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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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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결혼식 (1)


BY 행운목 2003-10-13

다음주 토요일 그녀가 결혼식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의 두번째 결혼식이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때 그녀는 다섯살과 2돌지난 두 아들을 둔, 누구하고나 밝게 말

잘하는 털털하고 펑퍼짐한 그런 아줌마였다.

그때 그녀의 남편은 형이 하는 부페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었고, 그녀는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 그녀와 조금씩 친해지면서, 그녀의 내면에 갇혀 있는 어둠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이 술만 마시면, 폭행에 폭언을 한다고 하였다.

임신중 처음 남편에게 맞았었다고 했다. 그보다 더한 괴로움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수시로 들어야 할때 였다고 한다.

세상에 그런 말들이 존재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억척스럽게 열심히 살았다.

결혼 얼마 후에, 상사와 마찰이 있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가 된 남편을 대신해,

부른 배를 안고서 방하나 딸린 슈퍼를 얻었다고 한다.

슈퍼라는게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동동거려야 하는 일인데다가 물건을 들이려면 남편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했건만, 남편이란 사람은 어쩌다 기분 내킬때만 도와 주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녀 혼자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아이를 낳고, 산후 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슈퍼에 매달렸다고 한다.

빈둥거리던 동생을 보다못한 남편의 형은 자신이 하던 부페에 남편을 취직시켜 주었고,

그녀는 그제서야 하던 슈퍼를 과감히 정리했다고 한다.

나는 그녀가 사람 잘 사귀고, 조금은 푼수스럽게 자신의 속내를 잘 털어놓고, 그런 장점을

지닌 반면, 돈에 대해 심하다 할 정도로 악착스러울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조금은 알 듯도

하였다.

그녀가 거친 일의 종류만 해도 정말 부지기수였다.

처음 그녀에게서 나는 냄비세트를 사 주었다. 그녀는 그 냄비를 열갠가 몇개 팔면 자기에게

한개가 그냥 돌아온다고 하였다.

그 다음 보험을 하나 들어 주었고, 그 다음엔 성능좋은 세제를 사 주기도 하였고, 카드도 

하나 만들어 주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남편이 어쩔수 없이 부페를 그만 두어야 했고 - 형이 하던 부페가 문을

닫았기에 - 그녀는 자신의 전세집을 정리해 친정으로 들어간다며 인사를 하러 왔다.

 

그 후 몇년이 지나 나는 새로 이사간 곳에서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몰라보게 세련되어지고, 예쁘게 변해 있었다.

펑퍼짐하던 몸매가 완전 아가씨 몸매가 되어 있었다. 나를 먼저 알아본 건 그녀였다.

그녀는 지금 다니는 교회 선교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보수는 얼마 안 되지만, 아이들하고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다고 했다.

친정으로 들어간 그녀는 전세금과 그동안 모은 돈으로 아파트를 하나 분양 받아 놓았단다.

그리고, 신학대학교 부설 유아교육학과를 다니며 자격증을 땄단다.

그러면서 독한 마음으로 다이어트를 했단다.

30인치가 넘던 허리사이즈가 아가씨때의 몸매를 완전히 되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서 부동산중개소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그녀를 못만나지 3-4년 되었을 뿐인데....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다람쥐 쳇바퀴도는 삶을 살고 있을동안, 그녀는 그렇게 많은

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가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았다.

남편과 부동산중개업소 몇곳을 알아보러 같이 다니던 중 한 곳에서 그녀에게 같이 동업을

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활달하고, 말잘하는 그녀의 면모를 알아보았던 모양이었다.

보수는 당연히 지금 유치원교사의 보수에 비할바가 아니었고 그녀의 마음은 거의 기울어져

있는 것 같았다. 나로선 딱히 뭐라 해줄 말도 없었다.

그리고 몇달 뒤....

그녀는 다시 부동산중개업자로 화려한 변신을 하고 나타났다.

초보운전 딱지를 붙인 자신의 차까지 몰고서...

다이어트에 성공한 그녀는 아가씨때의 화려했던 때로 복귀라도 하려는 듯 수도 없이 옷을

사들였다.

물론 비싼 옷은 아니었다. 모두 만원 안쪽의 옷들이었다.

하지만 뛰어난 패션감각을 지닌 그녀인지라 워낙 이뻐 보였다.

그러면서 머리 염색도 화사하게 바뀌었고, 나중에는 조금 옆으로 가늘게 퍼진 눈매가 날카

로워 보인다며 쌍꺼풀 수술도 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얘기하는 돈 많은 사모님들 한테 받은 목걸이며, 귀걸이를 내게 보여주곤

하였다. 때로는 몇십만원짜리 옷도 선물받았다고 했다. 사모님이 한 번 밖에 안 입은 옷

이라며 기뻐하였다.

그런 그녀가 왜 그런지 난 불안스럽게 보이기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