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만 바라보는 아이가 꼴보기 싫어서 전원을 눌러 꺼버렸다.
잠시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몰두하고 있는사이에 무언가를 뒤져 오는 아이의 손에
시커먼 구두약이 있다.
바보상자만 보고 있지 않으면 무엇을 하든 괜찮겠다 싶어서 오래되어 잘 열리지 않는 구두
약통을 열어 주었다.
모니터가 달구어지고 있을 무렵 작은 아이까지 가세했는지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
았다. 생각을 접기가 싫었지만 한번 들여다 보지 않으면 뒷처리가 어려울 것 같아서 신발이
널려있는 현관문앞을 가 보았더니~~~...
구두, 운동화, 슬리퍼, 검은색이 들어간 신발은 모조리 약칠이 되어 있었고 바닥은 그야말로
가마솥 아궁이의 그을음 투성이었다.
소리를 버럭 질러 욕실로 내쫓고 대충 수습을 마친뒤 이부자리를 폈다. 더 혼날까봐 조용히
책을 보기 시작한 아이의 눈치를 보며 난 잠이 살포시 들었다.
'엄마, 이거 다 읽을 때까지 잠들면 안돼요, 알았죠?'
'응, 그래. 잠깐 생각하고 있을께.'
아들 눈치 보느라 잠도 깊이 못들고 있는데 갑자기 책을 다 읽었는지 울면서 아이가 침실로
들어온다. 왜 우냐고 물었더니 '뽀르뚜가가 기차에 치여서 죽었어요.'라고 한다.
얼마전에 할인마트에 가서 내가 골라준 책이었다.
주인공 아이의 이름이 외우기 쉬웠고 내용 또한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나의 소녀시절에
약간의 눈물을 쏟게 했던 것이라 기억되었기에 눈에 띈 그대로 집어 계산을 했던 것이다.
엄마를 도와주리라는 생각에 구두약을 찾아 먼지쌓인(운동회때 신은) 신발을 닦았던 것은,
제제가 아버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크리스마스에 거리로 나가 구두를 닦아 돈을 벌었던
것을 흉내낸 것이었다.
나의 슈르르까!
행동 하나하나를 간섭하고 통제하는 부모를 감동시키는 작은 천사!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감동,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