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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를 찾는 사람들


BY 다정 2003-09-13

향기를 찾는 사람들 
                                                          

  매월 마지막 금요일은 각박한 현실에서 삶의 향기를 느끼는 날이다. 아름답고 소중한 만남인 사계수필 문학회 회원들의 정기모임의 날! 진솔한 체험을 수필이라는 그릇에 담아 음미하고 느끼며 공감하는 시간이다.
  글쓰기가 좋아서 모인 사람들과 그들에게 아낌없는 가르침과 열성으로 이끌어주는 분이 계시기에 그 빛깔과 향기는 날이 갈수록 더 짙어지는 것이리라. 그때마다 삶은 누군가의 희생과 사랑으로 더 풍성하고 윤기가 흐름을 새삼 느끼게 된다.
  모임 날이면 약속 장소에 가장 먼저 와서 회원들을 기다려 주시는 분이 계시다. 결코 젊은 나이가 아니면서도 젊어 보이는 외모와 영국 신사풍의 위엄까지 갖추신 분이시다. 서너 시간까지 이어지는 작품 소개와 평하는 시간에 가장 진지하면서도 칭찬과 격려로 열정을 쏟으시는 그분은 서울교대 정길남 교수님이시다.
  살면서 문득 느껴지는 인연들 중에 '참 소중하고 귀한 만남'으로 떠오르는 분들이 있다. 그 분들 중에 한 분인 정길남 교수님과의 만남은 신의 또 다른 축복이라 여겨진다. 나뿐만이 아니라 사계수필 문학회 회원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일거라는 생각은 결코 혼자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난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두 대의 승용차로 지리산 여행을 떠난 우리 일행은 2박 3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오랜 시간 정을 나눈 사람들보다 더 깊은 정과 추억을 만들고 왔다.
  출발 전부터 도착할 때까지 콘도예약에서 손수 운전 기사까지 자청하셨던 교수님의 활약은 여행 첫 날부터 대단했다. 여행이니까 그냥 즐겁게 놀다 가려니 생각했던 우리에게 저녁식사가 끝나자마자 작품을 내놓으라고 하시며 수필 공부를 지도하시는 게 아닌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진지해지고 어느덧 세시간이 지나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끝내시는 데 '휴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한숨 뒤끝에 느껴지는 뿌듯함과 청량제 같은 시원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 분의 철저한 성격과 사계수필 문학회에 대한 애정에서 우러나왔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리산 여행에서 또한 치밀함과 섬세함으로 함께 조화를 이루었던 이애경 총무의 역할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여행 전에 밑반찬을 손수 만들고 때마다 솜씨 발휘를 해서 진수성찬의 식탁을 차려놓는 그녀에게는 다들 감탄사를 연발했다. '오징어 파전'의 그 기막힌 맛은 아직도 혀끝을 맴돈다. 거기에다가 비 온 뒤의 맑은 하늘처럼 상큼한 매력을 물씬 풍겼던 교수님 사모님의 역할은 더 한층 여행분위기를 고조시키곤 하였다. 스스럼없이 함께 어울리며 배꼽 빠질 정도로 웃음을 선사했던 농담 아닌 진담은 여자들만의 가슴 속 비밀로 남겨둘 정도였다. 그리고 바쁜 일정을 무릅쓰고 참석해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준 황명자 선생님과 박성주 선생님의 매력 역시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리산 계곡에 울려 퍼지던 박선생님의 멋들어진 노래와 정감 있는 목소리, 감칠맛 나게 이야기하는 황선생님 역시 삶의 향기를 찾는 아름다운 모습임을 공감한 순간이었다.
  쏟아지는 별빛 아래 둘 셋씩 짝을 지어 뱀사골 밤길을 걸어가며 나누었던 우리들만의 대화는 영혼의 깊은 울림이 되어 퍼져나갔다. 그리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위를 휘돌아 흘러가는 계곡의 물소리에 잠시나마 자신을 되돌아 본 낭만의 시간이기도 했다. 큰바위에 누워 새벽하늘이 열리는 순간과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한 순간 삶을 음미하는 순간 말없이 새벽에 사라진 나를 찾아 헤매었던 회원들의 질책조차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살아난다. 장소제공과 기사까지 자처한 교수님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가 무척 고마웠다.
  제 2의 석굴암이라 불리는 칠성사와 안개 낀 노고단 정상의 풀꽃들, 산을 휘감고 피어오르던 구름을 보며 느꼈던 생의 무상함도 잊을 수가 없다. 또 한번 말없이 노고단을 향해 출발한 나와 김정례 선생님을 찾기 위해 족히 두 시간을 헤맨 회원들의 걱정 어린 불만은 안개 속에서 한마음이 되어 가슴속 향기로 남아있으리라 생각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의 교수님의 맹활약은 한마디로 눈물겨웠다. 간단히 휴게실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 계획을 취소하고 이왕이면 그 유명한 전주비빔밥을 먹고 갔으면 좋겠다는 즉석 의견이 채택되었다. 전주 시내로 들어간 그 분의 차는 들어섰던 도로에서 되돌아가기를 여러 번, 그 때마다 차를 정지시키고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시곤 하셨다. 뒤따라가던 난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먹으면 될텐데……' 속으로 중얼거리며 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조바심을 하며 따라갔다. 무려 한 시간이나 헤매면서 찾은 끝에 '중앙회관'이라는 음식점에 도착했다. 피곤함도 잊으시고 맛있게 식사하는 우리 일행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기뻐하시던 모습에서 느껴지던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스승의 날을 즈음해 찾아 간 회원들을 위해 손수 밥을 짓고 상을 차려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넉넉함과 변함없는 따뜻함을 보여주셨다. 어디 그뿐이랴! 의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책 발간까지 주선해주며 회원 개개인에게 정성과 애정을 쏟으며 이끌어주시는 교수님이 계시기에 사계수필 문학회는 날로 그 빛을 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