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산화탄소 포집 공장 메머드 가동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004

로또가 나를 두번 죽인 이유


BY Blue By Nature 2004-09-13

아침 일찍부터 신랑은 회사에서 야유회가 있다면서 북한산으로 떠나고..
일찌 감치 아이들 아침 챙겨서 엉덩이 두둘겨서 학교 보내고 나니..
아직은 적응이 덜 된 여유스러운 아침을 맞는다.
작은 놈이 유치원에서 학교로 올라간지 이제 두달이 되가는데 아직 토요일이면 쉬던 때를 잊지 못하고 괜히 바쁠꺼같은 마음이 들었는데 오늘은 조용히 오전을 보냈다.

방송도 잊어버리고 마지막 남은 겨울 옷가지들 빨아서 볕 좋은곳에 말리고 집어넣쿠 하다보니 아이들 올 시간이 다 되버렸다.
점심을 부랴부랴 같이 먹고는 4시에 심사 있으니 누나랑 도장으로
꼭 오라고 당부하고 가는 아들녀석의 뒷꼭지를 바라보다가 큰애 숙제하라고 시키곤 놀음속에서 조금 허우적거리다 큰놈 단장시키고
나도 좀 찍어 바르고 도장으로 향했다.

벌써 많은 부모들이 도장에 도착해서 자기 아이들에게 표정으로
손짓으로 아는척을 하고들 있었다.
부랴부랴 아들녀석 찾아서 눈도장 하고 의자하나 잡고 뉘집 녀석인지 잘생겼다 소리를 들으며 뿌듯뿌듯 소리가 날 정도로 기분 좋게 준수의 태권도를 봤다.

손따로 발따로여도 자기딴에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서
흡족해하면서도 그 엉거주춤에 얼마나 웃었던지...
태권춤을 추며 신나게 발을 구르며 뛰는 모습이 저 녀석이 나의 심장을 벌렁이게 하는 놈이군 하며 입이 귀에 까지 걸렷다..
침 안흘린게 다행이지 싶다..

어젯밤 부모들 앞에서 심사 있다고 해서 도복 자알 빨아서 입혓더니 뽀다구가 상당히 난다..
이렇게 저렇게 애들 틀린거 보며 박장대소 해가며 대견해하며 무사히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해먹이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사이에 신랑이 힘이 하나도 없는 모습으로 들어왔다.

얼굴은 오늘 햇볕에 그을렷는지 벌겋게 익어선...곧 쓰러질 폼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패잔병이 따로 없었다..

북한산 꼭데기까지 오르고 행주산성까지 가서는 거기서 또 직원들끼리 족구부터 시작해서 닭싸움까지 신나게 놀구 맛있는거 먹구 ...
북한산 너무 좋터라 부터 시작해서 넌 아마 꼭대기 올라가지도 못할꺼라...힘들었다...장황하게 설명하다 놀려가며 그게 루키한테도 간다....버스에 너 먹을꺼 무지 많았는데 못가져왓다..아깝다..불쌍한 루키....
꼭 그리 집 식구들을 강아지까지 놀려야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너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다"라고 늘 자신의 인생의 목표처럼
이야기 하는 신랑..
그가 하는 말엔 맞장구를 치면 안되는데..또 난 바보같이 그걸
깜박 잊고는 열심히 들으며 웃어가며 부러워하고 좋아한다..

그런데 나를 두번 죽이는 일이 생긴것이다..
아침에 신랑에게 준 돈에서 집에 들어오다 이번에 누적금이 상당해서 너도 나도 로또를 사는지 줄을 서야 할 정도였더란다.
집앞에서 만원주고 사가지고 들어와서 맞추는데..
우리의 로또역사를 보면..
두개 맞추기가 하늘에서 별따기다..
그래서 어쩌다 한번씩..그냥 가뭄에 콩나듯.. 한번 씩 산다..
그런 우리집에서 다섯개라는 번호가 맞은 것이다.
처음엔 못 믿어서 또 맞춰보구 또 확인해보구..
번호 하나가 옆으로 살짝가서 다섯개를 맞춘거니..
둘다 잘했지...잘햇서 하면서 엉덩이 두둘기며 좋아했다.

그런데 문제는 당첨금이 확인 되는 순간...
난 갖은 아양과 교태로 신랑의 옆구리에 붙어 앉아서..
오십만원만 달라고 햇는데..당연히..먹히질 않을 말이란거
알지만 혹시 기분 좋은 마음에 좋타 할 줄 알았더니..
택도 없는 소리였다..
예린이도 자기 말하는 장난감 사달라고 하고
준수는 로봇을 사달라고 하는데...

신랑에겐 오십만원으로 술 한잔 사고 남은 돈으로
등산복 사서 이제 주마다 북한산의 정기를 받고 와서
로또를 사라고 말하고 나도 달라했더니 ..웃기는 소리한단다.
내가 아침에 준 돈으로 산거니까 나도 한 몫한거라 우겨도 보구..
그 돈은 내가 벌어서 니가 가지고 있던거니 어차피 내 돈이였다로 이야길 마친다..
이거 이거 법적 대응으로 가야 하나..
세금 내고 나면 얼마 되지도 않는데..
머리를 굴려야 한다..
은행갈 때 나도 꼭 따라간다.
통장 안가져 왓다고 하면서 살짝 내 통장 들이민다.
그것도 안되면 현찰로 달라고 한다.
그것도 안되면...
일단 지금 내가 신경질 나서 복권 내 주머니에 넣엇으니까
배째라고 한다..
내가 먼저 은행으로 뛰어가서 돈타고 술값 줘버린답..
흐흐..

참 웃기는 건..
로또 당첨 다섯개 됬다니까..
예린이가 소리 질러가며 뛰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녀석이 몰 안다고 그리 좋아했을까...
일기에도 삼등 당첨됬다고 쓰던 녀석..

우리에게 이런 일도 생기네 하며 서로 웃고..
당첨금이 얼마일까 무지 기대햇던 시간들..
잠깐이지만 즐거웠다.

살다가 이런 횡재수는 절대 없을꺼라 생각했는데..
우리 신랑이나 나나 일생에 처음 맛 본 횡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