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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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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에 취하다


BY 빨강머리앤 2004-10-09

 

가을의 시작즈음, 가을처럼 친구가 내게로 왔다. 가을바람처럼 슬픈 사연을 간직했으면서도 가을햇살처럼 넉넉한 웃음을 간직한 친구였다. 이곳에 이사와서 변변찮게 사람 사귀는 일도 못했는데 아무래도 그 친구를 만나려고 나는 그동안 외로웠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보이는것이라든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엮이게 되는 조건등에서도 비슷한 점을 많이 발견했지만 무엇보다도 그 친구가 좋아하는 취향이 나랑 비슷해서 놀라울 정도였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처음보고 좋은 친구가 될것임을 예감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낼모레면 마흔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조건과 사고의 다름을 넘어 그리고 무엇보다 이해관계를 떠나 그냥 순수하게 친구로만 만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음을, 지금 까지 살아온 세월에 비춰 그것이 쉬운 인연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어제는 그 친구와 양수리로 나가 맛있는 점심도 먹고 북한강가를 끼고 드라이브를 다녀왔다.마석을 나와 경춘가도를 달려 청평을 거쳐 청평대교를 건너서 북한강을 낀 양수리를 달리는 코스였다.  그 길은 알만한 사람은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중 한곳이다.

날씨가 맑고 깨끗했다. '전형적인 가을'날씨로, 하늘은 파랗고 바람이 적당히 불어 나들이 하기에 좋은 날씨였다. 그냥 그렇게 나서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확트일 만한 그런 날은 산이어도 좋았을 것이고 강이어도 좋았을 것이지만  산과 강 그 둘을 다 아우르는 멋진 길을 맘껏 내달리는 기분이란.... 차량도 뜸한 국도변에 때늦은 코스모스가 작은 바람에도 가녀린 줄기를 흔들리고 있었다.

어디를 바라보아도 산능선이 장엄하게 이어지고 왼편으론 산길따라 구불구불  강변이 따라 붙었다. 하늘빛을 받은 강물도 눈부시게 푸르렀고, 햇살을 따라 반짝 이며 유유자적한 흐름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의 조화속으로 절정에 달한 논배미의 벼들이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며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산과 강과 황금빛 들판에서 무한한 평화로움이 전해졌다. 그 풍요로운 가을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싶어 크게 심호흡을 해보았다.

말을 맛깔스럽게 이어가는 쪽은 항상 그 친구쪽이었고 나는 귀는 친구의 추억담에 바싹 귀울이고 눈은 달리며 마주하는 산을 향했다. 운전하느라 제대로 바깥풍경을 감상할수 없는 친구한테 미안할 정도로 국도변 산야가 아름다웠다. 벌써 가을꽃들이 무성했다.  그 가운데 친구의 이야기는 감동스럽기도 하고 슬프고도 행복했다. 

친구는 자신이 낳은 딸이 아닌 남편이 데리고 온 딸아이를 건사하고 살아온 동안의 세월을 담담하게 얘기했다. 그 남편과의 극적인 결혼결정에 가서는 나도 눈물이 글썽여 지고 지금, 딸아이와 이제 겨우 네살인 아들과 그리고 남편과 더불어 자신의 일생중 가장 행복한 때를 보내고 있음이 한없이 감사하다는 그녀의 고백에 가슴이 뭉클해 지기도 했다.

이 동네 토박이라는 그녀의 추억속 들여다 보다 몇번인가는 깜짝 놀래기도 했다. 마석에 이사와서 내가 가장 맘에 들어하고 좋아한 장소에서 만들어진 그녀의 추억들이 있었기에 말이다. 그런 우연들을 발견하는 일은 또 얼마나 큰 기쁨이던지.

구비구비 강길에 숱한 가을 꽃들이 피어나 있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와 그리고 개미취가 가는 곳마다 피어나 길손을 반겨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산모퉁이를 돌아 마주하는 산의 절개면에서 발견하는 가을꽃들에 한없이 탄복을 하며 가는 길이었다. 멀고 가까운 곳에 병풍처럼 펼쳐진 산 꼭대기 부분은 벌써 가을빛으로 붉그스름하게 보였다. 머지않아 산중턱에도 가을빛이 쏟아져 들어와 숲은 가을빛으로 완연해질 것이었다.

길가에 피어 있는 이름모를 하얀꽃들과 노랗게 물든 싸리나무 잎과 덩쿨나무의 붉은 잎새에 한없이 눈길이 머물던 길을 돌아 산속에 있는 아담한 한식당에서 배부르게 점심을 먹고 시간가는줄 모르고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가을빛이 스민 나무잎에 단풍이 들듯, 내 마음속으로 가을빛 같은 친구의 마음이 들어왔다. 나 역시 친구의 마음에 단풍잎같은 가을빛 한자락이고 싶은 마음이었다.베풀고 사는게 행복하다는 친구의 여유로운 미소가 가을 햇살을 닮아 보였다.

친구가 있고, 잠깐의 여유로만으로 강을 만나고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산을 만날수 있는 자연이 있어 이 얼마나 행복한가 싶은 하루였다. 물빛 깊은 강물이 햇살을 받아 짝이는 강을 끼고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산길을 달렸던 기억 만으로 나의 일상은 얼마동안 풍요로울 것이리라..

마침 오일장이 있던 날, 친구는 장을 보러 나는 직장으로 갈라져 갔는데 뜻밖에 얼마후 친구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커다란 꽃다발을 한아름이나 안고서 말이다. 안개꽃에 섞인 국화꽃이 그리고 천년홍 한다발이었다. 가 을 날 에 찾 아 온 뜻 밖 의 행 복..  가을빛이 나를 취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