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녀석이 수행평가 숙제로 음악회 감상을 가야한다며
대신 가 달라고 성화를 부린다.
이번 주에는 꼭 가야만 한다고 잊을만하면 조르니 아니 갈 수도 없는 형국이다.
저녁이 되니 기온은 차갑고 방에서 나가기도 싫은데
아들넘에게 궁시렁대며 음악회 초대장을 꺼내 들춰본다.
마침 함께 상담 교육을 받았던 후배가 시립합창단 단무장이라
얼마 전 연주회 초대장과 팜플릿을 보내 준 게 있어
이 기회에 한 번 가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어 몸을 일으켰다.
혼자서 가을밤 연주회를 감상하러 가야한다...
조금은 주저되긴 했지만 아들넘 부탁도 간절하고
또 예전에 합창 반장 했던 기억으로 무대에 서는 입장에서만이 아닌
듣는 입장이 되어보는 것도 과히 나쁠 것같진 않아 서둘러 길을 나섰다.
다행히 연주회 시작 직전에 문화예술회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닷가의 가을밤 음악회...
객석의 불이 꺼지고 화려한 조명 아래 드러 난
무대를 꽉 채운 흰 드레스와 검은 연미복 차림의 합창단원들 모습이
마치 천상에서 막 내려 온 천사들처럼 느껴진다.
애절함과 쓸쓸함이 함께 전해져 오는 잔잔한 음악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어느샌가 가슴 가득 감동을 주고 눈시울까지 젖게 만든다.
인간의 목소리로 이렇듯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해낼 수 있다니...
이 또한 신의 은총이 아닐런가...
연주회 내내 두 손을 가슴께에 맞붙잡고 많은 상념에 잠겼다.
아직도 이런 음악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눈시울을 적시는 철없는 여자...
시장에 가서 반찬 살 궁리보다 내 좋아하는 소국 다발을 먼저 살피는 여자...
내 기분이 우울하면 가족 어느 누구에게도 신경 쓰지 못하는 이기적인 여자...
정말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여자가 아닌가...
갑자기 내 나이를 세어 본다.
지금 내 나이가 몇인가...
오십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현실 감각에 둔한 어리버리한 여자...
아직도 '사랑' 하나면 인생이 행복하다고 믿고 있는 어리숙한 여자...
가을이면 처절하리만치 외로워 가을병을 앓는 여자...
귀가 아플 정도로 음악에 취하고 또 취해도 멈추지 못하는 여자...
언제쯤이면 제대로 나이값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내 나이를 실감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제는 제발 나이값 좀 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