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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한복 매무시...


BY 리 본 2004-01-02


여기 나오는 할머니는 나의 외할머니시며 살아계시면 110세 되시는분입니다.

언제나 당당해 보이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알고 보면 속옷의 절묘한 어우러짐 때문이었다. 겹겹이 껴입은 속옷 때문에 풍채가 있어 보인 것 뿐이였지 사실 옷을 벗은후의 모습은 고작 노인의 마른몸 그 자체였다. 할머니는 훤한 인물과 더불어 옷을 상당히 잘입으시는 분이였다. 옷에 대한 욕심이 유난히 많은분이라 진솔이라고 자랑하시던 옷을 다 입지도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우리집은 역전앞이라 길손들이 많이 드나드는 집이었다. 차를 기다린다고 들어오고 짐 좀 맡아달라고 들어오고 안면이 있는사람이 들어와 이야기가 길어지면 할머니는 버들고리짝을 꺼내시여 예의 옷자랑을 하시였다. 저고리동정 말미 양쪽을 서로 맞붙여 무명실로 엑스표시해서 봉해버린(아직 한번도 입지 않은 진솔이란 표시) 양단 치마저고리들을 하나하나 펼치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장만한 옷이라고 설명하신후에 차곡차곡 정리해 다시 소중하게 넣어두셨다. 옷칠을 해 옷을 담는 용도로 혹은 이바지 음식들 담아내는 그릇으로도 사용했던 버들고리짝... 굿판에선 만신이 고리짝를 벅벅 긁으며 악기로도 사용이 되었던 것 같다. 정방형의 모양으로 안쪽과 바깥쪽의 사이즈가 조금 차이가 나 서로 맞물려 끼우면 모양이 하나로 일치하게 되는 말하자면 가정용 다용도 함이였다. 우리는 그걸 고리짝이라고 불렀는데 사이즈별로 몇몇개가 있었다. 십여년전인가 해금된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소설을 읽으며 고리짝의 실체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거기 서두에 보면 이장겸이가 역적으로 몰려 평안도 어디로 도망가 신분을 숨기며 고리백정의 딸과 결혼을해서 사는 내용이 나오는데 백정에도 두가지가 있단것을 처음 알았다. 가축을 도살하는 백정과 버드나무로 고리짝을 만들어 파는 고리백정... 할머니가 외출채비라도 하실라치면 내가 옆에서 거들어 드려야했다. 년전에 다락에서 내려오시다 떨어져 팔이 부러지신후로는 팔이 잘안돌아 간다시며 치마를 입으실때는 내가 옆에서 치마끈을 돌려드려야 편해하셨다. 성장을 하시는 것은 한마디로 큰행사였다. 한여름에도 어찌 그리 옷을 겹겹이 많이 입으시는지... 입고 또 입고... 복잡한 절차 끝에 할머니가 옷을 다 입으시면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서 할머니 치맛속을 들치며 하나 둘씩 속옷 수를 헤아리는게 취미였다. 요즘애들이 아이스께끼 하는것처럼... 할머니는 팬티를 입지 않으셨다. 일본사람들의 훈도시(아이들의 기저귀형태)처럼 그렇게 천을 접어서 속곳으로 입으셨다. 할머니의 속옷이 일본식 훈도시인가 생각 들었었는데 얼마전에 교육방송에 복식프로그램을 보니 그런 속옷 형태는 예전 여인네의 팬티 형태의 속옷이였단다. 속속곳, 단속곳, 고쟁이, 속치마등 이름도 모르는 아래 속옷이 무려 예닐곱 가지를 입으시고 한껏 부풀리고나니 할머니의 풍채가 자연 좋아보일 수 밖에... 한겹 한겹 옷을 다 벗으시면 너무도 날씬하셨던 우리 할머니... 한마디로 과대포장인 할머니의 한복 매무시였다. 외출에서 돌아오신 할머니가 허물처럼 벗어 놓으신 옷을 우리는(조카와나) 도대체 몇개나 되는지하고 헤아려봤다. 벗고 벗고 또 벗고...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던 시절에 그렇게 많이 입고도 어찌 여름을 날 수 있었을까? 겹겹히 끼여 입는 답답함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품위를 지키던 것은 아닐까? 얼굴이 빼어나게 이쁘지 않아도 몸매가 그리 아름답지 않아도 한복을 단아하게 입는 고운테의 한국여인상이 그리운 요즘이다.

창경원계단을오르시는할머니


향수 - 이동원 박인수


*할머니 많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