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딸아의 생일날이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집에서 간단히 음식을 준비하고 케잌을 마련하여
가족과 함께 조촐한 생일타피를 했었다.
그후,학교에 다니면서 부터 친구들을 불러 함께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1학년땐 우리 아이와 생일이 이틀 차이가 나는 아이친구가 있어
함께 생일 파티를 했었다. 피자집에 반아이들 전체를 불러 놓고.
또 가까이 지내던 아이친구 엄마들 몇명까지 합세해서.
그날 피자집은 우리 아이네 반 아이들과 엄마들로 전세를 냈을 만큼
복잡했지만 아이들과 더불어 어른들도 흥겨운 자리였다.
물론 아이도 매우 만족해 했다. 아이들로 부터 받은 선물을 놓고
즐거워 하던 아이의 표정이 그대로 떠오른다.
2학년때 3학년때는 집에서 생일을 치뤄 주었다.
친구엄마를 불러서 닭도 튀기고 다시물 내려 떡볶이도 만들고
샐러드를 만들고.... 아이가 즐거워 했음은 물론이다.
지난 4학년땐 그 당시 아이들이 생일을 치루는 방식으로 생일파티를 했다.
햄버거집에 가서 간단히. 아이가 원해서 이기도 했지만
직장에 다닌다는 핑계로 사실은 내가 귀찮아 아이 의견에 따랐다고 해야 겠지.
햄버거집엔 우리 아이와 그 친구들 뿐만 아니라
또다른 생일파티 팀들로 북적였다. 따라온 동생친구들 까지 합세해
비좁은 햄버거집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끝나고 나서 한참동안 귀가 멍멍한
느낌이 들 정도로... 다음 순서로 당연히 노래방으로 갔었다.
사실은 아이들이 햄버거 먹고 형식적으로 생일케잌 자르는 일보다는
노래방가서 노래 솜씨를 뽐내는 일을 훨씬 더 좋아하는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 아이들이 다 그렇다고 하지만 그래도 내가 아는 아이들은
순수함을 간직한 아이들이라고 어거지라도 쓰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노랫말이 거칠고 성적농담이 들어간 유행가였다.
조금 놀랬다. 예쁘고 착하게 보이는 아이들이 저희들도 이해할수 없는 어른들의
노래를 그대로 흉내 내는걸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더랬다.
세태가 무참하게도 아이들의 순수를 다 갉아 먹는구나 싶었지만
내 혼자만의 생각으로 세태를 거스를수 없는 법 임을 아프게 인정해야 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또 일년이 지나갔다.
아이는 지난해와 같은 방식의 생일파티를 원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아도 햄버거 집의 북적거리는 분위기속에서
생일파티는 차라리 안하는 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보았다.
아이의 생일날 꼭 들려 주고 싶은 노래가 있었다.
우리국악가요 '착한아이, 예쁜아이'.
몇번 국악시간을 통해 들었는데 노랫말은 예쁘고 노래하는
아이(이규빈)의 목소리는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가족 생일에 늘 그래왔듯이 딸아이 생일에도 노래선물을 안기고 싶었는데
노래를 들을 시간이면 아이는 학교에 있을 시간이었다.
고민을 하다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해냈다.
일단 라디오 홈에 들어가 사정을 얘기하고 생일축하곡을
아이가 셋째 시간이 끝나는 (11시 20분에서 30분 사이)에 들려 줄수
없겠냐고 정중히 부탁을 했다. 예상보다 빨리 운영자는 답을 주었다.
그렇게 해보겠으니 한번 들어 보시라고.... 라디오 운영국의 친절에
벌써 부터 조짐이 좋았다. 그래서 아이한테는 알리지 않고 선생님을 찾아 뵈었다.
부탁 드릴일인데 전화로 말씀 드리기가 송구해서.
음료수만 달랑 들고 선생님께 대강의 내용을 말씀드렸다.
그러겠다고 선뜻 대답해 주시니 한결 감사했다.
선생님도 다행히 우리 음악을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아이들 한테 단소도 가르쳐 주시고 아침자습 시간엔 배경음악 삼아
우리음악을 들려 주시곤 하신다.
조금전에 라디오 에서 아이의 생일 축하곡으로 신청한 음악을 흘러나왔다.
역시 생일축하곡으로 잘 선곡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쁜곡이고
생일에 딱 맞는 곡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노래말에 아이의 마음을 섞어 보니 문득 눈물이 흐른다.
진정으로 우리 아이들이 그 노래의 가사처럼 예쁘고 착하게 자라
'어머니의 믿음'과 '선생님의 이해'와 '아버지의 격려' 속에서
아름답고 의젓하게 성장해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실어 보냈다.
내 마음이 아이에게 가닿기를 소망하며...
생일 파티를 대신해서 반아이들에게 간식거리를 장만해 보냈다.
소박하게 준비하라는 선생님의 뜻과 맞춰 빵과 요구르트로...
그렇게 하면 아이는 반아이들 전체와 함께 생일을 축하 받을수 있을 것이다.
몇명의 아이들과 시끌벅적한 곳에서 정신없이 생일파티를 하는 것보다
아무래도 그편이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겠다고 한다. 아이들의 놀이 문화의
하나로 노래방이 단단히 자리 잡았나 보다. 요즘은 아이들 끼리 돈을 모아서
노래방을 가곤 한단다. 아이가 원하니
오늘은 생일이니 실컷 노래를 부를수 있도록 해줘야 할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던 유월은 90년만의 더위를 예고한 94년의 초여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낮동안의 더위가 밤까지 이어져 열대야로 사람들은 잠못 이루는 밤을
보냈던 해였다. 유월 초여름부터 거세게 몰아치던 더위가 아이를 낳던
18일을 전후해 한풀 꺽였었다. 낮부터 기온이 올라간다고 했는데 지금은
잠시 선선한 바람이 분다. 내 아이를 낳던 그날처럼. 15시간이라는
진통의 시간도 지금은 찰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내 곁에 온 아이.
그 아이가 오늘 생일축하곡으로 들은 노랫말처럼 예쁘고 착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