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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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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딸 딸


BY 낸시 2021-01-03

큰언니가 태어난 뒤 집에는 날마다 웃음 꽃이 피었다.
웃음소리가 어찌나 큰지 뒷집 사람들을 궁금하게 할 정도였다.
궁금한 뒷집 사람들이 까치발로 담장 너머 바라보면 별 것도 아니었다.
등에 베개를 묶어 놓고 뒤뚱거리며 걷는 아이 모습에  온 가족이 모여 박장대소하더란다.
우리 엄마 생애의 화양연화는 아마도 이 때였지 싶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가 태어나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모습이 얼마나 흐뭇했을까.

하지만 잠시였다.
해가 뜨면 그늘도 생긴다던가.
일찌기 할머니 잃고 엄마를 의지해 살던 막내고모 심술이 시작되었다.
왜 아닐까, 다섯 살 차이 밖에 지지 않는데 어찌 비교되지 않았을까.
새엄마로 들어 온 서할머니는 고모에게 찬바람 쌩쌩부는 사람이었다.
막내고모 바로 위 삼촌은 일찍 죽었다하고 위로 두 고모와는 나이 차이가 많았다.
언니인  두 고모들마저  새로 태어난 조카에게만 관심을 쏟고 서로 업겠다고 경쟁을 하였다.
미운 일곱 살, 미친 여덟 살, 달친 아홉 살이랬는데 이 시절 막내고모 맘을 누가 헤아렸을까.
언니가 추억하는 어린시절엔 늘 심술쟁이 막내고모가 있었다.
언니에게 심술 부리고 할머니와의 싸움으로 집안에 분란을 일으킨 이유가 짐작되고도 남는다.
암튼 엄마는 막내고모 심술에 내놓고 딸을 이뻐하지도 못했다.

엄마의 둘째 아이는 아들이었지만 사산이었다.
막달까지 뱃속에서 잘 놀던 아이가 사산된 것을 엄마는 아버지 탓이라고 하였다.
아버지가 남의 집 이장하는 시신을 만져 동티가 났다는 것이다.
말렸는데도 아버지가 고집을 부리더니 일이 그렇게 되었다고 두고두고 아버지를 원망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내게도 오빠가 생길 뻔 했는데 참 아쉽다.

그 다음 내리 딸만 낳았다.
딸, 아들, 딸일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또 딸일 때는 많이 섭섭했다고 하였다.
해산을 돕는 작은엄마에게  또 딸이라는 말을 듣고 아버지는 말없이 집 밖으로 나갔다.
낳을 때는 실망스럽더니 안고 젖을 물리면 새록새록 이쁘더라고 엄마는 말했다.
기다리고 기다려 낳았지만 첫째 둘째는 어쩐지도 모르고 키웠는데 다르더란다.
늦둥이가 이쁘다더니, 그런 것인가보다.

엄마가 딸 딸 딸을 낳는 동안 작은엄마는 아들 셋, 딸 셋을 낳았다.
어른들 사이에선 작은집 큰아들을 큰집 양자로 들여야 한다는 말이 오고갔다.
작은엄마는 큰집 딸들 대신 자기 아들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엄마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대신 채소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장터에 나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대노하였다.
여자가  장터에 앉아 물건을 파는 것은 양반집 체면 구기는 천박한 짓이라고 하였다.
채소광주리를 이고 장터로 나가기 위해 엄마는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까.
우리엄마는 남정네를 만나면 돌아서 외면하고 길을 피하던 조신한 여자다.
큰집 딸들 대신 자기 아들을 가르쳐야한다고 손아래 동서가 말해도 대꾸조차 못하던 여자다.
그런 여자가 채소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장터로 나갈 결심을 하였다.
시어버지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던 엄마가 할아버지가 대노하셔도 꿈쩍하지 않았다.
딸 딸 딸을 남의집 아들 못지 않게 키우려고 작정하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