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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꼭지식차마시는 법


BY 바람꼭지 2003-08-13

오늘 새벽 일찍 깨어났습니다.
잠에서 깨난 것이 4시였는데 밤에 12시정도되어 잠자리 들기전에 전기밥솥에 아이들 밥 미리 예약준비하기에 5시에 자동으로 취사버튼에 불 들어 오고아이들 학교 준비와 식사를 하는
오전 6시까지의 공백이 생긴 것입니다.

두 시간이란 시간이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데..
남편의 잠을 깨울새라 부엌으로 와서 좋은 글들도 읽고 하다보니 정말 시간 잘 가는 거 있죠.

문득 차 한잔을 마셔도 정말 우아하고 품위있게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제 주위에 다도를 배우는 사람과 야생화에 관심있는 사람등 멋을 아는 사람들에게서 들은 풍월로..


비록 도자기 아닌 스텐레스 주전자에 물을 끓이면서 물 끓는 소리마음으로 음미하며 듣고..
찻잔 준비!
찻잔도 끓은 물 약간 식힌 걸로 헹궈내고..
찻잎우려내는 정식 찻잔이 아니어서 물을 부은 다음
한참동안 제대로 우려지길 기다리다가..
또 바람꼭지 방식 하나 제정하는 기분으로 찻잔에서 연기처럼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이 다 사라진 다음 차를 마시자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김이 다 사라지는 동안만이라도 그누구의 아내도 엄마도 직장인도 아닌 중녀의 여성조차도 아닌 풀잎같은 혹은 나무잎같은 지극하게 한 생명, 혹은 한 숨길의 나자신으로만 있고싶다는 생각하에.

내 방식대로 만든 바람꼭지용 감잎차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이 왜 그리 계속 올라오는지요?
작은 찻잔에서 소로록 올라오는데 .., 끝없이 올라오는데..,
그만 김 바라보기를 멈추고 후루룩 단숨에 마시고 싶어지는데..
그러면 나자신과의 약속 어기게 되고 품위있는 여인 못 되잖아요.
끝까지 참고 기다리다가 잠시 고개 돌렸다가 보면 또 김이 올라오는데
한 두어번 찻잔을 외면하고 있다가 마침내 김이 다 사라져서 스푼으로 감잎을 건져내는데 아, 그때 숨어 있던 마지막 김이 잔인하게 또 한가닥 실이 되어 올라오네요..

그제서야 주황색도 노란 색도 아닌 야릇한 빛깔의 차를 공손히 두 손으로 받들고 입술을 조금식 축이며 마시는데....
뱃속에서 찻물 들어가는 기미를 알고 꾸르륵 소리도 나고 순간 화들짝 놀라고 입맛을 쩝 다셔지기도 하고 아무래도 품위있는 여인이 못되나봐요.
새벽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여인..
정말 그렇게 소리없이 마셔야되나요?
잘 몰라서..
다음에 이런 시간 주어지면 누룽지죽이나 구수하게 끓일 까봐요.


나혼자 나를 대접하는 것이 이토록 힘든 줄 처음 알았구요.
꽃돼지란 별명을 지닌 고전무용도 배우고 다도에 열의가 대단한 한 지인이 문득 존경스러워집니다.

제가 얼마나 급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평소에 전 기다림과 인내심에 자신이 있었는데 두 시간이란 주어진 시간에도 찻잔의 김 사라지기조차도 초조해서 못 기다리다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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