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새에 영화 보는 방법에 있어 많은 변화 들이 있었다. 내가 갑자기 어디 딴 세상에 있다가 온 것도 아닌데 갑자기 모든게 낯설어 보일 정도로....
때문에 고전적인 스타일을 고집한 나의 방식은 이제 구식이 되어 버렸다. 무슨 말인고 하니, 영화를 보려면 당연히 극장을 찾아가거나 비디오로 보는 정도로 알고 있는 내 스타일이 이젠 통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는 말이다.
내 전통적인 영화보기 방식에 태클을 건 불법복제시디 이다. 녀석 때문에 진작 부터 영화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마땅히 해결 방안이 없을 만큼 그 세력이 넓게 퍼져 있는 모양이다. 벌써 내 경우만 해도 그렇다. 비록 실패를 했지만 '사이드웨이'란 영화를 찾아서 시디로 구울 생각을 해보았다. 어찌된 일인지 90프로 대에서 더이상 진행이 되지 않는 바람에 포기를 했었다.
나는 정말 영화를 좋아하기에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정당한 댓가를 주고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게 내 맘 같지가 않았다. 개봉관이 극히 적었던 이 영화가 관객이 들지 않아 조기종영이 되었고 비디오 출시는 되었는지 어쨌는지 감감 무소식 이었다. 디비디 소식이 있어 일부러 이번 기회에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시켜 디비디를 볼수 있게 채비를 해 두었다. 그런데 그것도 내 차지가 아니었을까, 비디오 가게에 여러번 말을 해 놓았는데 감감하다. 그러던 차에 사이드웨이 시디가 내게로 왔다. 따지자면 불법으로 영화를 보게 된 셈이지만 보고 싶었던 영화 시디를 받고서 너무 행복한 나머지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어바웃 슈미트'를 감독한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부인은 한국계 캐나다 배우이다. 그런 사실이 영화와 별 상관이 없지만 페인감독은 자신의 부인을 이 영화에 출연시켰고 그녀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두사람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감독과 배우로 멋진 콤비를 보여 주길 바랬다. 그런데 앞으론 그런 콤비를 기대하긴 글렀다. 두사람이 영화 이후로 이혼을 했기 때문이다. 무슨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부인인, 산드라오 연기가 너무 리얼했던 탓은 아니었을까?
그러게, 왜 자기 부인을 그렇게 야한 연기를 시켜가지고선....
알렉산더 페인 감독과 부인 산드라 오
앞의 문장은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어 강조를 한다. 단언컨데 영화는 전혀 외설과 상관이 없는 인생에 관한 잔잔한 영화다. 그 잔잔한 영화를 이끌어 가기 위해 필수불가결 하게 정사신이 개입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차원의 일이었다.
이 영화에는 이렇다할 유명 배우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구닥다리라고 할 정도로 늙은(중년의) 전에 한번도 영화에서 본적이 없는 두남자가 주인공이다. 마일즈와 잭, 두사람은 외모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오랜 죽마고우.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두사람, 마일즈(왼쪽)와 잭
중학교 영어교사이자 소설가가 꿈인 마일즈와 한때는 잘나갔던 배우 잭은 잭의 결혼을 앞두고 포도투어에 나선다. 일주일 동안이 그들의 휴가이다. 같은 차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두사람은 전혀 다른 생각으로 복잡하다.
출판사로 보낸 소설이 출간이 될것 인가 말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마일즈와 결혼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많은 여자와 자 볼까를 고민하는 잭.
마일즈는 소심하고 잭은 바람둥이다. 소심한 마일즈는 2년전에 이혼한 전처를 못 잊고 있다. 심지어는 그녀가 자신을 그리워 하다 다시 돌아올 것이라 기대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사랑으로 다가온 마야를 받아 들이지 못한다.
영화는 여행중인 마일즈와 잭, 그들과 어울리게 된 마야와 스테파니( 산드라 오)가 이끌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이들의 대화만으로 진행된다.
마일즈와 잭, 마야와 스테파니의 즐거운 한때
또 한가지 중요한 영화의 포인트는 와인이다. 감독의 섬세한 와인에 대한 감각이 영화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와인에 문외한인 내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던 수많은 종류의 와인이 영화속에 등장한다. 와인 애호가인 마일즈는 한창 포도철인 캘리포니아 주변의 와인전문점을 들러 와인을 시음하는 일이 유일한 낙이다.
포도농장도 자주 등장한다. 그것도 해질 무렵 온화한 주황빛을 받고 서 있는 포도농장이 자주 비춰 진다. 저녁햇살이 아련한 포도빛을 만들고 있는 길, 그 길에서 우정( 마일즈와 마야)과 사랑(잭과 스테파니)이 깊어진 네 사람이 햇살을 등지고 앉아 있던 배경이 특히 아름다웠다. 아득히 멀리까지 포도농장이 펼쳐지고 햇살은 막 캘리포니아 해안가로 떨어지려는 찰라였다. 늦은 소풍이라도 나왔을 것이다. 면보자기에 둘러 앉은 네사람 뒤로, 와인잔 속으로 노을이 지는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들이 흘려보낸 웃음이 햇살 속으로 스밀 것같은 세밀한 터치가 느껴질 정도였다.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소풍-
마일즈는 마야한테 끌린다. 그것이 사랑인것 같은데 그는 쑥맥처럼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모르는것 같다. 와인의 매력에 빠진 그가 와인의 향기만 맡고도 그 와인에 대한 세세한 설명까지 곁들일수 있었건만, 그 나이 먹도록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영 읽을줄 몰라 답답할 정도였다.
스테파니와 잭 커플은 뜨겁게 달아올라 이제 잭은 얼마 안있으면 결혼할 여자 한테 가고 싶지 않을 정도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뜨겁게 달아오른 사랑은 또 그만큼 빨리 식는법..
이 남자 언제 철드나 싶었는데 인생의 옆길로 두번씩이나 새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약혼자 임을 깨닫는다.
낮동안엔 뜨거운 햇살로 익어가고 밤엔 해안가의 차가운 바람에 식기를 반복하는 동안 포도의 맛이 깊어지고 오크 통속에서 오랜 기간 숙성을 거쳐 비로소 완성되는 와인, 그 속성을 아는 마일즈는 결국 자신이 마야를 절실히 원하고 있음을 너무 늦지 않게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
사랑, 그것 하나의 방향만 있는 것이 아니더라. 현실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땐 머리 싸매지 말고 옆길로 한번 새보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그곳에서 만날지도 모른다. 그때는 의심하지 말지니. 사랑이라 생각하면 당신의 진심을 보여 주어라. 라는 이야기.
해안가를 따라 끝없이 펼쳐진 포도농장에 저녁햇살이 물들던 멋진 배경과 마시지 않아도 취할것 같은 와인의 향취가 진하게 느껴지던 영화, 사이드 웨이를 보고 나서 나도 모르게 내뱉은 한마디. '아, 나도 포도농장이 끝없이 펼쳐진 그곳으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