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이 있다. 예전 우리네 사는 집 누구나 그랬듯이, 아들 낳기를 소원했으나
딸쌍둥이로 태어난 첫번째딸로 태어난 여인. 그여인의 어머닌 딸을 낳았다는
그 죄하나로 제대로 몸조리도 못하고 하혈을하며 밥을 짓곤 했다지.
그런 딸이 장성해서 멀지 않은 다른고장으로 시집을 갔더란다. 선 본 남자가
괜찮아 보여서 선본지 얼마 되지 않아 곧 결혼식을 올리고 새댁으로 살았는데
그집 시집살이가 고추 당추 보다 매워서 온 동네가 소문이 날 정도였단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겨우 아들 하나 보았는데 고추 당추 보다 매운 시집살이하는
마누라를 남겨두고 남편이란 사람은 혼자 서울로 떠났다네.
혼자 시집살이 견디며 아들 건사하는데 들려오는 소식은 남편이 다른 여자 꿰차고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니 어린 아들 등에 업고 올라 올라 모르는 서울길 물어 물어
남편을 찾아갔는데 오랫만에 만난 처자를 냉대를 하는 통에 그 여인 눈물 마를날이
없었는데.. 그 여인 바보같게도 자신이 못난 탓이라 여겼다느니 아,
그리고 남편의 바람을 순전히 남편의 그여자에게 돌리고만 싶어 했던 그 여인.
그래서 죽자 살자 남편의 여자를 찾아 다니며 죽일, 살일... 했겠다.
남편 원망 아니한것 까진 좋으나 자신의 남편을 여우짓으로 홀렸다고 생각되는
남편의 여자에 대한 한이 오유월 서릿발이 되어 자신을 옥죄고 있는줄
또한 몰랐으니... 그 여인 몸저 누워 병원에 실려가 보니 '화병'이라 진단이
나왔단다. 원, 이렇게 창자가 썩어들어갈 정도로 속이 곪은 환자 첨 본다며
의사도 끌탕을 찼다지. 화병이 들어 속이 썩어가는데 일조한건 어디까지 그 남편이었음을
알았으면 차라리 오늘날 이리 다시 병들지 아니 했을텐데.
그여인 참으로 답답하여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술을 진탕마신 남편한테
당하느니 손찌검이요, 내뱉느니 하대하는 말이니 그 옆에서 지켜보는
어린아들 그 공포의 분위기 속에서 용케도 잘 커주었 구나.
낯선 서울살이를 그렇게나 힘겹게 시작한 그 여인 추운겨울에도 공동수도에서
물길러다 먹고, 공중화장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번듯한 시골집보다 못한
공동주택에서 이십여년을 살았단다.
어떻게나 남편이란 사람이 모진지 그 세월동안 하루도 술을 거르는 날이없고,
피우는니 줄담배요, 손님 있는 자리에서 마누라 함부로 대하는게 취미라.
그걸 보며 겉으로는 웃지만 그 여인 속이 썩어 들어갔으나, 한맺힌 세월도 흐르는 법.
마침내 아들이 결혼해 며느리를 맞이했구나. 내 이걸 보려고 아들이 떨어뜨려놓은
남편 다시 재결합 했지. 어쩌면 그 여인 홀로 살아가는 법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는지 모르지.
오죽하면 아들이 나서서 부모를 이혼시켰을까? 창자가 썩어들어가는
화병으로 대수술을 받으신 직후였다고 했다.
그 여인 속으로 며느리 맞아들이면 남편이 달라지겠지 생각했을까?
일년을 아들 며느리와 살면서 보니 남편은 여전하고
평생을 생활비 한번 제대로 갖다 준일 없어 별별일 안해본게
없는데 이젠 돈 안가져다 준다고 구박이네.
설상가상, 며느리는 여우같지도 못하고 곰같아서 살살거릴줄도 모르는구나.
나는 아무려면 어떻겠냐, 내 인생이란 애초부터 없는 거야 라고
체념한 세월은 너무 빨랐었다. 그걸 보다 못해 며느리 잔소리가 늘었지.
외람되게도 '황혼이혼'들먹이며, 지금이라도 어머니의 인생을 찾으라네.
하지만 이나이에 어떻게 뭘 어떻게 내 인생을 찾으라는지, 그게 도대체
화성에서 온 이야기냐, 목성에서 건너온 이야기냐. 내 인생 애초에
이렇게 생겨먹었고, 나 이렇게 밖에 살수 없단다. 헛 웃음도 아니요 비웃음도 아닌
묘한 웃음으로 넘겨 버리고 화도 낼줄 모르고 성도 낼줄 모르는 그 여인.
아들 며느리 재금내, 이사가던날, 아들도 제쳐두고 어렵고 힘든일
자청하며 이삿짐 싸는데 아랫목에서 텔레비젼 보는 남편이 대뜸 화를 내며
'왜 바지 안다려 놨느냐'고 성화를 내던 그 일 며느리는 잊지 못해 두고 두고
그 여인에게 말할 때마다 그 여인 '원래 그러는걸 어쩌겠냐' 하셨던가.
매사에 그런식이었다. 여름이 와서 창문에 방충망을 해야하는일서 부터
전구알 끼우는거 못박는일이며, 집안 대소사며... 제사가 있는날 풍경은
가히 기가 막히지. 허울좋은 가장이라는 이름하에 양복입고 아랫목에
그린듯이 앉아 이거내라 저거내라, 이렇게 하지 못하고 , 저렇게 하지 못하고
손가락질로 일 다하는 양반에 너무나 대조적인 그 여인의 품새한번 초라하다.
굽신거리듯, 그양반의 손가락질에 이리저리 바삐 다니느니 앉아 있을 새가 없네.
저리 바쁜 여인한테 어찌 그리 모질게도 맘 상하는 말만 던지던지
옆에 있는 며느리 송구하고 면구하고 시아버지 하는말들 그대로 화살이 되어
꽂히는 느낌에 어쩔줄 몰라했더라. 그렇게도 정없이 , 그렇게도 오랜세월
어찌 함께 할 생각하셨을까. 그토록이나 긴세월 희생을 희생이라,생각지도 못하고
그저 화를 안으로만 삭였더니 생전 술한번 입에 댄일도 없는데 간암이라네,
생전 담배 한대 태울염도 없었는데 페암이라네... 허,세상에 이렇게도 불공평한일
세상에 또 있을수가 있을까? 날이면 술상이요, 피느니 줄담배인 그 여인네를
괴롭혀온 그 남편은 말짱한데, 여전히 젊어 바람피운 그 여자와 여인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모양인데... 그래서 그랬을까. 그걸 어찌해볼수 없어 안으로만
삭였던가. 힘으론 장정이요, 그 여인의 어머니 여즉 살아 계신걸로 보아 장수집안
분명한데 암세포가 그리 퍼져 병원에서도 손을 볼수 없다니.. 하늘이 무너질 일이로다.
살아생전 남편의 애틋한 정한번 살갑게 못 받아보고
이렇다할 취미가 있어 인생한번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하고
그저 원망하며 살다보니 병마가 그 여인을 날름날름 잡아먹고 있었구나.
세상일 공평하다던데 이런고야, 어찌 공평하달수가 있단 말인가.
병의 근원은 마음이란말 아프게도 와닿는구나.
아, 어머니!! 이보다도 원통하고 절통한일 세상에 또 있을까,
며칠사이 핼쓱해진 당신모습 볼수 없어 그저 흐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