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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기쁨


BY 박꽃 2007-09-02

일년 사시사철

계절의 흐름은 이미 알면서도

출근길 무섭게 내리쬐던  태양을 마주서며 여름이 어서 갔으면 했는데

며칠사이 선선한 가을 바람에 조용히 자리 내어주는 여름을 느낀다.

 

이곳에 와본지가 너무 오래라 왠지 낯설기도 하지만

용기내어 내자리인냥 차지해본다.

 

4년전 마흔의 가을을 이곳에서 시작하면서

참 많은 위로와 기쁨을 함께 했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시간에 쫒겨 마음에 여유마저 놓쳐버리고

살며시 이곳을 지나쳐 살고 있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직장생활과 가정생활

내나름 최선을 다하며 산다고 했지만

작은 녀석 수능 끝남과 함께 맥이 풀리듯 접게 되었다.

 

3년이 넘게 내가 하던일은 전문직이라고 속하는 텔레마케터였다.

보험회사, 통신사, 홈쇼핑

내가 전화를 거는 아웃바운드와 고객이 거는 전화를 상대하는 인바운드

두가지 모두 불특정 다수와의 대화였기에  참으로 많은 애환이 있었다.

사람은 상대적인 것이겠지만 언제나 밝은 목소리로 사람을 대하는것도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었다.

 

더 이상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자신이 없고

몸도 맘도 풀어져버린 느낌으로 몇개월을 보냈다.

그러다 조금씩 모아두었던 통장이 바닥나면서 물질적인 부족함을 메꾸고자

다시 직장을 구하려 마음먹고

인터넷이며 벼룩시장의 구인구직 광고를 무수히 뒤지며 여러곳을 견주던중  

고용안정센터에 구인 등록을 했다.

기다렸다는듯 연락이 왔다.

반도체 회사 3교대 근무 가능한지 묻는다.

큰 기대없이 면접을 보러가니

생각보다 규모가 어머어마하다.

내가 근무할 곳은 협력회사(인력공급업체내지는 하청업체)로

단순작업을 고학력의 젊은이들의 인건비보다는

아줌마들의 저렴한 인건비로 해결하려고 아줌마들을 채용한다는 얘기를 한다.

기본적인 테스트라며 도형이며 수학연산 시험을 치뤘다.

예상외의 일이었지만 기본적인 테스트라 무난히 치루고 출근날짜를 정했다.

근무시간은 오후 2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갑작스런 결정이었지만 사람에게 시달리는 일도

내 몸이 편안함을 찾는 일보다 오히려 단순한 일이란게 맘이 편했다.

3교대 근무를 할수 있는것도 이제는 더이상 잔손 갈 아이들이 없슴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대학 1학년 마치고 군대가서 적성에 맞는다며 부사관(하사관)이 된 큰녀석

작은녀석도 대학 1학년 1학기 마치고 갑자기 의무경찰에 지원해 곧 입대를 앞두고

어찌보면 여유를 부릴만도 할 때겠지만

나에겐 이제부터가 나를 위해 조금씩 준비할때인것 같다.

 

셔틀 버스가 운행되지만 집에서 셔틀버스를 타는 장소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다.

2시까지 출근이지만 20분전까지는 셔틀버스가 회사에 도착한다.

근무전까지 잠시 차도 한잔 얘기도 나눈다.

그리고 작업장에 들어가려면 에어샤워를 통과하고

방진복(정전기 방지하는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다시 한번 에어샤워후  들어간다.

 

처음 배운일은 반도체 검사하는 법

커다란 스쿠프(현미경)로 촛점을 맞쳐 불량 검사를 하는일

불량의 종류도 여러가지여서 그것을 파악하는게 관건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 디카에 들어가는 반도체칩이 이런거란다.

참으로 낯설고 조심스러운 작업이지만 아이마냥 신기했다.

일주일후부터는 반도체 자르는 장비쪽으로 배치됐다.

컴퓨터로 작동하는 작업이지만 항상 정확하게 확인 또 확인.

한번 실수하면 몇백, 몇천만원이 우습게 망가지는 일이다.

함께 하는 파트의 동료들로부터 친절하게 안내받고 이제는 제법 내자리가 되었다.

 

겨우 한달이지만 몇 사람은 떠나고 몇 사람의 후배가 새로 들어오고

일이란게 적성에 맞지 않으면 할수 없어서 이동이 잦은것 같다.

그래도 어느새 50대 언니부터 30대 동생까지

한사람 한사람 새로 만난 이들과도 어느새 허물없이 언니 동생이 되어간다.

쉬는 시간은 항상 웃음 바다가 된다.

 

다들 사는곳도 제각기 셔틀 버스가 운행되긴 하지만

남양주, 잠실, 천호동, 의정부 정말 멀리서 몇시간에 걸쳐서 오는 이들도 많다.

일요일은 특근 수당이 붙는다고 쉬지않고 근무하고

대부분 평일 연차나 생차(생리휴가)를 이용해 한달에 한두번 쉬면서도

너 나없이 행복한 얼굴로 열심히 근무한다.

좀더 나은 보수로 편한일을 찾을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가는 그녀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퇴근길 셔틀버스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내리면

내 오랜지기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

비오는 날은 차로, 맑은날은 오토바이로 나를 데리러 온다.

전엔 내가 일해야 하는 이유가 남편탓이라고 생각하며 작은 원망도 있었지만

이제는 열심히 일할수 있는 건강이 있슴이 감사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보람찬 하루였슴을 돌아볼수 있슴을 감사하고

내자리에서 필요한 사람이라는 기쁨으로 행복하다.

다시 이자리에 앉아 있을수 있는 여유를 찾음에 감사하다. 감사하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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