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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후회


BY 낸시 2020-12-31

지난 날을 돌이켜 정말 후회되는 일이 있다며 아버지는 가끔 안타까워하셨다.
아버지 인생을 바꿀 절호의 기회였는데 놓쳤다는 것이다.
그 때 맘먹은 대로 실행했으면 지금쯤 가난을 벗어나 부자로 살았을 거라셨다.

할머니와 막내고모 사이에 불화가 한창일 때였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편을 들어 툭하면 우리 식구를 집에서 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치셨단다.
그것도 당신 딸인 막내고모를 데리고 나가라고 하셨다니 어처구니 없다.
할아버지 억지에 화가 나서 아버지는 정말로 집을 나갈 맘이었다고 하였다.
중절모에 모시두루마기 차려입고 지팡이를 흔들고 다닌 할아버지는 멋쟁이 한량이었다.
향교의 전교라고 하였지만 명예직에 가깝지 살림에 도움되는 직업은 아니다.
하시는 일이라곤 정원수를 손질하는 것 뿐 시골에 살아도 농사일은 문외한이었다.
우리 식구를 내쫒으면 생계유지 능력도 없으면서 큰소리 친 것이다.

화가 난 아버지는 집에서 나와 친척집에 머물면서 서울로 갈 생각이었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서울로서울로 몰려들기 전이어서 그 때 갔더면 성공은 틀림없었을 거라는 것이다.
아버지 말로는 그 무렵 서울로 간 사람들 대부분은 땅부자가 되어 떵떵거리고 산다하였다.
해마다 다수확 농민상을 휩쓴 아버지의 능력과 성실성으로 미루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버지 발목을 잡은 것은 어머니였다.
날이 밝으면 서울로 가겠다고 맘먹은 밤에 어머니가 찾아와 말렸다고 한다.
늙은 부모를 버리고 서울로 가면 안된다고 눈물로 호소했다는 바보 엄마.
울엄마는 정말 속도 없는 사람인 것인지.

지난 날을 돌아켜 후회하는 아버지 말 속에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
하긴 아버지도 어머니가 호소하는 말에 공감했으니 눌러 앉았을 것이다.
효도를 의뜸으로 치던 때였으니 그 때는 그것이 바른 선택이었겠지.
도망도 못 가고, 도망가자는 남편마저 붙잡아 앉힌 바보같은 우리 엄마.
그런 바보 엄마가 미우면서 불쌍하고 또 자랑스러운 나는 뭔지.
나라면 다른 선택을 했겠지만, 그 다른 선택이 옳다는 자신은 없다.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고민하며 살아도 사는 것은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