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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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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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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립고 소중한 당신께


BY 다정 2003-09-13

항상 그립고 소중한 당신께

  성이 아빠!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당신을 불러봅니다.  푸르름을 한껏 자랑하던 창 너머 숲도 어둠과 정적에 쌓인 새벽 시간입니다. 항상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당신에게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든든한 당신이 있기에 우리 가족은 오늘도 편안한 잠자리에 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요. 세월이 흐를수록 당신의 존재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가를 느끼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 대학교 졸업반이던 당신과 결혼한 후 어려운 경제적 여건과 책임져야하는 시댁 식구들에 대한 불평 불만으로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들을 용서받고 싶군요. 그때마다 논어의 한 귀절을 읽어 주든가 아니면 그저 "내가 잘못했소" 한마디하고는 침묵으로 참아주었던 당신의 깊은 사랑을 마흔 중반의 나이가 되어서야 깨닫게 되다니...부끄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항상 어린애를 물가에 내보내듯이 "차조심해요, 빠뜨린 것 없나 다시 챙겨봐요"등등 잔소리로만 듣던 그 말들이 애정 표현이었다는 걸 느끼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슬기롭지 못한 아내였나 봐요.
  당신과 한평생을 약속한 후 함께 산지도 벌써 19년째가 되는군요. 함께 산 시간보다 떨어져 살았던 시간들이 더 많았지만 아이들 문제에서부터 집안일 하나 하나 알뜰히 챙기느라 바쁜 와중에서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미안함이 솟구칩니다. 객지에서 자취생활 할 때 한번도 힘들다거나 불편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어쩌다 "힘들지요"라고 묻는 말에 " 난 괜찮아.당신이 애들 데리고 직장생활 하느라 더 힘들겠소" 하며 항상 씩씩하고 밝은 모습을 보였지요. 한겨울 밤 기차를 타려고 떠나가는 뒷모습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요. '항상 건강 조심! 가스 조심!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줍시다.' 라고 보냈던 카드와 당신을 꼭 닮은 윤성이 백일 날 지어서 보내준 시 한편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답니다. 그 아기가 벌써 중학생이 되어 현관문을 들어서는 당신만 보면 뛰어가 팔짝 뛰어올라 안기는 모습은 바라만 보아도 행복합니다.
  성이 아빠! 생각나세요. 신혼 초 취직시험과 대학원 시험 준비로 힘든 때 시어머니, 시누이, 시동생 때문에 마음 불편해 하는 저를 위해 식구들 몰래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말아 점심때 먹으라고 핸드백 속에 넣어 주었던 일   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지요.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사랑은 가슴속에 따뜻함으로 남아있어요. 어디 그뿐인가요! 직장 생활하고 제대로 일해본 경험이 없는 저를 위해 밤늦은 시간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놓고는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해놓은 후 옷장에 숨겨 놓았다가 제가 한 것처럼 널기만 하라고 했던 일은 잊혀지지 않아요. 늦었지만 고맙다는 인사를 할게요.
  결혼 후 첫 생일날 선물을 깜빡 잊고 집으로 돌아온 당신이 깜짝 놀라며 문닫고 나간 후 손에 들고 온 것은 이백원 짜리 쵸코렛 두 개였지요. 남자친구도 생일선물은 화장품세트를 주던데 남편이 되어 가지고 겨우 쵸코렛 두 개냐고 눈물을 글썽이며 대들던 철부지 아내였던 제가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졌을까 지금 생각하니 부부싸움 나지 않은 것만도 정말 다행이지 뭐예요. 참고 인내하는 당신 때문에 가정의 평화는 유지되어 온 것 같아요. 그 이 후 생일 때만 되면 더 비싼 선물을 받았지만 쵸코렛 두개가 더 그립고 생각납니다. 쵸코렛 사랑은 멋진 추억으로 영원히 기억될 거예요.
 일본 쯔꾸바 대학으로 유학을 가기로 했을 때  함께 가지 못하는 가정형편 때문에 '이혼하자'고 날이면 날마다 당신을 들볶고 힘들게 했던 일 용서해 주세요.  깊은 상처를 주었던 그때의 일로 인해 서로가 오랫동안 소원했던 적이 있었지요. 여러 가지 형편을 고려해 포기했지만 얼마나 그 심정이 착잡하고 서운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미안해집니다. 지면을 통해 진심으로 용서를 빕니다. 언젠가 미안해하는 내게 일본 유학 대신 당신을 꼭 닮은 작은아들 윤성이를 얻었으니 괜찮다고 하셨지요. 언제나 속 좁은 아내를 위해 아량을 베푸는 당신이 있어 저는 행복합니다. 다시 LG그룹에 입사해 객지생활과  출장의 연속에서도 고달프다는 말 한마디하지 않고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토요일이면 다녀가곤 했지요. 오자마자 저더러는 피곤하니까 잠자라고 하면서 아기를 들쳐업고 빨래하기, 설거지하기, 집안청소까지 해주고는 다시 밤차로 떠날 때마다 울기도 많이 했어요. 당신이 힘든 것 때문에 운 것이 아니고 남편 없이 두 아이 데리고 직장 생활하는 게 고달프고 힘들다는 제 생각만 한 이기심의 눈물이었지요.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함께 하는 시간들의 귀함을 알고 감사할 줄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남들은 내조를 잘한다는데 내조보다는 당신의 외조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점은 남편 잘 만난 덕이라는 걸 알아요. 영어 못하는 저를 위해 일요일이면 학생 가르치듯 일년 동안 영어를 가르쳐 주고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 합격했을 때 너무 기뻐하며 졸업할 때까지 도와준 점은 누구나 하는 일이 아닌 것 다 알아요. 석사학위는 당신의 도움과 사랑하는 인성이, 윤성이의 이해 속에서 받은 것도 잘 압니다. 다시 시작한 상담교사 공부 때문에 가정에 소홀한 점 다시 한번 이해해 주세요. 기본에 충실해 달라는 당신의 점잖은 요구에 대해 앞으로 열심히 가정일에 충실하고 그동안 공부하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
  인성이를 안양고등학교에 보내놓고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 보겠다며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도 밥해주고 빨래까지 해주며 자식 뒷바라지를 하는 훌륭한 아버지인 당신 앞에 언제나 저는 보호받는 어린 아내이군요. 제가 해야할 일을 대신해서 자식을 위해 정성을 쏟으니 할 말이 없어요. 좋은 결과가 있어 온 가족이 오손도손 한 집에 살게 될 날을 기다립니다. 살아가면서 아버지의 큰사랑을 인성이도 느낄 거예요. 성적이 나쁘다고 너무 상심해 하지 마시고 술 많이 드시지 마세요. 무엇보다 일에 지쳐 건강을 잃을까 가장 걱정 이예요. 너무 무리하지 마시기를 부탁합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새벽 4시가 넘었군요. 모처럼 집에서 곤한 잠에 취한  당신을 내려다보며 부부의 연으로 만나 산다는 사실에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항상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당신의 사랑을 다시 느끼며 당신과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사랑하는 아내가 되겠습니다. 힘드시더라도 언제나 처럼 자신 만만한 모습을 보여 주세요. 이 밤 편안히 주무시기를 바라며 긴 편지를 끝내렵니다. 사랑합니다.

                                       2000년 5월 29일 새벽 4시 20분
            
                                  당신의 사랑 앞에 감사하는 아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