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아니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이다. 음악은 언제나 내 일상의 배경음악으로 잔잔하게 깔린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라디오를 켜는 일이다. 벌써 아침은 창밖가득 펼쳐져 있고 세상은 환하게 열려 벌써 출근을 하는 회사원도 간간히 눈에 띄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속에 멀건히 교복만 입고 몸을 움추리고 학교를 향하는 학생들도 보이지만 나에게 찾아온 아침은 이제부터 시작이고 그건 항상 음악과 함께 이곤 한다. 음악에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요, 전문적으로 들을수 있는 귀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음악을 듣는 동안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에 젖는 그 느낌이 좋을 뿐이다.
늘상 분주하게 전쟁을 치루듯 펼쳐지는 아침풍경 속으로 음악을 들여놓기를 주저하지 않는 까닭은 그 분주함 속에서도 작은 여유를 찾고자 함이요, 그 여유속에 삶이 던져주는 아름다움 한조각 주을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내가 즐겨듣는 음악들은 여러 장르의 다양한 음악들이다. 동요를 너무나 좋아해서 어릴땐 항상 노래를 달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자주 노래를 부르다 보니 당연히 노래 솜씨도 좋아져서 학교에서 소풍이라도 갈라치면 반대표로 뽑혀 부끄러웠지만 대중(?) 앞에서 노래실력을 발휘(?) 하던 때도 있었다. ( 아, 언제 그런날이 있었던가, 지금 생각하면 까마득하기만 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조금씩 유행가에 익숙해 갔었다. 혜은이 언니 노래를 참 많이도 불렀었지. 지금 부르면 너무 옛스러워 웃음이 나기도하지만 그때 혜은이 노래는 그당시 최고의 노래였고 그녀는 우리들의 '스타'였었다. 그러다 음악시간에 가곡을 만났었다
가곡을 알고 나서는 유행가가 시시해 지기 시작했다. 다리를 약간 저시던, 목소리가 아름다운 음악선생님과 우리가곡 '수선화'를 따라 불렀다. 그 아름답고 시적인 언어가 풍기던 고혹적인 느낌에 함뿍 젖어 나는 단박에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수정해 버렸다. 그리곤 '저구름 흘러가는곳', '떠나가는배','동심초','물망초''그리움'등 우리가곡을 찾아 들으며 항상 굵은웨이브 파마머리를 자연스럽게 늘이고 다니던 우리 음악선생님을 존경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잠깐 록음악을 접했던건 그룹'송골매'를 만나면서 였다. 그 비트강한 사운드가 좋았다. 두사람의 리드보컬의 전혀 어울리지 않을듯한 목소리의 화합이 좋았다. 송골매의 리더였던 구창모의 사진을 모으기도 하고 송골매가 나온다는 프로는 빠지지 않고 보려고 노력했다. 시험이 낼모레 였던 어느날 그들이 내가 사는 지방에 콘서트를 하러 왔던 적이 있었다. 엄마몰래 그들의 콘서트를 보려고 송골매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은 짝궁이랑 모대학 캠퍼스를 가슴터질듯한 느낌을 안고 들어서던 기억. 그날 좌석 앞자리에 돗자리였나, 그 앞에 앉아서 난 숨이 멈추는 줄 알았다. 어느새인가 송골매가 해체가 되자 자연스럽게 그들의 음악과 멀어졌으나 나는 지금도 그들이 부른 노래목록을 꽤 많이 기억한다.
그러다가 대학 새내기 때였을 것이다. 우연한 계기로 클래식을 접하게 되었다. 들을만 했었다. 들을수록 괜찮은 음악이었다.클래식 음악이 좋아졌던 그때 괜한 허세를 부려 LP판 클래식 전집을 구입하고는 엄마한테 엄마나 꾸중을 들었던지. 요즈음이야 CD가 보편적이었지만 그당시엔 테이프외 엘피판이 유일한 음악청취수단이었다. 그런데 그 클래식 전집이란게 각각의 음악연보와 관련된 음악가의 생애가 설명되어진 화보집과 함께 묶여 있었는데 그 화보집이 장난 아니게 무거웠었다.
