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노인 기준 연령을 75세로 상향 조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487

*~*~* 눈물의 커플링 *~*~*


BY 철걸 2003-09-15

간밤에 시원하게 비가 뿌리고 나더니,대지의 모든 만물들이 파릇파릇 하게 눈에 들어 오는 싱그러운 8월의 아침이다.

늘상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이여유로운 아침마저도 블랙 커피 한잔에 스르르 녹아 드는것 같다....

 

 

~~~~~~~~~~********~~~~~~~~~~~~~**********~~~~~~~~~~~~~~~~

 

18년전 친한 친구 소개로 남편을 처음 만났을때,카리스마 넘치는 까지매기눈(?)과

떡벌어진 어깨,불필요한 단어는 입에 담지 않는 그중후함에 반해서 내가 먼저 대시를

하였었다.

그당시 남편집은 시내에서도 보기 드물게 3층 짜리 주택을 지니고 있었고, 무려 열여섯칸을

세를 주고 사는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를 만나기 3년전쯤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고 손위누님 한테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시어머니께서 살아 계실때,나이마흔다섯에 아들둘을 병마에 잃으시고

 지금의 남편을 늦둥이로 보셨다 한다.해서 남편은 금지옥엽으로 유아,청소년기를

보냈다 한다.

그당시 병에든 하얀 서울 우유와,원기소(요즘 아이들 건강보조식품정도라 생각하시면된다)

는 늘 남편 차지였고 남편은 원기소가 먹기 싫어서 동네 아이들에게 한주먹씩

시어머니 모르게 나누어 주곤 했다한다.

우리는 결혼전에 약2년여에 걸쳐 동거 생활을 했었는데,나를 처음 만났을때 즈음에 남편이

시아버님께 천추의한 을 남기는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던것이다.

다름이 아니라 믿고 따르던 사촌 형님의 사업에 동참 하게 되면서 시아버님 모르게

사촌형님께 집을 담보로 보증을 서줬던 모양 이었다.

몇달못가서 사촌형님의 사업이 부도가 나고,사촌형님은 철창에 갇히는 몸이 되었고

남편은 남편대로 시아버님 모르게 사고 뒷 수습을 할려니 만신창이의 몸이 되버렸었다.

여러모로 노력했지만 끝내 3층짜리 주택은 성업공사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남편은 그때부터 알콜에 의지해 생활하는 젊디 젊은 인생의 실패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시아버님은 모양새 사납게 손위 시누이댁으로 거처를 옮기셔야 했고 그와중에

나는 지금의 딸내미를임신중이었었다. 비닐 하우스안에서 곧게 자란 화초 마냥

남편은 세상과 타협할줄을몰랐고,예전의 자기자신의 모습을 쉽게 지우질(잘살때) 못해

더욱더 자신을 괴롭혔다.

술에 취해 있을땐 임신중인 아이를 지우고 다른사람 만나서 가라고 고함을 지르기를

수십번..  나도 어쩔수 없는 한인간 이기에 사실 망설임도 많았었다.

그해 이제막 스물네살의 나는 그래도 끝까지 남편의곁에 남기로 마음을 다지고

임신 4개월의 몸으로 조그만 실내 포장마차를 하게 되었었다.

그이듬해 딸아이를 출산하고,가게도 정리를 해서 두칸짜리방이 딸린 셋방을 얻어

시누네에계시던 시아버님을 모시고 살게되었고,이웃에 그때돈 200만원을 빌려

이렇게 초라하게 결혼식 못한다는 남편을 겨우 달래서 눈물의결혼식을올렸었다.

 어찌 그리도 슬프고 슬프던지..

친정 부모님이 두분다 돌아가셔서 더욱더 눈물이 난건지  아님 내팔자가 원망 스러워서

그설움에 복받친것인지 여튼 비디오 찍는 기사 양반이 신부가 너무 울어 비디오를

못찍겠다고 할 정도로 펑펑 울었었다.다도망해도 팔자도망은 못한다는 옛어른들 말씀이

실감나던 순간이기도 했다.살다하는 결혼식 이다보니 형편도 그렇고 우린 서로 실가락지

하나 없이 결혼식을 치루고 여기서 가까운 경주로 1박2일 신혼여행 아닌 신혼여행을

 다녀왔었다.

 

 

 

자신의 순간 실수만 아니었어도 남편말대로 호텔에서 결혼식도 올리고,예물도 많이

해줄텐데 그렇지 못한 남편의 마음은 또 오죽했겠는가..남자는 속으로 운다고 하지 않던가!

그후 시아버님게서 命을 달리 하실때까지 그리 풍족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걱정

 끼쳐드리던 아들네서 돌아가시게 되었었다.

당신이 직접 가꾸고 그리도 많은 셋방을 내주셨던 200평의 집을 뺏기고(?) 남의 셋방을

전전했을때, 그비통함이란 어찌 필설로 다전할수가 있을까.. 그리도 애지중지 했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고 계셨던 시아버님의 속은또 얼마나 새카맣게 타고 한이 

맺히셨을까  하고  생각을 하면 지금도  금새 눈물이 글썽여진다.

 

 살아계셨을때는 몰랐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왜 이리 간절하고 애절해 지는지...

돌아가시는 날가지 불효만 했다는 생각에 더욱더 가슴이 미어진다.

남편의 한순간의 실수..사촌형님의 냉랭함에  더욱더 서운함은 커지고...

그래도 세월은 어느덧 유수와같이 흘러 딸내미밑에 아들내미 하나더 얻고..

(현재 딸내미 중2,아들내미 초등6년)

남편도 세월의 흐름앞에는 어쩔수 없는지 벌써 이마의 잔주름과 하얀 머리만이

풍파 많던 지나간 세월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런저런 세월속에 우리는 마지막으로 큰식당을 경영해 보자해서 지금의가게에

큰평수만 보고 (80평) 남의 사채,카드까지 끌어다가 투자를 했지만 끝내 실패를

보고 말았다.처음에는 서로의 탓으로 돌리며 눈만 뜨면 이혼 운운해가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 서로의 마지막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지만,네탓도 내탓도 아님을

서로가 잘살아 볼려고 했던일인것을 누굴 원망 하겠는가..

설상가상으로 현재 우리가 세들어 있는 가게건물이 경매에 들어가 있다.

이또한 남편과 왈가 왈부 할 문제도 아니여서 서로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눈치만

보고 있는 입장이다.

 

 

