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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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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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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BY 빨강머리앤 2003-11-23

어머니,

많이 힘드시지요?

안타깝게도 이런 상투적인 인사말 외엔 더이상 떠오르는 말이 없네요.

'힘드시냐고?'제가 직접 묻지 못한건, 당신 얼굴이 그걸 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며칠 되지 않았는데 그렇게나 갑자기 살이 내린듯 해서요.

당신이 힘써 일하던 그 근육덩어리들이 그렇게나 빨리

어떻게 사라질수가 있었지요? 그 미욱한 것들이 당신의 복부쪽으로

쓸려가 복수로 차오르고 있는걸 저는 보았답니다.

당신은 그저 옛날 속끓이던 남편 때문에 난 화병이 다시

도지신 거라고 알고 계시지만, 저번에 복부에 엄청난

고통이 몰려 올때 혹시 당신도 불길한 예감에 혼돈 스러웠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아이들 보며 당신이 그러셨지요. 나, 니들 대학 가는거 보고

죽어야 할텐데.... 라구요.어머니, 의사가 그러네요. 간은 이미 암세포가

다 갉아 먹고 그옆에 있는 장기까지 암세포란 놈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구요.

그러니 병원에서도 고통이 올때마다 주사를 주는 일밖에

다른 일은 할수가 없다네요.

어머니, 그 얘길 전해 드릴수도 없고 저는 울었습니다.

당신의 구비구비 눈물어린 삶의 구비가 떠올라서요.

어쩌면 세상은 참 불공평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살아오면서 늘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세상은 공평하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살아왔었는데 그래도 어느정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저를 다독여 주었더랬지요.

그런데 당신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게 아니더란 말이지요.

저는 정말 화가 나서 소리소리 지르고 싶은데 아범은 진정 하라네요.

더 흥분해야 할 사람은 그 사람 같은데... 지옥같은 터널을 지나왔다고

자신의 입으로 말을 할 정도였는데 저더러 흥분하지 말라네요.

따지고 보면 그이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제가 흥분해서 시간이 되돌려 지는것도 아니고 당신이

예전처럼 건강하신 분으로 돌아갈리도 없는데...

어머니, 김장철이 다가와요. 김장도 해야 하는데 어머니가

누워 계시니 어찌해야 한답니까? 어머니, 김장이라도

끝내고 아프셨으면 하는 제 이기적인 바램이 차라리 현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머니 지금 그렇게 누워 계시면 저는 정말 어찌 하라구요.

어머니가 제게 청소하는거 말고 가르치신것도 없으시면서 그냥

그렇게 누워 계시기만 하면 어떻게 하냐구요.

어머니 예전에 제가 한말 취소할테니 지금이라도 저를 이끌어 주실건지요.

거억하세요? 그이가 어머니 집에 처음 데려가서

어머니도 없는데 저한테 밥을 차려 주대요. 된장찌게를 내오고

반찬 몇가지를 차려 밥상을 내오는데 제가 테스트라도 하듯(제딴에는

어머니의 손맛을 알아차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답니다) 음식들을

찍어 먹어보고는 '어머니한테 안배워도 되겠네'라고 말했던거요.

그말, 하지 말일이지 그이가 그날 당장에 어머니께 일러 바쳤대죠?

그런데 어머닌 그말을 듣고는 껄껄 웃으셨다고... 그랬지요.

하지만 이 세상에 어머니만한 부지런한 분도 없을거란 생각을

합니다. 한시도 걸레를 손에서 놓은적이 없으셨지요. 어머닐 생각하면 항상

손에 든 걸레가 생각날 정도니까요. 세탁기가 있었는데도 굳이 손빨래라야지

깨끗하다며 굳이 손빨래를 하시던 어머니를 지켜본적도 있었답니다.

그렇게 재밌게 리듬감까지 실어 빨래를 하셨던가요?

어느결엔가 그점을 닮아 가던지 언니가 우리집에 다녀가면

나는 어머니 발뒷꿈치도 못 따라갈 판인데 너무 깔끔 떨지 말라 하더군요.

그래요. 제가 어머니의 그런 점을 배워 가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다른 점도 더 배워야 하고 아직 배울게 한없이 많은

너무나 부족한 며느리 한테 어머니가 가르쳐 주셔야 하는데

그렇게 누워서 날마다 야위어 가시면  어찌 하나요?

 

며느리가 손이 어찌나 빠른지, 느릿느릿한 당신은 내 손빠름이

그렇게나 신기해 보였다고 했지만, 어머니 제가 잘못된 걸요.

빨리 빨리 하다보면 실수 하기 마련이라고 왜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는지..

그말 해도 제 고집 대로 했을것 같기도 합니다만,어머니

너무 많아서 듣기 싫었던 어머니의 잔소리가 그리우면 어떡하나요?

삶이 고단하면, 남편의 정이 없으면 그리 되는 걸까요?

어머닌 주절이 주절이 말씀을 하시곤 하셨지요. 그말에 예예, 하면서도

저는 자세히 들으려고 하질 않았던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어머니, 아버님에 대한 생각 이젠 다 놓아 버리세요.

평생 어머니께 살갑게 대하지도 않은분,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그 여자에게 어쩌면 정을 쏟고 계시는분,

어머니를 이렇게 까지 오게한 장본인인 그분을 그냥 놓아버리세요.

제가 하도 답답해 어머니께 하소연하듯 그랬지요.

왜 그렇게 사셨나구요? 그러게나, 내가 왜 그리 참고만 살았나 모르겠다고 하실때

당신의 눈자위가 붉어 지는걸 저는 보았답니다. 삶의 회환이 이제야

밀려오던가요, 염치없게요..인생이라는 그 알수 없는 것이, 참 염치도 없지요?

 

어머니, 지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잡수세요.

저는 이렇게 밖에 말씀 드릴수가 없어요. 지금에 와서

당신이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아버님은 물론이고,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도 그리고 저도

옆에서 웃어 드리는 일밖에 더는 할수가 없답니다. 그러니

어머니 마음 편히 잡수시고,평생 타인을 위해 사셨으니

이제라도 당신 자신을 위해 모든걸 다 바치세요.

남은 시간, 당신의 소중한 세월을

보람되었다, 하시게요. 삶의 희망줄 단단히 잡는것도 절대 잊으면 안되는거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