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시작될 무렵이면, '사월의 노래'가 듣고 싶었다.
그것도 간절하게 '4월의 노래'가 듣고 싶어
나는 소녀처럼 엽서를 적어 라디오에 음악을 신청 하곤 했었다.
4월의 첫날 그 노래를 들을수 있도록 사나흘의 여유를 두고 미리 신청을 하면
사월의 첫날, 백남옥의 목소리로 '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로
시작하는 '4월의 노래'를 들을수 있었고,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비로소 봄을 맞는
설움'에 겨워 가슴 벅차하곤 했었다.
어느때 부턴가 엽서 대신 간단하게 그 라디오 홈페이지에 음악신청을 하곤 했지만
나의 다분히 소녀 취향적 습관은 한동안 계속 되었었다. 작년까지도..
'4월의 노래'를 들으며 비로소 시작된 봄을 느낄수 있었듯이 오월엔
'향기로운 아카시아 한다발'이란 노래를 들어야 직성이 풀리곤 했었다.
그것은 직성이 풀린다는 말보다는 내 마음이 원하는 한가지를 풀어내는
일이 었다고 해야 더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것은 아카시아가 피기 시작할 즈음이라야 가장 잘 어울린 목소리였고,
실제로 러시아 가수인 루드밀라 센치나의 목소리는 아카시아 꽃 하얀 향기를
닮아 있었다.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하얗게 무리져 피어나는 아카시아 오솔길을
떠올릴수 있었고, 아카시아 꽃길을 걸어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그러다가도 정작 아카시아 피는 때를 놓쳐 아카시아가 만개하고 산으로 부터
조금 떨어진 우리집까지 향기를 실어다 주면 그때서야 부랴부랴 아이들과
산행을 서두르곤 했었다. 조금 느즈막히 산을 오르면 제법 둥치가 커다란 아카시아는
반가운듯 가지를 마구 흔들며 꽃잎을 쏟아냈었다. 꽃이 지는 시기였던 것이다.
꽃이 져서 벌써 하얗게 길에 눈꽃이 깔려 있기도 했다. 아이들은 흙바닥에 떨어진
하얗게 말라버린 꽃잎을 한아름씩 모아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꽃잎을 날리며
즐거운듯 깔깔거리곤 했다. 나는 그 장면이 정겨워 사진을 찍어서 두고 두고
그날을 회상하는 일이 좋았었다.
그러다가 습기찬 날들이 지나고 장마가 지나고 무더위가 한바탕 휘돌고 지나면
다시 잊었던 노래가 생각나곤 했다.
가을, 하늘이 한뼘쯤 높아지는 이때, 혹은 귀뚜라미 울고 밤벌레 가을을 재촉하여
찌르르 거리면 내 마음에도 노래 한자락 들여 놓고 싶어 마음이 급해지곤 했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 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 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가을에 들어서니 우리가곡이 가슴으로 와닿는다.그중에서 위의 '동심초'는
가슴 저 밑바닥까지 헤집고 들어와 끝내는 눈물방울 글썽이게 만들만큼
가슴시리도록 곱고 아름다운 노래로 최근에 홍혜경씨 음성으로 열심히 듣고 있는
중이다. 어찌나 열심히 들었는지 벌써 테이프가 늘어져 버렸다.
같은 음반에 있는 노래로 '고향의 노래'와 '수선화' 그리고 '떠나가는 배' 역시도
요즈음 들어 마음으로 와닿는 곡들이다.
센티멘탈 '양'과 가을타는 '군'이 괜히 만들어 지는것이 아니라 한다. 가을이라는
날씨의 변화가 감정 조절선을 건드리는 까닭이라니 가을이면 가슴한구석을
비집고 올라오는 센티멘탈을 그대로 즐겨봄도 정신건강상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 안에 당신을 위한 가을노래도 들여 놓으면서 말이다.
머지않아 하늘은 더욱 청명(淸明)해 질것이고 단풍든 산은 산그림자를 서늘하게
물들일 것이다. 그럴때 듣고 싶은 노래는 '아베마리아'다. 그것도 카치니의 곡으로,
그것도 이네싸 갈란테의 음성이라야 한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목소리라는 그녀의
목소리도 다른 곡 보다는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부를때 라야 가장 그녀의 매력이
돋보인다.
그 목소리는 말그대로 청명한 가을하늘같은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부시도록 푸르른
가을아침에 그녀의 목소리로 듣는 아베마리아는 아주 특별한 느낌을 전해준다.
지금, 홍혜경의 목소리로 동심초가 흐른다. 노래를 따라 가을이 내 마음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만 같다. 우리만의 정서로 우리언어로 불리워 지는 우리노래가
가을이라야 가장 아름답게 들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