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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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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6부)


BY 로렐라이 2005-01-18

  6  부

 

  그렇게 일주일 정도 친구의 자취방에서 요양이랄 것도 없는 휴식을 취한 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첫번째 남자가 내게 준 상처는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불현듯 허락도 없이 내 고요한 일상에 접근해 왔다.

  남자에 대해... 사랑에 대해...   텅빈 가슴을 가진 채로 그렇게 대학을 졸업해 조그만 회사에 취직을 했다.

  주위의 친구들은 하나 둘 시집이란 걸 가고 나는 항시 그들의 사진속에 자리하나 채워주는 일로 나의 과거를 지우려 애썼다.

  그렇게 20대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  내년이면 29살...

  아홉은 재수가 없다나...

  집에선 자꾸 올해가 마지막 이라느니...하며 재촉해 댄다.

  결국 28살 나이에 두번째 남자를 만났다.

 

  그는 30살의 회사원이었다. 물질적으로 초조해 보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잘생긴 것도 아닌 아주 아주 평범한 그런 남자였다.

  우리가 만난 지 석달 즈음이 지났을 무렵, 그날 우린 남산을 돌아 한적한 곳의 벤치에 앉아 야경을 즐기고 있었다.

  "참 곱네요."

  "..."

  "이런  야경.. 자주 보시나요?"

  "글쎄요. 밤엔 그다지 늦게 다니지 않으니까..."

  이 바로 노처녀의 내숭기인 듯한 답변이 술술 나온다.

  "그래요. 윤영씨같이 이쁜 여자는 밤 늦게 다니면 위험해요."

  훗...

  "저 아랫동네 참 이뻐요.

  항상 이렇게 이쁜것만 보고 살기엔 우리 생활이 참 타이트하죠. 그죠?"

  "그건 그래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때까지. 주말이래봐야 밀린 잠 자거나 하면 하루가 끝이죠 뭐."

  "그래요.

  ...

  나 ... 윤영씨랑 그런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졌어요.  물론 이 사회에서 저들과 뒤엉켜 같이 사는 이상 그 일상의 틀을 깬다는게 무척 위험천만한 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단조로운 일상을 우리 둘이 함께 함으로써 극복하고 싶어요."

  그는 어둠을 응시한 채 열심히 얘기하고 있었다.

  "난... 자신없는데요. 지루한 삶이  둘이라고 해서 기쁨넘치는 삶으로 변할 거라는..."

  "아니, 노력해야죠.

  아니, 제가 윤영씨를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윤영씨에게 이런 평범하고 지루한 삶보다 기쁘고 설레는 뿌듯한 삶을 갖게 하고 싶어요."

  그 남자는 그날밤 내게 청혼을 했고, 아홉수는 위험수라는 주위의 설득에 못이기는 척 그해 겨울 웨딩마치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