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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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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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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내 아들아...


BY 이쁜꽃향 2003-08-17

군입대한 녀석에게 8개월만에 첫 면회를 갔다.
오지 말라는 걸
잘 먹고 잘 지내니 아무 염려 마시라고
필요한 거 없으니 걱정 마시라고,
늘 입버릇처럼 해 대는 녀석에게
엄마의 직권으로 일방적으로 면회를 가겠노라 통보 했다.

장남에게 거는 기대가 컸던 만큼
스파르타식으로 잔소리에 호통만 쳐 댔던 남편도
이젠 착하고 순하기만 했던 녀석에게
연민의 정이라도 생긴걸까.
면회 가기 전날 편안하게 TV앞에만 앉아있는 날
이상한 엄마 다 있단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니, 면회 갈 엄마가 아무 준비도 안하는거야?
'???'
'아들 엄마 맞아?'
-그럼, 뭘 준비해야 되는데?
'아니, 떡이라도 준비해야 되는 거 아냐?'

이거이 무슨 육이오 전쟁시절 얘기란 말인가.
녀석은 떡은 아예 입에도 안 대는 식성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난 떡 할 줄 모른다는 사실!!)
돈만 있으면 대형 마트 식품점에 없는 게 뭐 있어서...?
라며 주저리주저리 웅얼거렸더니
'그래도 엄마가 직접 준비하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
끝까지 못내 섭하다는 뜻을 비춘다.

"아빠!!
평소에 그렇게 형아 좀 챙기지 그랬어?"
6학년짜리 둘째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에구 씨원~하다, 내가 할 말 대신 해 줘서.

예정보다 늦게 출발 한 지라
남편은 총알 택시 기사로 변해 버렸다.
아들이 얼마나 기다리고 있겠느냐며.
참 알다가도 모를 남자다.
장남을 얼마나 구박해대던지,
정말 데려 온 자식도 아니고
자기가 우기고 우겨 낳은 장손을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둘째와 차별하던 남자.
옆에서 보기 하도 지겨워
정말이지 녀석 대학만 들어가고나면 이혼해 버리겠다고
벼르고 벼른 게 한 두번이 아녔다.

그런데 아들 면회 간다며 서두르는 폼새가
예전의 그 아빠가 정말 맞는지
영 상상이 되질 않는다.
다른 때 같으면 여행을 즐기는지라
흰 눈에 뒤덮인 주변을 바라보며 감탄을 연발했을 것을
저 눈 속에 아들녀석이 혹여 삽질이라도 해야하는 거 아닌지,
진눈깨비 맞으며 훈련 하는 건 아닌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주변 풍경이 아름답기는 커녕 영 마음이 편치가 않다.

면회 신청 하구선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들락거리며
'형아 오는 지 나가 봐라'
둘째까지 내 보내는 남편을 바라보며
어려운 상황에서 제대로 뒷바라지 해 주지도 못 했던
아들녀석 생각에 또 가슴이 아려 왔다.

단 한 번도 부모 말끝에 대꾸 해 본 적이 없는 아들,
한 밤중일지라도
어른 심부름이라면 자다가도 눈 비비며
'예'하고 나서던 아들.
대학생이 된 후에도 유명 브랜드 옷은 낭비라며
굳이 싸구려를 원하던 아들.
일요일이면 엄마 늦잠 자게 깨우지도 않고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착한 아들을
국방의 의무랍시고 군에 보내 놓고
TV에 군인 프로만 나오면 목이 메이고
결국은 울고 마는 에미가 되고 말았다.
녀석에겐 늘 엄마로써 미안하고 고맙고 할 뿐이니
기다리는 동안 내내
녀석을 보고 또 눈물이 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온다-!'
밖에서 기다리던 남편의 소리에
둘째와 난 반사적으로 뛰쳐나가려다
군복 차림에 의젓하게 들어오는 녀석과 마주쳤다.
다행히 눈물은 안 나왔지만
어찌나 반갑던지...

김밥, 닭다리, 튀김닭,귤, 사과, 그리고 떡.
탁자 가득 늘어놓는 내게 남편은
뭘 이렇게 많이 샀느냐고 핀잔을 주었었다.
하지만 두어시간 동안
떡만 빼고 거의 모두 먹어치운 녀석을 바라 보니
에구~ 좀 더 사올걸...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저렇게 좋아하는 것들을 군에선 먹기 힘들겠지...
집에선 늘 야식을 하는 습관땜에
냉장고에 귤은 기본이요,
하다못해 라면이라도 준비 해 두어야만 했었는데
군에서야 어찌 그렇게 살 수 있겠는가.

한참 먹어대던 녀석이 불쑥,
'엄마, 요번에 아프카니스탄 지원하려다 말았어요.'한다.
뭐여?? 이게 뭔 말이여???
'생명수당 2천만원에 입대 기간 6개월 감해 준대요.
동기 한명이랑 부모님께 여쭤 본다고 전화하러 나갔거든요.
그런데 그 동기네 엄마가 어찌나 펄펄 뛰시는지
옆에 서 있는 제 귀에도 다 들리더라니깐요.
우리 엄마도 저 아줌마 보다 더 하실 분이다 싶어
그냥 포기했어요.'
한동안 가슴이 떨리더니 진정이 되었다.
그깢 돈이 뭐란 말이냐,
어찌 자식의 생명을 담보로 그런 데로 보낼 에미가
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다더냐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냥 꾹 참았다.
내가 하지 않아도 알 녀석이기에...

'엄마, 군에 와서 잘 먹으니까 살만 찌네.
근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딴 애들도 그러는데
왜 군대에선 먹어도 먹어도 공복을 느끼는지 이해가 안 가요.
그런데 사제 음식은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게 되거든요.
그게 참 이상해요.'

모처럼 한가하게 저녁을 맞은 이 순간,
아들녀석의 마지막 말이 왜 이렇게 아프게 기억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