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설에서나 있을것 같은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내 집안에 있다.
남편에겐 아버지가 안계신다.
아니 없다.
물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것이 아니기에
호적상의 이야기다.
시골에선 한동네 집성촌으로 살다보니
누구네집 아무개와 누구네집 아무개로 이웃끼리의 혼사가 많았단다.
분명 그렇게해서 결혼식도 치루셨단다.
그러다 임신중인 시어머니를 놔두고
서울로 돈벌러간다는 시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으시고
혼자서 시집살이하고 있는 배부른 딸을 할머니는 친정으로 데리고 가버리고
여튼 이렇게 비극은 시작됐다.
아이를 낳았지만 이미 새살림을 차려버린 시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으셨고
그래도 시골에선 다들 누구 아들인지 아는지라 혼인신고도 안한 상태에서
아버지성을 따라 출생신고를 해줬다.
지금이라면 분명 어머니성을 따랐겠지..
그 두모자도 어찌어찌 서울로 상경
결혼안하신 어머니의 오라버니와 함께 세식구가 둥지를 틀었단다.
셋이서도 오손도손 재밌게 살았으면 좋으련만
그 시아버지에게 시집을 보냈던게 오라버니의 탓이라며
한맺힌 원망으로 집안이 조용할새가 없었단다.
음식솜씨도 좋았던 어머니셨는데
아들을 위한 도시락을 싸주신게 열번도 되지 않았단다.
자기 설움에 집보다는 바깥으로 겉돌아 어머니와 함께했던 날들의 기억이 별로없단다.
남편은 늘 외로웠단다.
친구의 남자친구의 친구였던 남편.
어쩌다 스쳐지나간 자리에서 우연히 본 날 기억했다가
친구에게 소개시켜달라고 했단다.
첨에 바람을 맞혔더니 친구에게 집전화번호(그당시엔 핸드폰이 없었다)를 물어봐서
집에 전화를 하고 전화받은 동생에게
네 매형될 사람인데 누나가 바람 맞혔는데
낼 다시 그 장소에서 기다릴테니 꼭 나오라고 하랬단다.
그 용기가 가상했던건지 무모함이 무서웠던건지
그를 만나게 됐고 꾸밈없이 솔직했던 그에게 맘을 열게됐다.
날 위해 젤 좋은옷을 입고 나왔다던 그.
얼마나 외로웠는지 얘기하던 그.
하루도 안보면 안된다며 집으로 직장으로 매일 매일 얼굴도장 찍던 그.
그게 당연한것처럼 우린 그렇게 만나 결혼까지 했다.
하지만 사랑은 받아본 사람이 할줄도 안다던가?
주는것 보다는 받기를 더 많이 원했던 서로의 맘이
서로에게 상채기를 입히는 시간들도 많았다.
그래도 그래도 그날들은 그렇게 흘러갔다.
어머니가 다시 돌아오셨지만
나 보기가 그래서인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시고
숙식을 하는 식당일을 하셨고 쉬는날이면 다녀가시곤 했다.
그것도 잠시 일을 관두시고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다시 집안은 편치않은 분위기로 시끄러운 날들이 많아졌다.
결국 우리는 달랑 백만원을 갖고 두아이를 데리고 분가란걸 했다.
월급쟁이 생활은 적응 못하는 남편.
그덕에 생활은 늘 줄타기처럼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흘러 갔고
이제 우리는 불혹도 훌쩍 넘기고 두아들은 나라에 부름받아 군생활중이다.
빨간 신호 앞에 서있는 나에게
어머니와 함께 했던 2주일의 시간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할말은 다하셔야하는 분이셨기에 늘 어머니에게 주눅이 들어있었는데
약해진 어머니의 모습은 가엾고 측은했다. 첨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