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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빵과 아버지


BY Blue By Nature 2003-10-11

오랫만에 가을밤에 깨어 있으니 세상이 온통 나를 위해 존재하는듯 행복하다.

몇 일전에 친정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자꾸 떠올라 설겆이 하다가도 생각나 한숨짓고 아이들 목욕 시키다가도 아빠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답답했었다.

강아지까지 데리고 친정에 갔더니 아빠가 강아지까지 복잡한데 데리고 왔다고 핀잔이셨다.
내 어릴적엔 강아지 이뻐하셨는데.....몸이 안좋으시니 모든게 번잡스럽게 느껴지시나 보다.
뽀숙이네 하면 동네 사람들이 다 알 정도였는데...

일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동생이 애들을 데리고 약국에 다녀오면서 어릴 때 잘 먹던 국화빵을 한 봉지 사와서 자알 먹었다.
준수 녀석이 아침에 땡깡을 부려서 아침을 굶겼더니 이 녀석이 국화빵을 입에 물고도 모자라서 손에 두개씩 쥐어 버리니 식구들이 다 먹을 수가 없었다.
동생이 아빠에게 국화빵 하나를 드리니 잘 드시길래 설겆이하면서 이제 저런것도 드실 수 있구나 생각에
기쁘기도 했지만 걱정도 됬다.
밀가루 음식이 위에 안좋을텐데...

아이들 시켜서 다시 국화빵을 사와서 하나씩 집어 먹고 아빠에게도 하나 드리며 "아빠 이거만 드셔요'
에휴..저러다 토하시면 어쩌나 하며 걱정을 하는데 아빠가 하나를 또 집어 드셨다.
식사 하신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세개 씩이나 드시면 부담될텐데...하며 걱정하는 순간
"아빠 그만 먹어.."
"........."
동생의 말에 가슴이 미어졌다.

좋게 좀 이야기 하지 왜 저리 퉁명하게 말을 하는건지...
아빠는 국화빵을 들고 현관 앞에서 입에 넣으시고 우물 우물 하셨다.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이까짓 풀방을 소화를 못해서 딸년한테 핀잔이나 듣고 ..살아 무엇하리 하시는 듯한 표정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그러면서도 드시는 모습..
퇴원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 때도 죽만 드실 때다.
집앞에 직접 어묵을 만들어 파는 곳에서 너무나 드시고 싶어서 한참을 서서 어묵을 바라보고 있으니
주인이 아빠를 쳐다 보더란다.
그 다음날도 그곳에서 쳐다 보고 오셨다고 했다.
어묵이 먼데...
그 어묵가게 아저씬 우리 아빠를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사 먹을 돈도 없어서 저리 쳐다만 보나 하셨겠지..

세상 살아가면서 먹는 것에 고통을 받고 참아야 한다는 건 목숨을 걸고 하는 싸움과도 같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렇게 좋아하던 고기도 제대로 못드시고 음료수 한 캔도 못드셔서 토하시는 아빠를 보며
지난 여름 병원에서 지냈던 생각하기도 싫은 일들이 떠 올랐다.

위에 3/2를 잘라 내시고는 한달 내내 흰 죽만 드시곤 뼈만 앙상하게 남으신 아빠의 모습..
언제나 가슴 아픈 존재였다.
수술 후엔 말수도 줄고 체중도 줄고 얼굴도 검게 되시고
헬쓱해져만 가는 아빠의 모습이 오늘 밤 무척이나 생각나고 그립다.
엄마가 장롱에서 아빠가 수술전에 입으셨던 옷들을 죄다 모아 버리실 정도로 너무나 말라버리신..

아무래도 오래는 못 사실 것 같다.
이제 나도 부모님의 죽음을 생각 해야 할 나이가 됬다.
피하고 싶고 나에겐 그러한 일들이 없기를 바라지만 회피 할 수 없는 문제에 닥쳐 있는 듯 하다.

가을에 빠져 들고 싶지 않아서 운동도 시작 해보고 안간힘을 써보고
씩씩해져야지 골백번도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을은 내 가슴을 온통 헤집어 놓는 모양이다.
헤매이는 건 힘든것이다.
즐길 수 있다면 모르지만 한 거정에 주부로 가을에 빠진다는 건...

내일도 난 가을을 이겨 볼려구 체육센타에서 땀을 흘리고 물을 헤쳐갈 것이다.
즐길 수 없다면 빠지지 말자. 이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