인 이 동네에서 기껏해야 몇만원 밖에 더 차이가 나겠는가 말이다.

나는 남편에게 어차피 문구점을 하기로 했으니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좀 여유를 가지고 해보자고 했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그 어떤말도 먹혀 들지가 않았다.

결혼이후로 이렇게 많이 싸워본 적이 없을 정도로 우리는 매일 싸웠고, 난 조금씩 지쳐갔다.

그리고 10월 3,4,5일 남편을 혼자 두고 딸과 함께 친정아버지 칠순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남편이 조금은 느꼈을까.... 그래도 내가 내딴에는 얼마나 열심히 자신을 도와주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남편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친정식구들한테도, 시댁식구들한테도 곱게 보이지 않는 남편...

그야말로 남편은 혼자 외롭게 싸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어떤 자신을 향한 핍박에도 흔들리지 않고, 더할 수 없이 열심히,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남편이 갑자기 너무나 애처롭게 보였다.

그새 희끗희끗 흰머리가 보이는 남편. 잠시도 앉을 틈도 없이, 마음놓고 밥한끼 먹지 못하는

남편.

아무리 어린아이가 오더라도 남편은 손님이 오면 반드시 일어서서 맞이한다.

 

퇴근후 남편의 문구점으로 향하면 언제나 아이들로 복작거린다.

그속에서 남편은 예의 그 서툰 몸짓으로 아이들과 섞여있다.

내가 가서 교대해 주는 그때가 남편에게는 하루중 쉬는 유일한 시간이다.

집에가서 밥먹고, 잠시 눈도 붙이고, TV도 보고...

나는 가능하면 남편이 덜 힘들도록 흩어져 있는 물건도 정리하고, 많이 나간 물건이 있으면

보충도 하고, 깔끔한 남편눈에 차도록 문구점 안을 구석구석 훑어본다.

그러노라면, 한아이가 들어서며 말한다.

"아저씨~, 어 아줌마네. 아저씨 어디 갔어요?"

또, 한아이가 들어온다. "어, 아저씨 어디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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