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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줌 마


BY 이쁜꽃향 2003-08-19

 

지금은 제대하여 복학 준비 중인 큰 아들넘이

초등 6학년때 생일에 친구들을 초대했다.

어려서부터 뭐든 아껴 쓰는 게 몸에 배인 녀석은

남들이 유행처럼 하는 생일파티도 하려하질 않았다.

하기야

심지어 학급 반장도 환경 정리다 무슨 행사다 하여

돈이 들어간다는 걸 알고부터는 안하려고  했던 녀석이다.

그런 아들에게 초등학교 마지막이니 친한 친구 몇 명만 불러다

치킨이라도 먹으라고 내가 설득했던 거 같다.

 

녀석은 서너명의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과일, 음료수, 치킨 등 조촐한 상차림으로

한창 개구쟁이이던 녀석들의 생일축하가 시작되었다.

왁자지껄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친구녀석들 뒤로

흐트러진 것들을 정리하며

못마땅한 듯한 표정의 아들넘 얼굴이 슬쩍 보인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소지품을 챙긴 친구녀석들이 현관문을 나서며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아줌마!

잘 먹었어요.

안녕히 계셔요~"

"그래~ 잘 가라~또 놀러 와~"

그런데 정작 제 친구들을 배웅해야 할 아들녀석은

친구들은 보지도 않은 채 제 방으로 쏙 들어가버리고 만다.

 

저녀석이 갑자기 왜 저러지?

조심스레 방문을 빼꼼 열고 아들녀석에게

'넌 친구들 배웅도 안하고 들어가버니면 되니'라고

한마디 하려는데

아들넘은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는게 아닌가.

의아하여 녀석에게 물었다.

"왜 그러니?

뭐 속 상하는 일이라도 있니?

친구들하고 다투기라도 했어?"

녀석은 도리질을 한다.

"그럼 왜 그러는데??"

 

"저 녀석들이 기분 나쁘게

엄마더러 아줌마라고 하잖아요~ 엉엉엉..."

 

"뭐~야~?

내 참 어이가 없어서...

그것 땜에 기분 상해서 눈물까지 흘리는거니?

난 또 뭐라고...

아줌마라고 부르면 뭐 어때서?

그럼 나를 뭐라고 불러야 되는데?"

 

"엄마한테 아.줌.마.가 뭐야...

선생님이라고 불러야지...선생님이라고...

짜식들이 사방에다 다 어지러놓기만 하고...

나 앞으로 다신 생일파티 같은 거 안할거야..."

녀석에겐 '아줌마'란 호칭이

마치 제 어미를 비하한 듯한 느낌이 들었던가 보다.

난 혼자서 한참동안을 깔깔거리며

우는 아들녀석을 끌어 안고 달래주어야만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일이 벌써 십여년 전이 되어버렸다.

아들녀석 말마따나

내게 '아줌마'라고 부른다면 과히 유쾌한 기분은 아닐 것 같다.

아마도 지금까지 일상에서

'아줌마'란 호칭을 거의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를 안고 시장엘 갔을 적에

가게 주인이 '아줌마...'어쩌고 했을 적에

내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랬던 기억이 새롭다.

 

아줌마를 '아줌마'로 부르는 게 당연한 일이건만

아직도 그다지 익숙한 느낌이 들지 않는 호칭...

내 이름 석자, 혹은 성씨 뒤에 붙여지는 선생님, 교수님, 원장님,

아니면 싸모님...

그런 호칭들에 익숙해 져 있어서인지

'아줌마'란 호칭이 아직은 낯설다.

 

아직도 내 주제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나보다.

웬지 '아줌마' 하면, 

좀 나이 들고,

염치도 없고 

억척스럽고 안면 두꺼우며 용감무쌍한

마치 '전투용사' 같은 느낌이다.

이따금 우스갯거리로 등장하는

'여자'와 '아줌마'를 별개로 보는

사회적인 시선 탓인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찌 부인할 수 있을 것인가.

거울 속의 나는 어김없는 '아줌마'인 것을... 

조금씩 보이는 잔주름,

적당히 푹 퍼진 듯한 몸매...

아무리 고개를 저어도 틀림없는 중년의 아줌마인 것을...

 

그래,

난 아줌마야...

아줌마면 뭐 어때...

어차피 여자로 태어나면 언젠가는 아줌마가 되는 것을...

'아줌마'라 해도 좋다!!

아줌마 없이 이 세상이 어찌 지탱해 갈 수 있으랴...

이 사회를 유지해 갈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아줌마의 인내와 끈기에서 나온 것임을,

보이지 않는 힘이 아줌마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들임을

감히 어느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아줌마가 일어서면 이 사회를 바꿀 수도 있다.

아줌마라고 우습게 보지 말라.

너희들이 아줌마 없이 살 수 있다더냐?

너희가 그걸 잊었더냐?

이 나라의 일꾼들을 키워낸 이들이

모두가 위대한 '아줌마'였느니라.

이제부턴 허리도 곧추 세우고 어깨도 펴고 당당한 표정으로

아줌마의 대열에 힘차게 합류하리라...

 

아줌마 만세!! 만만세!!!

그래~

난 아줌마다, 어쩔래??

에휴~

그래도 멋진 미시로 남고싶은 걸 어쩌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