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아이들의 가을 운동회 시즌이다. 조금 빠른데는 이미 지나갔고, 지난주 우리아이들학교의 운동회를 즈음하여 다른 학교 운동회가 한창이었다.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서울학교 못잖게 학습수도 많고 학급인원도 많지만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시골학교 같은 분위기의 학교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각 학년당 한반인 시골학교들... 그래서 우리 학교 다닐때 처럼 분위기가 아기자기 하고 선생님과 아이들과의 관계도 정다울수 밖에 없는 학교들이 있다. 그런 학교에서 요즈음도 운동회를 할라치면 부모님도 함께 참여를 하곤 한단다. 아이들 숫자가 적은 관계로 잔치분위기를 내기위해선 부모님이 합세를 하고 선생님도 아이들과 한마음 한몸이 되어 운동회를 주체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우리 어릴때 운동회처럼 부모님과 더불어 동네 잔치 분위기로 한껏 부풀어 올랐던 가을운동회가 아직 그곳에 남아있다는 것이 참으로 부럽기만 했다.
엊그제 우리 아이들학교의 운동회가 있었다. 시골운동회가 아니라 아이들 만으로도 그 숫자가 너무 많아 엄마들이 끼어들 틈이 없고 많은 아이들이 한번씩 경기를 진행한다도 빡빡하기 이를데 없는 운동회였다.운동회를 보기 위해 찾아온 아버지들은 거의 없고 엄마들만 옹기종기 모여 플라타너스 그늘아래서 그냥 구경만 하다 온 그런 운동회였다.
그래도 '가을운동회'란 말 자체가 마음을 부풀게 했었다. 운동회라고 들떠서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을 보니 내 어릴적 운동회에 대한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늘 바빠서 좋은 옷보다는 일하기 편한 평상복 차림이던 엄마는 장농의 옷중 가장 좋은 옷으로 골라 입으시고 간만에 김밥도 만들고 손수 빵을 만들어 운동회용 특별점심을 싸오곤 하셨었다. 달리기에 무던히도 자신이 없던 나는 운동회가 꼭 즐겁지 마는 않았지만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는 일도 좋았고, 어른들과 더불어 운동장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즐겁게 점심을 나눠 먹는 일이 좋았었다.
하얀운동복에 청군이면 푸른띠를, 백군이면 하얀띠를 두르면 되었었다. 운동장엔 만국기가 펄럭였고 운동장을 향해 한껏 입을 벌린 확성기를 통해 행진곡 풍의 동요가 흘러 나왔다. 그 동요를 들을때 서라야 진짜 운동회가 시작되었구나 싶어 마음은 벌써 100미터 달리기를 하고난듯 두근반 세근반 뛰고는 했었지. 달리기를 하다 쪽지를 주워 적힌대로 엄마손잡고 혹은 아빠손잡고 혹은 선생님 손잡고 뛰었던 따스했던 기억들..
비때문에 하루가 연기되고 맑게 개인 다음날 운동회를 하게된 우리 아이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맛난거 사오라고 당부했는데 막상 학교에 가보니 내손이 부끄러울 정도로 학급임원 엄마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간식에 음료수에... 학교에서는 친절하게도 급식까지 실시했다. 일하는 엄마들을 위한 배려였겠지만 점심을 싸오라면 기꺼이 김밥을 맛나게 말아왔을텐데... 학교당국의 친절한 배려에 어쩐지 아쉬운 마음까지 들었다.
달리기를 잘하는 아들녀석은 일등을 해서 의기양양하고 본래 달리기에 도통 관심이 없는 딸아인 꼴지에서 두번째를 달리고도 '그래도 꼴찌는 아니네~' 라며 어이없어 하는 엄마를 오히려 나무란다.늦게 학교엘 가는 바람에 일등한 아들녀석의 당당한 모습도 일곱명 달리는 중에 여섯번째로 골인한 딸아이의 모습도 놓쳐 버렸다.
2학년 전체 순서로 소고춤이 있었다. 빨간띠와 파란띠를 두르고 고깔모자를 쓰고 소고춤을 추는 아들녀석을 찍으려고 몸을 재게 움직였는데 워낙에 많은 아이들 틈에서 아이를 찾을수 없어 사진을 못찍고 말았다. 다 끝난 다음에 찍어줄까, 싶었는데 아들녀석의 반을 찾아 보니 그새 몸에 붙인 띠를 다 거둬 내버렸고, 순서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아는 엄마와 몇마디 나누다 보니 딸아이 순서였다. 훌라후프 돌리면서 마카레나 춤을 추는 고난도 훌라후프돌리기. 중간에 훌라후프를 놓치는 아이들은 그대로 자리에 앉아야 하는가 보았다. 딸아이는 훌라후프는 잘돌리니 내가 찾아 갈때까지 돌리고 있겠지 싶어 조금 느긋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반을 어떤 순서로 배열했는지 맨 끝반인 우리 아이반이 보이질 않았다.겨우 아이반을 찾아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철퍼덕 주저 앉아 있는 딸이이가 보였다.
그러다 어느덧 점심시간, 선생님따라 아이들은 교실로 들어가고 부지런하게 점심을 따로 싸온 엄마들은 플라타너스 그늘아래 자리를 펴고 앉자 점심들을 먹었다. 휴대폰이 여기저기서 울리고 '짜장면 시키신분~','00치킨 시키신분~','00피자 배달왔습니다'...
엄마들의 점심상이 즉석에서 차려지고 예상치 못한 이 상황에 어리둥절해 있다가 아는엄마손에 이끌려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치킨에 콜라에 학교앞 노점에서 파는 커피까지, 배불리 먹고 났는데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그렇게 순서를 빽빽히 할것이 아니라 한가지를 좀더 오래보여줄수는 없었을까? 그래서 엄마아빠들이 아이들의 재롱을 온전히 감상할수 있게 할수는 없었는지...
그렇게 순서를 조금 느슨하게 잡아 어른들과 함께 하는 순서를 만들었으면 더 멋진 운동회, 아이들이 오래 추억할수 있는 운동회가 되지 않았을까... 또,엄마들이 조금 수고로웠겠지만 운동회 날 만은 집에서 엄마가 만든 점심을 싸오게 할수는 또 없었을까? 그래서 학교 운동장 한켠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오붓한 소풍을 즐길듯 점심을 먹게 할수 있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아이들에게 빵과 음료수를 주는 대신 모두 수고했다고 노트한권을 안길수는 없었는지.. 여러가지 아쉬움이 남는 아이들의 운동회였다.
나는 지금도 내 어릴적 운동회를 선명하게 떠올릴수 있을것 같다. 만국기가 펄럭이던 운동장, 행진곡풍 음악이 쿵쾅거리던 학교주변, 하얀운동복에 머리에 푸르고 하얀띠를 두르고 기쁨에 들떠 학교로 뛰어가던 친구들, 오랫만에 곱게 단장하고 학교를 향하던 어르신들, 그리고 이 모든 풍경위로 파랗게 펼쳐져 있던 가을하늘을. 내 순서가 되어 하얀줄이 그어진 스타트라인에 서서 앞을 응시하던 그 떨리던 순간까지도.
오늘날 우리세대의 운동회를 재현하는 일은 여러가지로 어려울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회가 변하고 시대가 변한 만큼 달라져야 하는것도 있을 테지만 어쩐지 아이들의 운동회 만큼은 그때 그시절이 참 좋았다 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