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동안 날이 흐렸었다. 겨울로 가는 길목을 장식하느라
가을이 잠시 상념에 빠져 지리하게 비가 내렸었다.
오늘아침은 짙은 안개로 시작되었다. 무슨 안개가 이리 짙나 싶을 만큼
한치앞을 볼수 없을 안개가 시야를 뒤덮고 있던 아침이었다.
물속을 헤치듯, 안개를 헤치고 학교에 가야겠다고 농담삼아
했던 아이들의 얘기를 떠올리며 웃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그랬다.
'오늘은 오랫만에 하늘이 맑개갠 화창한 아침이네요'
여긴 안개로 뒤덤벅인데 서울은 하늘이 맑다니 갑자기 질투가 난다.
아침을 대강 정리하고 창밖을 바라본다.
안개가 자욱했던 밖이 햇살을 환하게 들여놓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뭉게 구름이 뭉텅뭉텅 모여있다.
아하, 그 안개들 하늘로 옮겨간 게로구나....
아무튼, 뭉게구름이 떠가고 하늘이 환하게 열린 아름다운 아침이다.
11월의 햇살치고는 지나치게 밝아 생경하다.
이럴때를 '인디안섬머'라고 한다지? 가을한때 여름처럼 해가 환한 현상 말이다.
어제가 오늘같았으면 참 좋았으련만...
어제 아침 신문을 보다가 스크랩을 해둔게 있었다. 밤 열시이후,
새벽까지 유성우를 볼수 있다라는...사자자리에서 유성우가 쏟아지는
그 신비로운 현상을 보려고 단단히 맘 먹고 있었는데 하루종일 내린비가
밤까지 이어져 유성우가 내리고 있을 공간을 차단하고 있었다.
나 어릴때를 생각하면 심심찮게 별똥별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마을고샅을 돌다가 별똥별을 만나면 얼른 뒤늦은 소원을 빌고는 했었다.
언니가 가르쳐준 대로 별똥별이 질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진다는
소박한 믿음은 꼭 별똥별이 삽시간에 떨어지고 생각나고는 했다.
그때 내가 빌어 보았던 소원은 어둑신한 밤하늘에 묻혀 버렸으나,
노랗게 꼬리를 달고 산너머로 떨어지던 별똥별은 아직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내 딸아이의 이름은 '한별'이다. 친구들이 별하나라고 놀린다며
다른이름이었으면 좋겠다고 속상해 할때마다 설명을 해주곤 했다.
하나의 별이 아니라 큰별이라고... 세상의 뭇별속에 너 혼자만의 색깔을
가진 빛나는 별하나가 되어 세상을 밝히며 살아가라고... 그러니 너의 이름은
누구의 이름보다 좋은이름이라고 설명해주곤 했다.
별을 좋아하는 엄마의 그 소망은 그아이의 눈에 별을 심어 놓았나 보다.
유난히 눈이 큰 아이... 별 두개가 게 와서 박혔나 싶게 두개의 커다란 눈이
반짝이는 아이다. 책을 좋아해 일찌감치 안경을 써야 해서 예쁜눈이
가려진 이후 다른 아이가 되어버린듯 한데...
그아이도 별이 좋았던가 보다.
삼년전이었다. 여름휴가를 치악산 계곡으로 갔었다.
낮동안엔 치악산 계곡에서 놀다 그 주변을 트래킹 하며 이틀을
그곳에 머물렀었다. 골깊은 산은 물도 좋아 하루종일 푸릉 푸릉 물흘러가는 소리를
들었었다. 저녁때가 되면 한기가 느껴질 정도의 산골, 모기는 또 어찌나 많던지.
우리 아들 , 모기에 물린 자리가 한없이 부풀어 올라 한참 떨어진 시내의
병원을 찾아 다니다 결국엔 보건소에 들러 주사맞고 약 받아 오느라
어느샌가 산지 얼마 안된 카메라도 잃어 버린 사건도 있었구나.
이틀째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었으나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세벽 세시부터 유성우가 떨어질 거라는 뉴스를 미리 챙기고 떠난 여행이었으니...
잠들기전 남편에게 함께 봐줄것을 부탁하고 잠을 청했었다.
마음에 둔 것이 있어 그랬는지 알람시계가 없었는데도 세시 경에 눈이 떠졌다.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살짝 눈을 뜨더니 귀찮다며 의리없게 다시 잠이 들어 버렸지.
아무도 없는 산골짜기 그 속에 발을 디뎌놓은 일은 쉽잖은 일이었지만
홀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한기가 느껴져 겉옷을 걸친채...
숙소에서 막 나와 하늘을 올려다 보니 별들이 총총했다.
별이 총총하단말이 그렇게나 실감나게 와닿던 기억 또 첨이었다.
까만밤하늘에 점점이 박힌 별들은 말 그대로 '총총'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나 별들의 빛남이 선명하던지 감탄사가 절로 새어 나올 정도였다.
별을 잘 볼수 있는 숙소 계단 쯤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아래 계곡물 소리 힘차게도 들리고 무공해 공기를 달게 마신
여름밤 벌레들의 합창소리 요란하기도 했지.
별이 지는구나. 별똥별이 짧게 나선형을 그으며 산너머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산에 시선을 두면 서산너머로, 동산에 시선을 두면 동산너머로 빠르게
나선형을 그으며 떨어지는 별똥별을 쳐다보느라 목이 아픈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말이지 혼자서만 보기엔 너무나 아까워
다시 한번 남편을 깨우러 들어갔는데 이번엔 숫제 화를 낸다.
안보면 말고... 옆에서 곤히 자는 딸아일 깨웠다. 단박에 일어나는 구나 신기하게.
'엄마, 무슨일이야?' '응, 우리 별똥별 보러 갈래?'
엄마의 한마디에 당장에 몸을 일으켜 따라 나서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별보기 좋은 장소에 나란히 앉았다.
우리 아이, 생전 첨 보게 되는 황홀한 별잔치에 감탄사가 연발이구나.
나도 나 어릴때 언니가 가르쳐 준대로 딸아이 에게 가르쳐 주었다.
'별똥별이 떨어질때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 진대'
별이 지는 때를 기다려 아이는 두손을 모았다. 그냥 마음으로 기도해도 될것을
어린 아이는 간절히 두손을 모으로 뭔가를 비는 것이었다.
춥지만 않았으면 흘러가는 계곡물 소리를 배경음악삼아,
밤벌레 들의 합창을 오케스트라 반주삼아 한정없이 앉아 별구경을
했을텐데 산골의 여름밤은 생각지 못하게 추워 이가 부딪힐 정도였다.
인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산골의 깊은밤. 그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던 별들과 가끔씩 나선형으로 곡선을 그리며 산너머로 빠르게 지던
별똥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끄릉 거리며 끊임없이 이어지던 계곡물소리와
여름밤 하늘에 닿을듯한 밤벌레들의 합창소리가 태고의 한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던 그밤을 또한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느낌을 다시 살려내고 싶어 신문을 오리고
어제 밤하늘이 맑기를 기다렸던 것인데 하루종일 비가 내렸었다.
별 볼일 없는 세상이 되어가는지 나날이 하늘엔 별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 들고 있다.
그러니 별을 보려면 특별한 장치가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별을 보려거든 시간을 내서 천문대를 찾아가야 하는 세상.
참 '별볼이 없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