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태풍이 지나가고 쾌청한 가운데 쌀쌀한 아침이 그렇게 말을 해주고 있었다. 오늘 아침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긴팔 셔츠를 입혀 보냈다. 긴팔셔츠를 입으며 아이가 그랬다. '엄마, 진짜 가을이네' 사실은 여름과 가을, 혹은 계절과 계절을 가르는 기준이란게 애매모호하기 쉽다. 누군,여름한복판에 있는 달력상의 '입추'를 맞이할때를 가을의 시작이라고 한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즈음 부터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하니 절기상의 입추를 가을의 시작이라 한들 누가 뭐라 겠는가? 나 역시도 그때 즈음 벌개미취가 피어 연보랏빛 가을을 미리 채색하는걸 보았다. 만개한 보랏빛 꽃속에 들러 붙어 꿀을 빨고 있던 벌은 이미 가을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 9월의 첫날을 가을의 시작이라 말하기도 한다. 일년 열두달을 사계절로 나뉘어 세달씩 한계절을 똑같이 분배하자는 것이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오히려 사계절을 공평하게 나누는 그 생각이 가장 타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심정적으로 9월, 그것도 9월의 첫날부터 가을이 오는 걸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을 했었다.
그렇듯 가을의 시작이라는 것이, 혹은 계절의 시작이라는 것은 개개의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 보다.
어느때 부턴가 나는 계절의 전령사 역활을 자청했었다. 그것은 편지를 쓰는 버릇을 들인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오랜시간동안 편지친구가 되어 준 고교때 친구와 선생님.나는 그들에게 편지를 적으면서 계절의 변화를 세세히 살피는 버릇이 들었다. 그래서 봄보다는 봄이 시작되려는 시기, 녹음이 완성될 때보다는 잎새가 하나씩 피어나 숲을 채우는 과정을 단풍든 산보다는 누르스름하게 산능선 부터 물들기 시작하는 초가을 무렵이 내게 훨씬 많은 생각들을 던져주었고 좋은 편지 소재가 되어 주었다.
그 즈음이면 예쁜엽서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던 나는 가장 그 계절에 어울릴 만한 엽서를 골라 지인들에게 엽서를 띄우곤 했었다. 지금도 이십여년이 훨씬 지난 오래된 엽서를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중이다. 오래되어 우편번호의 배열도 틀리고 누렇게 색도 바랬지만 애지중지 하나 둘 모아 두었던 엽서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는건, 어쩌면 그 엽서들이 내 사춘기 소녀시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그것들이 정말로 필요없게 될날이 있을 것이다. 혹은, 옛날, 그시절도 돌아가 친구에게 불현듯 엽서를 쓰고 싶어 지면 하나둘 오래된 엽서를 꺼내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젠 누가 뭐래도 가을이다. 베란다 창문을 열면서 멈칫 거리게 된다. . 서늘하게 와닿는 아침기운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베란다 창문 가득 안겨오는 산능선에 아침햇살이 고루 퍼져 든다. 언듯 산능선에 누르스름한 가을빛이 스며있음을 보았다. 아침햇살속으로 살폿 스며드는 가을빛에 문득 가슴까지 서늘해져 오는 느낌이다. 이렇게 계절은 가고 오고 하는 것임을 벌써 서른여뎗해를 보았는데도 계절의 변화는 늘 낯설다.그 변화앞에서 담담함 보다는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도 항상 그렇다.
전자우편의 편리성에 안주하고 편지를 쓰지 않을 날들을 돌아본다.그것은 지금이 가을이라서 떠오르는 생각이다. '가을'과 '편지'는 참 잘어울리는 한쌍이다. 아무리 강철심장을 가진 이라도 한번쯤 편지를 써볼 생각에 젖게 만드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 아닐까. 전자메일의 신속성과 편리성은 자칫 생각의 깊이를 엷게 만들수 있을 것이다. 편지가 갖는 여유와 지긋한 감정의 전달 방법을 결코 따라올수 없는 ...
요즈음은 길을 가다 빨간우체통이 부쩍 눈에 들어온다. 다행히도 이곳엔 아직 빨간 우체통이 곳곳에 서있다. 한때는 우체통이 없어 편지를 못쓰겠다 핑계를 댄 적도 있었다. 실제로 서울엔 우체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편지 쓰는 이가 점점 없어지면서 우체통 역시도 하나씩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편지쓰는 이가 사라지는 세상은 어쩐지 삭막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우체통이 없는 동네 역시도 쓸쓸할것만 같다. 누구의 탓이 아니다. 편지를 쓰지 않은 우리모두의 탓일 것이다.
퇴근길에 우체통을 열어보며 거기 육필로 쓴 친구의 편지가 있는지 먼저 확인해 본다. 오랫동안 그리 해왔던 습성이다. 오래전 편지를 주고 받았을때 날마다 편지를 쓰던 날들도 있었다. 일기를 쓰듯 친구와 주고 받는 편지를 쓰며 우리는 서로의 거리의 간격을 좁히려 애를 썼었다. 이젠 가끔씩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 받는다. 그것도 특별히 필요할 때만....
편지를 잃어버린 마음이 아쉽다. 우체통이 사라지는 거리가 쓸쓸하다. 가을바람이 재촉한다. 더욱 청정해진 울음으로 귀뚜라미가 재촉한다.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 보라고... 가을편지를 써보라고 나를 부추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