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는 아이친구네가 우리집을 다녀갔다. 진작부터 한번 얼굴 봐야지, 했던걸... 결국은 방학이 되어서야 이룬 셈인데... 만나기로 약속한 날로부터 아이는 날마다 친구를 기다렸다. '이젠 일주일 남았지?.'이젠 두밤 남았네?'. '. 오늘 몇시에 도착한다구? 그렇게나 늦게?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아이의 기다림은 실로 절절 했다. 무엇이 그토록이나 커다란 그리움을 만들고 아이로 하여금 그리움에 목메게 했을까?
고만한 또래의 아이들이 갖는 느낌이란 일회성 일거라고 지극히 어른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는데 그게 아닌것 같았다. 아이와 그 친구란 다름아닌 초등학교 1학년때 같은반 친구다. 초등학교 들어가서 맨처음 같은반을 한기억이란게 그리 오래가는 것이었나 보다. 2학년 3학년때 그 아이와 우리아이는 같은 반이 되지 못했다. 같은 피아노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1학년 외에는 같은 반이 아니었기에 날마다 만나는 날보다 그렇지 못한 날들이 더 많았다.
게다가 아이가 3학년때 이사를 와야 해서 그 아이와 작년 여름에 딱한번 본것이 그후로 유일했다. 그런데도 아이는 자꾸만 초등학교 1학년을 이야기 했고, 그때의 친구들, 특히 그 아이의 이야기를 자주 했다. 자꾸 생각난다고,보고싶은 친구라고 말이다.
그런중에 이번 만남이 이루어졌다. 마침 아이들의 방학이고 또 그 아이 엄마와 나도 친한 사이여서 생각해 볼것 없이 아이들 한번 만나게 해주자고 의견이 일치가 되었었다.
기차를 타고 친구아이와 그 엄마 그리고 동생까지 세식구가 도착했다. 오랫만의 만남이 아이못지 않게 나 역시도 반가웠다. 오랫만에 만난 우리 아이와 친구, 그리고 나와 그 아이의 엄마의 이야기 보따리는 누구 것이 더 클것도 없었다.
저녁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훌쩍 지나버렸고 어떻게든 아이들을 재우고 엄마들끼리의 시간을 만들고자 했지만 아이들은 좀체 잠 잘 분위기가 아니었다.
잘 생각은 없고 놀고싶은 아이들, 할얘기가 아직도 태산인 아이둘은 잠자리에 누워서도 조잘 조잘 얘기를 나누다가 무슨 얘기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거리며 웃고는 했다.
보름을 하루 지난 달이 밝게 비춰 드는 여름밤이었다. 소슬바람이 불어 열어둔 문을 통해 이쪽과 저쪽으로 넘나들었다. 달빛 아래서 찌르찌르, 어디선가 밤벌레가 울고 바람소리에 섞여 길건너 무논의 개구리가 와글거렸다. 달빛이 환했으므로 형광등을 끄고 대신 촛불하나를 켰다. 바람이 지나갈때마다 촛불이 흔들거리다 다시 곧게 타오르며 촛농을 떨어뜨렸다. 마른오징어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며 쏟아낸 이야기들을 달빛이 맑게 정제시켜 주는 밤이었다.
서울의 밤이 너무 뜨거워 잠을 이룰수가 없다고 아이친구 아빠로 부터 전화가 왔었다. 여긴 소슬바람이 열어둔 문을 통해 들어와 집안 공기가 더없이 상쾌할수가 없고 서늘하기 까지 하다고 아이친구엄마가 대답해 주었다. 더운서울의 공기와 서늘한 마석의 공기가 적어도 전화선을 통해서 소통이 되기를 두사람이 전화하는 양을 바라보며 생각했었다.
거실에 대자리를 깔고 얇은 이불을 덮고 누워 베란다로 부터 그대로 쏟아져 내리는 달빛을 받으며 잠이 들때까지도 우리는 소녀들처럼 오래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울의 서쪽 끝에서 버스타고 지하철 타고 다시 기차타고서 게다가 아이둘 데불고 가방둘러메고 쉽지 않은 길 찾아와 주어서 감사하다고, 우리아이 그리움 촉촉히 적셔주어서 고맙다고 나는 그런 말을 조금은 부끄럽게 건넸다. 내 말에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아이엄마가 잠이 든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감사와 고마움은 마음으로 건네는 법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