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시절 나를 유일하게 지탱해 줄 수 있었던 것은 매일이 그날인 내가 그나마 문화의 체취를 느낄수 있는춘천의 명동이라 하는 곳을 한바퀴 돌고오는 일이었다.중앙시장통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중간쯤에 닭갈비 골목과 그리고 번화가인 명동이 나왔다. 서울 명동을 상상하면 견줄바도 못됐지만 그래도 춘천의 가장 번화한 곳이라 이것 저것 눈요깃감이 많았다. 뜨게질부업한 돈이 나오면 명동 끝자락 지하에 위치한 삐삐분식에서 애들과 김밥이나 칼국수도 사먹고 더운 여름날엔 춘천 KBS 입구 깟씨제과점에서 빙수와 큰애 좋아하는 슈크림빵도 사주곤 했다. 어쩌다 혼자 나온날은 경춘서점이라는 헌책방에서 볼만한 책를 찾는일과 주머니에 돈이 여유가 있는 날은 레코드점에 가서 음악 테입을 사는거였다. 그때 좋아했던 음악은 주로 가요였는데 조동진의 음악과 시인과 촌장의 음악을 좋아하고 라디오 F.M 방송듣는게 일과였다.김미숙의 영화음악과 김세원이 진행하는 방송을 주로 많이 들었다. 80년 초중반에 마돈나와 신디로퍼 그리고 컬쳐클럽 유리드믹스등 외모가 이상한 외국가수들이 속속 등장했는데 신디로퍼의 쉬밥이란 음악이 나오면 딸과함께 혼연일치가 되어 전신을 흔들며 마구 춤을 추었다. 딸아이 이상하게도 어릴때 부터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추었다. 그냥 막무가내 마구잡이로 추는 춤이 아니라 느린 템포의 음악을 틀어주면 지가 그곡에 맞게 해석을해서 현대무용과 발레를 섞어 놓은 춤을 추었는데 그 동작 하나 하나가 절묘하고 얼굴 표정엔 숙연함에 이끌려 엄숙한 기분으로 공연(?)을 보았다. 누가 가르켜 주지 않아도 절로 잘할수 있는것은 아마 모태에서 형성된 끼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당시 딸아이 잘 부르던 노래는 민해경의 당신은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과 소방차의 그녀에게 전해주오 그리고 장혜리의 추억의 발라드와 김완선의 춤과 노래... 어느날은 밖에서 놀다 뛰어 들어와 엄마 박남정의 똑딱 똑딱 나오는 노래 제목이 뭐라고 황당하게 물었다. 난 "똑딱 똑딱이 뭔데?" 하며 되물었다. 나중에 티부이를 보니 박남정이 소위 그때 유행하던 기역 니은 춤이라 칭하던 그 노래였다. 밖에서 친구들과 하루종일 뛰어 놀랴 가끔 시무룩한 나를 위해 위문공연(?)하랴어린나이에도 바쁜 일과를 보내야했다. 딸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기 이삼년 동안은 가게를 하느라 제대로 돌 볼 겨를이 없었다. 일일공부를 시켜 보려 몇번이고 시도해 봤지만 겨우 이름만 그려 놓곤 바람과 함께 묘하게 사라져버려 그예 딸아인 제이름 석자로 변변히 쓰질 못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딸이라서, 둘째라서가 아니라 내생각은 그랬다. 남보다 조금 뒤지면 어떠랴 단순하게 사는것도 본인을 위해서 좋은일이라고.자고로 여자가 너무 똑똑해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지면 팔자세기 십상이라고.내가 가끔 딸아이에게 "너 키작아서 고민되지 않니?"하고 물으면 딸아이 웃으며 "엄마 아랫 동네 공기도 맡을만해요 걱정 마세요" 한다. 정말 생각이 있이 사는건지 분간이 안될때가 많다. 자유분망 단순무지한 딸을 위해서라도 내가 오래 살아야 한다는 작은 소명감이 불타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