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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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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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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지않는 사랑이


BY 제니스 2003-08-28

그때 내 나이를 기억하기 위해서 한참을 되돌아봐야 하는것도 아닌데

전화속 그사람의 목소리는 아주 멀게만 느껴집니다.

너무 오랜뒤여서 물어야할 안부가 너무 길어서..

답답스럽기까지한 짧은 통화끝에 쉬는 한숨이 있습니다.

 

몇해전. 우연히 알게된 어떤 사람입니다.

나를 만나기전 이미 7년이란 시간을 함께한 애인이 있던 남자입니다.

그런 남자를 사랑하려고 한동안을 앓아지낸적이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앓아지낸적이 있었다는 말로는 부족하도록 아픈 기억인지도 모릅니다.

처음엔 서로 편한 사이가 되고자 하는 약속밖에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말이 통하는 친구가 생겨서 기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와 밤새 신촌에서 어딘가로 걸어걸어가다 지쳐 만난 버스정류장에서

우리.. 도망갈까?.. 라고 묻는 그 얼굴에도 나는 웃을수있을만큼 여유가 있었고

다음날 그의 이름 석자가 찍힌 메일을 받았을때에도

그아침 업무를 시작하기전 제일처음 생각해낸 이름이 나였다는 생각이

기쁘고 좋았을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일주일에 한번쯤은 만나서 영화를 봤고

매일 저녁 전화기를 붙들고 잠들때까지 무슨이야기인가 끊임없이 해야했고

아침 출근길 내내 전화기를 들고 문자메세지를 주고 받고

출근해서 긴 전화통화를.. 몰래몰래 오랜 채팅으로 해야했던 긴 얘기들

우리는 그래도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나쁜일이.. 누군가 울고 아파야 하는 일이 있지 않도록.

 

그런 힘겨운 외줄타기같은 관계는

둘중 누구 한사람 마음에 가책이 생기거나

당연히 함께 할수없는.. 그녀와 있어야 함을 인정해야하는 주말 끝무렵

내가 심술이 나면 우린 그만두어야할지 모른다고 잠시 생각했고

말다툼도 했지만..

늘 대답은.. 결론은 우리에게 필요한건 시간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단지 시간을 함께 해보자는.. 결론이 어쩔지 모르니까.. 라는 무책임한 결론

 

그렇게 나는 늘 아프고 모자란 그를 애달아하고

그역시 나와 오랜 제 여자 사이에서 아파하고

 

나는 떠났습니다.

그가.. 내가 널 먼저 만났더라면.. 이라는 말을 하던날

그와 전화를 끊어버리고

그가 나를 찾을수 있을만한 모든것에서 떠나 한동안을 숨었습니다.

내집과 멀리 살고

내직장과 다른 곳에서 일하고

길가다 마주칠곳이 없는 그와의 숨바꼭질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잊으려고 애쓰고 잊혀지다 못해 희미해져서 기억해내기 힘든 때즈음..

나는 그냥 잘 지내느냐는 안부전화를 해봤습니다.

갑작스런 내 출현에 그는 덤덤하지 못한듯 합니다

그러길 바란듯도 합니다.

 

10년을 채워 그의 곁을 지키는 그의 여자의 안부까지

친절하게 묻고 전화기를 놓습니다.

더는 할말이 없습니다.

아프기만한 기억속에서 그도 나도 오늘 하루쯤은 우울해해야 할 것같습니다.

 

사람마다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 냄새로 기억으로 지탱되는 세월이 있습니다.

쓰레기처럼

분리해서 버려낼수 있다면

봉지에 꽉꽉 눌러담에 밖에 내놓으면

나도 모르는 어느 새벽녁 누군가 집어다 버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