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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운동회와 본견주름치마...


BY 리 본 2004-01-07

 

여름방학이 끝나면 곧바로 2학기가 시작되었고
2학기가 시작되면 가을운동회 연습으로 분주했다.
가을운동회야말로 1년중 최고의 축제였다.
이쁜이엄마 갑쁜이엄마 전부 학교에 오고
잘사는사람에게나 못사는사람에게나 평등한 우리모두의 축제였다.
그날의 기쁨을 위해 우리는 한달여 동안 가을 땡빛에 그을려가며
구슬땀을 흘리며 운동회 연습에 전력질주해야했다.
고학년이 되면 마스게임이란걸 했는데
전체적인 조화의 아름다움에 넋이 빠져 아이들은 힘든 줄도 모르고
연습하고 짧은 가을해는 무심하게 서편으로 기울어
먼데 사는 아이들은 서둘러 삼사오오 짝을 지어 집으로 돌아 갔다.
마스게임을 하려면 여러가지 소도구들이 필요했는데
선생님께서 칠판에 만드는 법을 적어주시면
우리는 손수 그것을 만들어야만 했다.
소고를 만드는 법은 작은 수틀을 사서
처음에는 양회종이로 풀을 먹여 그늘에서 말리고
그다음엔 창호지를 덧발라 다시 풀을 먹여 그늘에서 말려
바짝 마른후엔 그위에 그림물감으로 태극문양을 그렸다.
잘만든 아이의 소고는 두들기면 유리창 깨지는 것 같이
"쨍그랑"하고 소리가 났으며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청정한 소리가 들렸다.

4학년 마스게임 준비물이 소고와 흰운동화 그리고 하얀 주름치마였는데
소고는 내가 만들면 되는데 문제는 주름치마였다.
엄마가 없는 나는 주름치마 만들게 난감했다.
집에 미싱은 있다손 치드라도 할머니는 미싱을 돌리실 줄 모르셨고
당신의 입성바느질은 전부 남의 손을 빌어 평생을 사신분이기 때문에
바느질은 하실 줄 몰랐다.
운동회날이 다가올수록 은근히 근심 하던중에
할머니는 집에 있는 옷감 한 귀퉁이를 잘라주시며
저어기 건너 마을사는 언니에게 그 옷감을 같다 주라는 것이었다.
큰오빠와 알고 지내던 처자가 있었는데
그처자의 솜씨도 구경할 겸해서 미리 말씀해 놓은듯 했다.
집에서 행길로 걸어가면 삼사십분거리이고 산길로 질러가면
20여분정도 걸리는 거리에사는 언니였다.
난 산길로 뛰어가서 그언니에게 옷감을 건네주고
주름치마가 완성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며칠후 언니가 주름치마를 만들어 가지고 왔는데
그만 경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옥같이 하애야하는 주름치마가 누리끼리한게
손에 닿으면 사그락거리고 백짓장처럼 흐늘흐늘...
얼마나 속이 상한지 기가 막혀 울지도 못했다.
엄마가 만들어준 아이들은 눈이 부신 흰옥양목에다
풀까지 멕여 빳빳해서 보기 좋은데
내주름치마는 왜 이렇게 생겼나하고 박박 찢어버리고만 싶었다.
미운오리 새끼처럼 남의 눈에 두들어질까 걱정되었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 들어가고 싶었다.

운동회 전날은 소운동회라고 미리 준비한 준비물 모두 가져가고
대운동회 날과 똑같이 예행연습을 하는날이었다.
소운동회날에 누런주름치마에 자꾸 신경이 쓰여 마스게임을 어떻게 했는지
너무 화가나서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한테 짜증을 부렸다.
"할머니 나 이 주름치마 안 입을래 나만 이런 색깔이란 말야... "
그때 나의 할머니 말씀이 "이 간나야 그게 얼마나 좋은건대 심통을 부리니
그건 본견이야 본견...이간나야 알간?"
손녀 사랑이 지극하셔서 본견으로 만들어 주신건지
아니면 옥양목이 없어서 그걸로 해주신것인지
지금도 아리송하지만
그때 그본견의 사르락거림과 맥없이 나풀거리던 가벼움...
그리고 누리끼리한 본견의 색깔은 내게는 진저리로 남아있다.
누런본견보다도 하얀옥양목의 주름치마가 입고 싶었다.

엄마의 부재를 절감한 4학년 가을운동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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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본견이 뭔지 잘몰랐다.
본견이 실크라는것을...
다 큰 후에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