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13

아름다운 사람들


BY 불꽃같은 인생 2003-09-24

내가 만나는 아름다운 사람들 1


주마다 수요일이면 아침이 분주하다.
괜한 늑장을 피우다가는 누군가 도서실 문앞에서 기다릴새라 역시 게으름을 피우는 애들을 닥달하며 출근하는 직장인마냥 후다닥거린다.
옆에 끼고 갈 책이나 과제거리가 있으면 더욱 더 행복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관리사무소 이층을 향하면 어딘가로 나들이를 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곳으로 오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내자신이 뿌듯하다.


밤사이 닫혀져 있던 문을 열고 나를 기다리는 책을 먼저 훑어 본후에 청소를 시작하는데 이따끔 피곤하다는 핑계로 걸레질을 대충 건너뛰기도 한다.
누군가의 잔소리도 없고 내가 있는 두시간만은 적어도 나의 집이라고도 할 수 있기에 다른 봉사자들에게 고백할 수 없는 이런(청소않는)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다.
컴퓨터를 켜놓고 짤막한 단편류의 책을 읽다보면 책을 좋아하는 어렸을 적 내모습같은 아이들이 반짝이는 눈망울로 찾아온다. 나보다 더 제가 읽어야할 책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고 또한 새로들어온 책이 대출되었는지를 묻는다.


책을 읽는 아이들은 너무나 사랑스럽다.
대출카드의 날짜를 보면 하루에 두권을 다 읽고 그것도 모자라 다시 도서실서 몇권을 더 읽고 가는 아이들이 있는데 두꺼운 안경이라도 끼고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에 좀 쉬엄쉬엄 읽으라고 만류도 하고 싶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그리 흔할까 싶어 바라보는 나도 행복하기만 하다. 한자학습지를 가져와 숙제를 하는 아이에게 나이는 몇이냐, 한자공부는 재밌느냐, 아줌마도 너랑 같은 한자공부 한다는 등의 괜한 이야기로 방해하면서 그나이때의 내자신을 떠올려본다.

막차버스가 와서 잠을 자고 돌아서 첫차로 나가는 동네인, 사방이 산뿐인 동네에서 자란 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은 유일하게 학교 뿐이었다. 지리한 수업시간에도 선생님이 옛이야기나 위인들의 어린시절을 말씀해 주실때에는 눈망울의 졸음이 싸악 달아나서 똘망똘망 귀기울였었다.
책을 읽는 순간은 미국이라는 상상도 안되는 큰 나라도 가 볼수 있었고 영웅이 되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수도 있었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언니 오빠가 읽던 다헤어진(나이차가 많이나서) 책을 몇번씩이나 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동네 아이들과의 바깥놀이에 훨씬 정신을 빼았겼었다. 또래아이들은 많았지만 일찍 학교를 가는 바람에 친구로는 지낼수가 없어서 외롭다는 느낌을 항상 가졌고 혼자만의 놀이를 개발해내야 했다. 간혹 동년배의 그 아이들이 학교선배인 내게 숙제를 물어올때면 어찌나 반갑던지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한쪽 가슴이 아려온다.
혼자있는 시간은 턱을 괴고 앉아 비교도 안되는 뛰어난 능력의 주인공이 되어 모험과 여행을 즐기는 상상의 천국이었다. 비록 책을 많이 읽진 못했지만 생각은 누구보다 깊었고 또한 여린 감성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게 했던 내 어린시절!!

봉사자 시간표에는 요일마다 세사람씩의 이름이 예쁘게 걸려있다. 한주에 두시간씩이라지만 정확한 시간과 장기적인 무료봉사에 어느 누구하나 지쳐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어딘가에서 자신이 보람있게 하는 일을 말할때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부분인 것 같다. 모든것은 작은 실천부터 시작한다고 하지 않는가?
자신이 행복해 질수 있는 이런 작은 봉사부터 실천하는것이 남까지 행복하게 해 줄 큰 봉사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작은것에도 감사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람들!!
모임이라도 할라치면 그 분들보다 너무나 소극적이고 게으른 나는 부끄러움에 참석을 못했다. 하지만 모임일이 공교롭게도 내가 하는 시간이라 이젠 도망갈 수도 없다.
그저 적극적으로 도서실의 발전을 도모하는 그분들의 회의를 조용히 지켜볼 수 밖에...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었다.
수요일이 있어서 일주일은 너무나 빨리 가고 또한 산다는 것의 행복함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그대에게 전해 주고파, 흰 옷을 입은 천사와 같이 아름다운 그녀에게 주고 싶어..'
정말 가사와 같은 내 맘이다.

 

--------------------------------------------------------------------------

작년 이맘때 적었던 글로 기억된다.

아파트내의 관리사무소 건물 2층에 마련된 도서실이 생기면서 우연한 계기로 남을 대신해 어린 아들을 데리고 시작했던 일인데 어느덧 삼년이 훌쩍 지났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 선택한일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것은 이렇게 책을 소중히 하는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만남 때문인 듯 하다. 큰것에 가치를 두려하지 않고 작은것 하나에서 소중한 것을 발견하며, 기계에 지배되지 않은 건전한 사고력을 지닌 아름다운 그녀들 앞에서 난 늘 작아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