그때 구입한 총천연색 화보집을 한번쯤 제대로 보았을까? 그러곤 내내 버리기도 아깝고 그렇다고 옮겨 다니기에 너무나 무거운 관계로 내가 이동할때마다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다니는 총천연색 화보집을 볼때마다 난 엄마에게 괜한걸 사서 고생이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전집으로 구입하는 방법의 가장 안좋은 점은 그중에 꼭 한두개씩 쭉정이가 있다는 것임을 미리 알았어야 했다. 무작정 구입하고 나니 정작으로 듣고 싶었던 음악은 판이 튀어 듣지를 못하게 되는 사태가 생겼고, 무슨 근거로 그런 목록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그래도 음악을 좀더 듣게 되고 나서 목록을 살펴본 바로는 정말 이 판은 아니다 싶은 것들이 더 많더라는 것이다.
클래식전집을 사서 후회를 하고는 그뒤로는 전집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렸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 책을 사줄때도 난 전집류는 좋아하지 않는데 아마도 그것은 그때 터득한 지혜다. 그 엘피판은 두고 두고 후회를 하게 만들었다. 머잖아 세상은 시디가 판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오디오는 소형으로 바뀌고 시디가 포함된 오디오로 싹 바뀌어 버렸던 거다. 결혼할때는 정말 심각하게 엘피판 클래식 전집의 처분에 대해 고민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 버리고 가기엔 너무 아깝고 내 청춘의 시간이 송두리째 없어져 버리는건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고 그 무거운 것들을 다 안고 가는건 좁은집을 들어가는 현명한 여자의 도리가 아닌것 같았고, 턴테이블을 마련하긴 했지만 별로 미더운 생각도 안들어 고민스러웠다.
그래서 정말 간직해야 할것들을 골라 내기로 했다. 골라서 버릴려고 생각하니 그게 아까운 생각이 들어 고르다 보니 거의 절반이 남아 있었다. 다시 한번 추려 반의 반.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그 반의반은 사실, 한번도 제대로 듣질 못한채 고이 모셔지고 있는 수준이다. 턴테이블은 몇번 못들어 고장이 나고 사실, 간편하게 들을수 있는 시디도 있고 테이프도 있는데 굳이 턴데이블을 작동해서 엘피판을 듣는 일이 귀찮았던 거다. 그래도 한가지의 미련이 남아 차마 그것들을 내다 버릴수가 없다. 무겁고 짐만 되는 나의 엘피판들은 지금은 거의 무관심한채로 한쪽에 치워져 있지만 나는 가능한한 그것들을 간직할 생각을 한다. 지금은 간편하게 라디오를 통해서 음악을 듣거나 엘피가 아닌 다른 방편으로 음악을 듣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는가, 그것들을 정말 절묘하게도 듣게 될 날이 올지,,,
유행이 자꾸 바뀌는 것처럼 시디기가 장착된 오디오기 말고 턴테이블이 새로 장작된 그런 오디오기가 나오게 될지 누가 아는가 말이다.
어찌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인듯도 한 그일을 억지처럼 난 기다려 볼 생각이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다시 한번 내 엘피판을 듣는 행운을 누려봤으면 참 좋겠다. 어느 노년의 삶에한적한 전원생활속에서 마당가득 화초를 심어두고 그것들을 바라보며 엘피판으로 음악을듣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니 조금 귀찮은 일이지만 엘피판을 버리지 않아야 할까부다.음악편력이라고 할것도 없는 음악사랑 속에 헤프닝 처럼 생겨난 엘피와의 만남을 지금웃으며 돌이켜 본다.산봉우리를 물들인 가을빛이 조금씩 산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가을날이다. 단풍든 산을 바라보며 음악과 함께 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