~~~~~~~~~~~~~~~********~~~~~~~~~~~~~********~~~~~~~~~~~~

 

몇달전 딸내미가 제 아빠한테 휴대폰에 문자를 보냈던 모양이다.

남편한테서 뜬금 없이 내일이 무슨날이냐고 반문하는 전화가 왔다.

모르겠다고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고 가게손님 받는다고 깜빡 잊어버리고

다음날 오후가 되었다.

식당일을 다 마무리 하고 방에 들어오니 커다란 케이크에 남편과 아이들이

양초에 불을 붙여 꽂고 있었다.

그날따라 남편이 웬일로 일찍 퇴근 하셨다 했더니 아이들 하고

미리 각본을 맞춰 놓았던 모양이었다.

그제사 오늘의 날짜를 기억해낸 나는 오늘이 우리가 부부의연을 맺은지가 벌써18년째라는 사실에  또 눈물이 핑 돌았다.

작고 앙증 맞게 타오르는 촛불을 보니그간의 고생스러웠던 가슴아픈 기억도 떠오르고

 만감이 교차하는 짧은 순간 이었다.

남편 만나 살면서 남편이 결혼 기념일(2월 25일) 을 기억 하는것도 처음이지만(물론 아이들이 알려줬겠지만) 아이들이 벌써 자라서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챙겨 준다는게

또 얼마나 대견하고 고맙던지...

딸아이가 제방으로 건너가더니 금빛 포장지에 조그맣게 싸여진 뭔가를 꺼내놓았다.

다름아닌 커플링 이었다. 오렌지빛 알맹이가 박힌 18K 반지였다.

딸아이는 제아빠 손가락에 아들녀석은 궂은일 한다고 투박해진 내손가락에

정성스레 끼워 주었다.

어느덧 내눈에는 굵은 눈물 방울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고,남편도 눈에 이슬이 맺혔다.

(이글을 쓰는 지금도 주책없이 또다시 눈물이 난다.)

아이들이 결혼반지가 없는 엄마,아빠를 보고 몇달전부터 용돈을 모아서

노무현 대통령 부부처럼 커플링을 해드리기로 약속하고(두녀석이)

우리 부부가 잘때 색실로 손가락 크기를 쟀다 한다.

반듯하고 건강하게 잘자라 준것만도 감사할 따름인데 아이들에게 그간 계속 이런저런

장사와 남의집에 일다닌다는 핑계로 다른 엄마들 처럼 신경도 많이 써주질 못했는데

아이들에게 너무너무 미안하고 그저 고마울따름 이었다.

남편은 지금도 가끔 반지 않끼던 습관이 되어서  불편 하다고 아이들 모르게 화장대

위에 올려놓고 나가곤한다.

 

 

현재의 생활이 너무도 힘들지만 개의치 않고 묵묵히 자신들의일을 해나가는

아이들을 보는게 나에겐 더없는 큰 즐거움이요,삶의 희망이다.

항상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들이 끼워준 반지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얘들아! 엄마 아빠 희망의 끈 놓지않고 다시 일어나볼께..

항상 고맙고... 미안하구나....

지금처럼 매사에 겸손하고,남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한발 양보하고

상대방의 약점까지도 끌어 안을수 있는 가슴넓은 청소년기를 보내기 바란다.

엄마..아빠 지금보다 더욱더 노력할께.....얘들아! 사랑 한다. 

 

 

< 2003-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