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개운하지 않다.
몸도 따라서 발딱 일어나지지 않고 찌뿌둥하다.
어제 장봐왔던 재료들도
확인을 안하고 사와서인지 부족한게 있을 듯 싶다. 아니 분명 부족한 것 투성이다.
요즘은 한번에 딱 맞춰서 흐뭇하게 사온적이 없다.
시장을 보러 나가면' 내가 뭘사러 왔었지?' 하면서 슈퍼안의 복잡한 통로에 멍하니 한참을 서
있다.
집을 나설때 일일이 체크하고 메모 하던 지난 습관들은 애저녁에 사라진 것이다.
급기야 기억력과 사고력마저 상실된 머리를 지닌 나의 몸뚱이는 새벽바람을 가르며 편의점
을 향해야 했다.
가볍지 않은 몸으로 부족한 재료를 가지고 특별한 날에만 튀겨내는 치킨과 모양좋은 샌드위
치를 만들었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부랴부랴 뒷설겆이와 몸치장을 한 나도 친구랑 학교로
향했다.
한 학년에 7~9반까지 있는데 6학년까지 모두 운동장에 모이려니 원안보다 원밖에 비껴 서있
는 인원이 더욱 많다. 그 아이들을 둘러싼 학부형과 장사치들은 조금만 움직여도 먼지가 풀
썩이는 마른 가을 날 속에서 돋움발을 해가지고 운동장을 바라다 보고 있다.
아스라이 추억을 더듬고 있는 멍청한 사람은 나 뿐인듯하다.
귀를 웽웽 울리게 하는 본부석의 목쉰 소리에 왜 자꾸만 쑥부쟁이가(소국같은) 생각나는 걸까?
풍성한 가을 들녘에 지천으로 널려있던 그것을 꺽어와 아치형의 입장터널을 장식했던 가을
운동회! 그렇게나 커보이던 운동장이 이렇게나 좁았던가? 잡풀하나 비집고 설 수 없을 만큼
의 여유도 가지지 못한 이곳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100M도 아닌 60M 달리기를 하고 있다.
체력을 단련시킨다는 취지보다는 아이와 어른, 마을과 동리와의 한바탕 어울림의 한마당이
었던 가을 운동회! 청팀과 백팀의 구분도 할 수 없고 얼큰한 얼굴의 아저씨가 함께하는 삼삼
칠 박수의 응원도 없는 소란만이 가득한 운동장이다.
여기서도 난 낯선 이방인일 뿐이다. 선글라스를 멋지게 낀 사람들과 청바지에 흰남방을 깔끔
하게 맞춰입은 사람들 속에서 홀로 가을을 만난듯한...
끝난것 같았던 승부를 뒤집은 청백계주에서는 괜시리 눈물을 글썽이며 햇살을 탓하고 있었
다. 좁아진 코스에서 밀려 넘어진 사람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과 만화속에서 바퀴를 그려넣은
듯 달리는 키작은 아이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음이 고마울 뿐이다.
수용범위를 초과한 비좁은 공간속에서, 타인을 넘어뜨리고도 뒤돌아 보지 않고 달려야하는
승부속에서, 자꾸만 뒷걸음질 치고 있는 비겁한 자신에게 화가난 가을 운동회!
내가 가진 온힘을 다해 쏟아넣을 열정의 대상이 필요함을 알기에 더욱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