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둘쨋날, 오늘도 새벽녘에 눈이 내렸나 보았다.
봄이 시작되려는 이즈음 들어 웬일인지 자주 눈이 내린다.
그리곤 또 알수 없게도 반쯤 길거리를 메우고 산을 덮었던 눈이
한나절이 지나지 않아 다 녹고 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벌써
여러번 반복 되더니 오늘도 예외가 아니다. 새벽녘에 시작된듯한
눈은 아침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먼저 베란다로
가보았다. 오늘은 봄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이 새학년을 시작하는 첫날이었다.
아이들 보다도 그간에 지리한 방학이라는 기간속에 게으름에 빠져 있던
내 자신에게 뭔가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어 주어야 할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선한 아침공기를 품어 내는 아침창 앞에 서서 새로운 느낌을 갖고 싶었다.
베란다 유리문으로으로 내다본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날은 그닥 춥지 않았는데 한가롭게 눈송이가 허공을 가볍게 떠돌다
낙화하는 모습이 평화롭기 까지 했다.
봄날에 내리는 눈... 마침, 오늘은 그간의 추위가 풀릴 것이란 기상청 예고도
있던 차였고,그래서 맑간 아침속으로 푸근한 봄바람을 기대했던 터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눈이 내리는 아침,,,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차지 않은 바람속을 가르며 아침을 열고 있는 눈의 세상이 평화롭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환한 햇살과, 하얀눈으로 더욱 밝게 열린 아침이었다.
늦잠에 익숙한 아이들은 개학 첫날의 설렘보다는 이불속에서의 미적거림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감은 눈을 뜨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흔적을 본다.
베란다를 거쳐온 환한 햇살이 방안을 밝게 만들고 긴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듯 억지로 눈을 감고 있는 아이의 눈커플에도 반사된다.
살며시 아이를 안으니 그제서야 감았던 눈을 떠서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
여전히 밖에 눈이 내리겠지 싶었으나 밖을 내다볼 시간과 여유가 없이
정신없이 바쁜 아침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학교로 남편은 직장으로 흩어지고
마침내 혼자 된 시간이 되어 밖을 바라보았다.
이미 눈을 그쳐있었다. 내린 눈을 아랑곳 하지 않은 차들의 도로는 이미 눈이 녹고
길가에 조금이라도 땅이 있는 곳엔 얇게 눈이 깔려 있었다. 그 길을 따라
퇴색된 풀잎들이 더러는 삐죽 솟아 있고 더러는 가지런히 잠자듯 누워 있었다.
그위로 드문 드문 쌓인 눈의 흔적과 길따라 심어진 전나무가지에 내린 눈의
흔적이 조금전에 눈이 내렸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라디오 볼륨을 높이고 오랫만에 음악에 젖어 본다. 구수한 차향기가 보태져
삼월의 아침속에 맑간 향기가 돋아나올것 같아..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란 생각을
해보는 아침,, 이 행복한 아침 속엔 작은 기쁨이면 족했다. 신문을 펼쳐 들다 말고
다시 창밖을 바라보니 이젠 눈의 자취가 없다. 갑자기 눈이 내렸고
순식간에 눈이 쌓였다가 홀연듯 눈의 자취가 없어지는 이런 아침이 참으로
묘했다. 눈이 내렸었노라, 멀리 봉우리에 눈을 뒤집어쓴 산만이 가만히 알려준다.
말없이 눈을 맞고 그 눈을 품고 있는 산은 언제봐도 의연하다.
그런 산의 모습을 날마다 베란다 유리창을 통해 볼수 있음은 분명 축복일 터이다.
거실 탁자에 앉아 음악을 켜두고 차를 마시며 신문을 보며 가끔
예지를 가득 숨겨두고 있을 것 같은 먼산의 봉우리를 쳐다본다.
거실에 앉아서 세상을 바라다 보면 저 아래 사람들의 세상이 다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그저 산봉우리만이 우뚝 거기 솟아나 있을 뿐이다. 오늘은
그산이 흰눈에 쌓여 있어 내 시선은 더 자주 창밖으로 향한다.
서설로 맞이한 봄날 아침, 조금씩 푸근한 기운이 돋는듯 하다.
눈이 쌓이고 그 쌓인 눈이 녹아 흙으로 스며 들면 분명 봄기운을
받은 수많은 생명들이 땅아래서 꿈틀 댈 것이다. 오늘은 그런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날이다. 전나무 가지끝에 남겨져 있던 눈마저
녹아 내리니 순간 햇살이 환하게 번져 온다. 봄이 햇살의 긴 손길로
대지를 어루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