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바닥에 채소광주리를 놓고 노점상을 하는 엄마에겐 어려움이 많았다.
첫 번째는 자리 싸움이었다.
시장에는 엄마같은 뜨내기가 아니라도 노점상은 많았다.
시장에서 장사로 잔뼈가 굵은 노점상이 수두룩이다.
점포를 차린 것은 아니었어도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아침부터 영업하는 그들은 텃세가 대단했다.
자기 자리라고 엄마 채소광주리를 내려놓지도 못하게 했다.
무거운 채소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내려놓을 장소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이었다.
어쩌다 맘씨 좋은 가게 주인을 만나면 그 앞에 채소광주리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노점 단속반이었다.
그들이 뜨면 엄마는 무거운 채소광주리를 다시 머리에 이고 이리저리 피하기 바빴다.
미처 피하지 못한 날은 거칠고 난폭한 그들 발길에 채소광주리가 전주천 둑을 넘어 날아갔다.
채소광주리를 찾아 둑을 내려가 보면 더러운 먼지와 흙 속에 나뒹근 채소는 이미 상품가치를 잃은 뒤였다.
내동댕이 쳐진 채소 만큼 구겨진 자존심에 엄마는 속울음을 삼켜야했다.
그런 날은 빈 손으로 터덜터덜 집에 돌아왔다.
세 번째는 개념없는 고객이다.
손님을 끌기위해 엄마는 가장 좋은 채소를 골라 위에 진열을 했다.
진열된 채소가 제일 좋은 것인데, 스스로 채소를 뒤적여 좋은 것을 찾는 손님이 많았다.
그렇게 몇 번 뒤적임을 당하면 채소는 윤기를 잃고 더 이상 싱싱해보이지 않았다.
그 중 유난히 개념없는 진상고객을 만난 날 엄마는 내게 신신당부했다.
"너는 나중에 절대로 물건 뒤적이지 말고 더 달라 하지도 말고 주는 대로 받아라."
자라서 결혼하고 나도 주부가 되어 시장에 채소를 사러 다녔다.
맞벌이 하던 때 시고모집에 같이 살면서 시고모가 우리 아이들을 봐주셨다.
낸시하고 같이 시장에 가면 상인들에게 이쁨을 받는다고, 어느날 시고모가 그런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시고모가 물건 값을 흥정하면 내가 뒤에서 말린다고 하였다.
물건 값을 왜 깎느냐고 달란 대로 주고 사자 한단다.
그러니 상인들이 이뻐한단다.
하루는 우리집에서 몇 달 머물던 시어머니가 내가 사 온 콩나물 값을 묻는다.
500원 어치라고 했더니, 자기가 사 온 500원 어치하고 양이 많이 다르다고 하였다.
시어머니는 콩나물를 사면서, 거 조금 더 주시요오잉, 하는 말을 잊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많이 주면 뭐가 남아요. 우린 식구도 많지 않으니 조금만 주세요, 그런다.
그런데 내가 사 온 콩나물 양이 시어머니가 사 온 콩나물보다 훨씬 많다고 하였다.
그만 달라고 하니 이뻐서 콩나물 장수가 더 많이 준 것이다.
부모 말을 잘 들으면 자다 떡이 생긴다는 속담이 있다.
옛말 틀린 것 없다더니 맞는 말이다.
엄마 말을 잘 들었더니 시장에 가서 같은 값으로 사는데 덤으로 생긴 채소가 많았다.
채소를 살 때 뿐 아니라 나는 살면서 아득바득 내 잇속을 챙기려 들지 않는다.
그렇게 평생을 살다보니 잇속 챙기며 산 것보다 좋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베푼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받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