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냉동실을 찬찬히 뒤져보니 검정 비닐 봉지에 싸서
넣어둔 것이 오밀 조밀 많기도 하다.
오미자.. 홍화씨.. 대추.. 여름에 먹다 남은 미싯가루와
언니네 조카내외가(둘다 나보다 나이 많음) 양주군에서 주었다고
내게 조금 보내온 얼챙이 토종밤들..
육류와 어패류를 바리바리 재놓고 먹지 않아
냉동실은 꿈에 떡 맛보듯 가끔씩 열어 보기 때문에
어떤땐 뭐가 있는지 전혀 생소할 때가 많다.
냉동실 한귀퉁이에 뭔가 물컹하고 집혀 살펴보니 참깨다.
"깨소금인가?"하고 손으로 확인해보니 볶지 않은 생깨다.
재작년 가을에 이웃 아낙이 친정에서 가져온 것이라며 반되 남짓 준 것인데
시간나면 볶아야지 하며 미룬게 어언 해를 두번이나 넘겼다.
필요하면 슈퍼가서 깨소금을 사먹다보니 잊어 버리고 말았다.
언젠간 깨를 사려고 원산지 표기한 것을 보니
이란인가 파키스탄인가 하는 곳에서 온 것이길래
"멀리서도 왔군..."하며 속으로 빙그레 웃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아는바론 농산물은 거의 중국에서 들여 오는걸로 알고 있는데...
수입참깨는 색깔과 크기가 현저하게 다르다.
물론 토종참깨 특유의 고소함에도 따를 바가 없지만...
그래도 질보다 양으로 승부한다고 서민들은
비닐 봉다리에 포장된 수입깨로 볶은 깨소금에 손이 가게 된다.
국산 참깨라고 프라스틱 용기에 들어가 제품화 된 것도 있지만
먹어보면 고소함의 차이는 수입참깨나 거기서 거기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은 국산 참깨를 사 집에서 볶아 드시는 분들이 많다.
맛은 차치하고서라도 방부제와 표백제 혹은 발색제의 공포에서
헤여나긴 힘들기 때문에
적어도 전업주부라면 국산참깨를 집에서 정갈하게 볶은것도
내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즐거움일 것이다.
냉동실에서 찾은 참깨를 물에 적당히 불린후 조리로 일고 체로 받쳐서
물기를 쪼옥 뺀 다음에 두번에 나눠 중불에 은근히 볶았다.
깨볶듯 한단 속담이 있는데
"사그락 지지직"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사방팔방으로 튄다.
묵은거라 어떨까 싶었지만 절구에 빻아보니 고소함이 천지를 진동한다.
반은 통깨인 채로 병에 담아서 냉장고 안에 넣어두고
당장 먹을건 대충 빻아 양념용기에 담았다.
예전엔 깨소금 빻을때 소금을 조금 넣고 함께 빻았는데...
그래서 이름이 깨소금이였던가?!
간식이 귀한 시절엔 밖에서 뛰어 놀다 들어와 나무 찬장에 있는
깨소금도 훔쳐 먹던 시절이 있었다.
짭짤하게 간이 배어 맛이 있었다.
볶아 놓은 깨소금을 봐도 추억에 잠기고
진동하는 고소함에도 눈물이 겨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