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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꽃


BY 빨강머리앤 2004-07-17

 

                                        치자꽃  (꽃말: 청결)

 

비가 지리하게 내린다. 장마가 많은 비를 뿌리고 있다. 장마니까, 비가 많이 오는게 당연 하겠다 싶지만, 햇볕을 볼수 없었던 날들이 몇날이던가.. 손꼽아 헤아보려니 아득타..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똑 같은 얘기를 했다. ' 잠시라도 햇살이 쨍하고 내려서 습기 가득한 세상 구석구석 뽀송하게 말려 주었으면 참 좋겠다'고...

비가 하도 장하게 오길래 창밖을 바라보다 눈길이 철제 난관에 머물렀다. 며칠전에 봉숭아 새싹을 심어둔게 있어서 창문밖 난간에 둔 작은화분을 집안으로 들여 놓을 생각을 했다. 날마다 비를 맞고 화분이라는 작디작은 공간에서 뿌리를 키우고 줄기를 키우느라 고생한 봉숭아는 그새 잎새가 누렇게 변색된채 방치 되어 있었다.

꽃을 좋아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는 내가 꽃을 사랑하는 방식이 그렇다. 꽃의 생명을 가장 이상적으로 지켜 주는 상태란 적당한 햇살과 적당한 수분기 이거늘, 비가 오니 알아서 물을 빨아 들일 것이고 비와 비 사이 잠시 햇살이 나는 걸로 알아서 엽록소를 합성해 내겠지.. 라고 나는 나의 게으름을 합리화 시키며 무심하게 베란다 철제 난관에 둔 화분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제 와 그제 이틀 연속 비가 억수로 쏟아졌고, 비가 오면 오는대로 비를 담고 비가 그치면 그치는 대로 물을 내 보내던 화분이 좀체 물을 내려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화분가득 고인 물을 보자 비로소 그 동안 얼마나 화분들에 소홀했는지에 대한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그제서야 바라보니 봉숭아 옆에 놓은 치자꽃이 누렇게 변색된채 고개를 잔뜩 떨구고 있었다. 며칠전에 피어난 치자꽃은 형광등불빛처럼 환하게 빛나는 하얀색이었다. 흰색과 하얀색을 분명히 다를것이라, 치자꽃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치자꽃이 피어난 아침을 아주 호들갑 스럽게 열고서는 꽃이 얼마나 예쁜지 한번 보라며  남편과 아이를 치자꽃 앞으로 불러 들였다.

우리집 베란다에 핀 꽃을 보고서야 나는 비로소 치자꽃이 한여름, 7월이 되어서야 꽃을 피운다는 것을 알았다. 내게 있어 치자꽃은 꽃보다는 열매로 더욱 친숙한 꽃이었다. 어렸을때, 할머니는 뼈나 근육이 다칠때마다 면보에 꽁꽁 싸매둔 치자열매를 물에 우려낸 뒤 밀가루를 반죽해 다친부위에 발랐었다.일종의 석고붕대를 대신한 민간요법이었던 셈이다. 옛날, 우리 어른들은 그렇게 집집마다 비상약품으로 치자 열매 몇개 쯤은 간직했다가, 뼈나 근육이 다쳤을때마다 요긴하게 쓰셨던 가 보았다. 먹어보진 못했지만 치자 우린 물로 부침개를 해서 먹는 다고도 했다. 치자 열매는 요모조모 쓸모도 많고 꽃은 꽃대로 아름다우니 치자꽃은 여름꽃의 여왕이라 해도 괜찮을듯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치자꽃은 또한 지조도 높은 꽃이다. 가장 하얗게 빛나는 꽃빛으로 피어나 고고함을 뽐내다 누렇게 변색된 어느 싯점에서 꽃봉우리채 툭, 고개를 떨구는 것으로 수명을 다하는 모양새로 봐서...그렇게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열리면  열매는 노란색에  봉지에 싼 사탕같은 모양이 된다.

꽃이 피었던 한송이가 툭,하고 진 며칠후 다시 꽃송이 하나가 하얗게 꽃잎을 펼쳤다. 비를 맞고 피어난 치자꽃 하얀송이가 참으로 대견스러웠다.꽃을 피워 존재를 알리는 치자 나무를 비로소 오래 들여다 보니 비를 너무 많이 맞은 탓인지 여기저기 안타까운 흔적들이 보였다. 게다가 곧 피어날 것 같은 새꽃봉우리 가득 까만 진딧물이 붙어 있었다.안되겠다 싶어 치자화분을 정성들여 닦아 주었다.

먼지를 닦아내니 청록색 치자꽃 잎새에 윤기가 흐른다.  윤기가 흐르는 청록색 치자꽃 잎새를 가만 들여다 보니 동백잎과 참 많이 닮았다. 동백도 만개한 다홍빛 꽃봉오리를 비장하게 송이째 바닥으로 떨어뜨리니 이 두개의 식물을 접근해 보면 가까운 사촌나무 쯤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자꽃이 오랫동안 궁금했었다. 가끔, 화원 앞을 지나다가 유난히 하얗게 핀 꽃이 있어 들여다 보면 그꽃이 치자꽃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치자꽃을 만나면서 한번쯤 치자꽃을 키울 생각이 들었었다.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뼈에 이롭던 비상약품이었던 치자열매의 추억이 있어 더욱 치자꽃을 가깝게 놓고 보고 싶었었다.

지금 내곁에 가까이 온 치자꽃이 꽃을 피웠다. 너무 하얘서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꽃을 피운 치자꽃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다. 햇살과 바람과 비의 엑기스를 모아 놓으면 그런 하얀색이 될것 같은 치자꽃.... 그꽃이 지리한 여름 한가운데서 피어나 햇살같은 기쁨 한조각 건네주는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