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째 올라오지 않는 글들에 빈집 드나들듯 휭하니 왔다갔다만 반복을 했었습니다. 문득 서
늘한 바람 따라 보도를 뒹구는 낙엽들을 보니, 새삼 우리가 지나왔던 날들이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지 되새겨 보고 싶은 마음에 글쓰기창을 열게 되었습니다.
잠시 예전 글들을 다시금 읽어 보았습니다. 한참 서로를 알아가던 시절부터, 친숙해져서 못
보면 보고싶고 궁금해 미칠 것 같던 시절도 담겨 있고, 서로에게 너무나 익숙해져 버려 이젠
다른 일들로 삶의 일부분을 채워가는 우리의 모습까지, 세월은 너무나 빨랐습니다.
갑자기 한바탕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서글픔이 밀려듭니다.
연령이나 스타일, 생활태도나 사고방식, 흡사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틀린 모습들을 하고 있
습니다. 서로의 개성이 너무나 판이하고 자의식이 강해 충돌이 있을 법도 한데, 무리없는 사
랑으로 보듬어 안으며 지내온 우리들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즐겁고 웃음소리 가득한 행복
한 날들만 기억으로 남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정말 원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린 어떤 마음으로 방송대에 입학하여 여기까지 달려온 것일까요? 새삼 가지는 의문에 대
한 어리석은 답변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졸업이 목표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무작정 열심히만 해 보자던 일학년 시절, 조금은 서로에게 긴장감을 주고 받으면서 성적을
올리던 이학년과 삼학년 시절, 논문계획서다 과제물이다 정신없이 지나간 사학년입니다.
이렇게 졸업을 목전에 두고 보니 낯선 새 길로 들어서야 함이 서글퍼지고 갈림길에 선 사람
들마냥 각자의 상념에 빠져드는 듯 합니다.
우리가 함께 해온 길보다 헤어져서 걸어가야 할 길이 훨씬 험하여 힘들고 외로울 것 같아 심
약한 저로서는 안타까움에 시간을 멈추게 하고만 싶은 마음입니다.
함께 할 수 있었음이 진정 행복하였습니다.
이제서야 더욱 그 깊이를 느낍니다.
떠난 뒤에라야 그 빈자리의 여운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된다는 서글픈 말씀은 말아주세
요.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항상 도전에 대해 용기가 있는 자신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무리속에 어울려 있다보면 홀로 되었을때 감당해야 할 것이 너무나 힘겹게 느껴질거라 생각
되었고, 그랬기에 혼자인것에 친숙해지려 무척이나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것은 자신의 모습을 포장한 것입니다.
애써 천연덕스럽게 보낼지라도 그 뒷모습을 오랜동안 바라볼 서글픈 내 자신이 있음을 너무
나 잘 압니다.
가을탓인것 같아요. 이렇게 주절대고 있는 나약한 모습.
몇달전 비가 지리하게 쏟아지던 날들을 우린 얼마나 바쁘게 보냈던가요.
항상 뒤늦게 시작했음을 후회했고 조바심에 눈물까지 흘려야 했던 그 소중한 시절, 너무나 바빠 또
다시 잊어버리진 않았나요.. 이젠 아름다운 추억으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끄집어 내야할 이야
기가 되었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내 생애 최고의 시절이었습니다.
2003.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