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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子 3代... 친할머니 우리어머니 그리고 나...


BY 철걸 2003-09-15

추석이 다가온다.

햇과일도 햇곡식도 풍성하고 우리네 인심도 후한 추석이..

해년마다 이맘때면 가끔씩 그간 잊고 살았던 울 친할아버지,할머니가

생각이난다.그리고 나를 낳아준 우리 어머니도.....

 

내가 두살 되던해 갑자기 우리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우리 어머니가 그해말 까지 나를 키우시다가 할머니께서

시장에 다녀온새에 우리 어머니께서 보따리를 싸들고

온다간다 한마디 말도 없이 집을 나가셨다한다.

할머니께선 당신아들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것도

다며느리(우리 어머니)   잘못봐서 그러신거라 여기셨고

마침내는 어머니까지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가니 그천추의悍을

어린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주셨다.

어찌나 나를 구박하고 미워하셨던지....

 

할머니껜 나하고 두살터울인 막내딸이   있었는데 (나에겐 막내 고모)

그고모도 어린 나이여서  그랬는지 너는 내친동생도 아니면서

왜 우리집에서 사냐면서 니네 엄마찾아 가라고 옷보따리 까지

싸서 문밖에 집어 던지곤 했다.

할머니의 자식이 4남4녀 였는데 우리 아버지가 제일 큰아들

이셨고 나까지 덤으로 키우시다보니 9남매를 키운셈이 되셨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난 유년기와 사춘기의 세월은

말그대로 고통과 인내를 요하는 지난 시간 이었던것같다.

 

나도 이젠 두아이의 엄마고 불혹의 나이를 막건내는 중년의 女子이다 보니

할머니와 말없이 집을 떠나야 했던 우리 어머니의 관계도 조금은 이해가 되고

할머니께서 왜 나에게 그처럼 모질게 했었는지도  알것같다.

내가 두살되던해 였으니깐 우리 어머니는 한창 젊으셨을테고

7명의 시누,시동생과 시어른,시할머니 까지 모시고 살았다고 하니

가히 남편(우리 아버지) 없이 견디는 하루 하루가 얼마나 힘들고

서글펐을가를 짐작케 한다.

여느 고부들처럼 고부갈등도 있었을테고 당신아들 잡아먹은(?)

며느리가 할머니에겐 또 그다지 예뻐 보이지도 않았을터이니

우리 어머니도 같은 여자로서 어찌 생각하믄 한살이라도 젊을때

좋은 사람만나 재혼함이 옳은 길이었으리라..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짧은 결혼생활 덕분에 나는 할아버지의

막내딸로 호적에 오르는 행운(?)을 안았고, 사실 나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친정집과 어머니의 이름도 여태

모르고 살고있다.

 그당시에는 혼인신고나 출생신고를 늦게 하는게 여사였던 

세월이었다 한다.

늘상 내가 시집갈 나이가 다되도록 들은 이야기중엔 우리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할머니나 고모들이 전혀 없다는것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일하게 딱한장 남아있는 결혼사진중에는

우리 아버지 한쪽팔에 당신의 팔을 끼고 서있는 잘려진 어머니의

팔목부분만이 내가 지금껏 기억하는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할머니댁 에서 우리어머니가 밉다고 어머니 얼굴 나온쪽 사진을 오려서

버려버리셨다고 한다.)

늘상 어린나이때부터 어머니를 꿈꾸어왔지만 지난 세월속에

내기억에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는한 그어떤 형태로던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보기란 쉽지가 않았다.

 할머니는 원체 우리 어머니를 미워하셔서 나에게 기억조차 할수없게

아무것도 일러주시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 아버지의 다른 동생들도(고모,삼촌)

본인들도 그당시엔 어린나이 였고 우리어머니가 시집에 머무른 시간이

짧았기 (3년)때문에 도통 기억이 없다한다.

 

지금은 할아버지.할머니도 돌아가셨고 나도 친정에서 멀리 시집 와서

 바쁘게 살다보니 고모님들과 작은아버지들도 좀체 만날 기회가 없고

할아버지,할머니 기일에도 제때 찾아뵙지도 못하고 있다.

이유야 어찌됐던 나를 키워주신건 분명 우리 할아버지,할머니신데

살아 생전에도 별 효도도 못했었고 기일에도 찾아뵙지 못하다보니

할아버지,할머니께 너무 죄송스럽고 불효자란 생각에 목이메인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도 얼굴을 모르고 나역시 자식을 낳고 살다보니

우리 어머니도 내생각에 나를 찾아오셨을지도,아니 내앞에 서계셨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내옆을 스쳐 지나가셨을지도 모르는일 아닌가..

그렇게 모질게 어머니 스스로 천륜을 끊었다한들 어머니의 인생도

가히 행복했으리란 생각이 들진않는다.

또 누구의 아내가 되어 그의 자식을 낳고 살다보니 내앞에 떳떳히

나타날수도 없었을거란 생각이 들고 살아 계신다면

평생 내가 어머니의 가슴한켠에 응어리로 남아있지 않을까?

사춘기 때까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머니를 사실 많이 원망하고

미워도 했었지만 다각자 손에 쥐고 태어난 운명이려니 생각하면

우리어머니도 불쌍한 여자라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

여러번 어머니를 찾을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여태까지

생사를 모르고 있다.

어머니가 내앞에 나타나실 입장이 못되시는건지 아님 나를 버리고

가셨다는 죄책감에 소식을 않주시는건지는 알수가 없지만

꼭 한번만은 만나뵙고 싶고 지난 과거는 어머니나 나나 어쩔수 없이

받아들였어야 하는 세월과 운명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 아버지 제사도 작은 아버지가 모시고 계신다는것도...

 

설이나 추석명절을 전후 해서 꼭 이렇게 아무도 (남편도) 모르게

가슴앓이를 한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모진 인연의 우리 집안 女子 3代.... 

나를 키워주신 친할머니와 나를 낳아주신 우리 어머니와

그리고.... 

이들을 그리워 하는 내가 있다. 

 

 

 

 

 

< 2003-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