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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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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축복이다.


BY 선물 2010-10-26

<며칠전까지...>

 

알람이 울린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국 냄비를 데우기 위해 가스에 불을 붙인다.

어머님 혈압 약을 챙긴다.

빨대 꽂힌 컵에 물을 담아 어머님 방으로 들어간다.

누워 계신 어머님께 혈압 약을 드리고 혹시 큰 거 마려우세요 여쭤본다.

어머님은 아이 학교에 보낸 뒤 볼일 보겠다고 하신다.

방문을 살짝 열어두고 나온다.

어머님이 부르시는 소리를 잘 듣기 위함이다.

서둘러 아침 차리고 늑장 부리는 아이 학교 보내느라 한바탕 한 뒤 다시 어머님 방으로 향한다.

기저귀를 풀어 드린다.

기저귀는 심한 지린내를 풍긴다.

나는 숨을 참는다. 배설물의 분자 활동이 내 코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끔.

그리고 배변 통을 대 드린다.

기저귀를 돌돌 말아 비닐에 넣은 후 꽁꽁 밀폐시켜 쓰레기봉투에 담는다.

그리고 어머님 용변이 끝날 즈음 비닐장갑을 끼고 방으로 들어간다.

종이휴지와 물휴지를 이용해서 뒤처리를 해 드린다.

두루마리 휴지와 물휴지 사용량이 어마어마하다.

더 적게 사용할 수도 있지만 난 아낌없이 과감하게 사용한다.

유난스럽지만 비위 약한 나를 위해 그 정도는 맘껏 하려 한다.

 

고맙네.

어머님 말씀에 나는 한번 씨익 하고 웃어드린다.

처음에는 미안하다, 고맙다 하셨다.

나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힘들지도 않은걸요 라고 했다.

이제 그런 말들 필요 없다.

어머님도 나도 그냥 웃는다.

서로 어떤 맘일지 다 안다.

화장실에서 어머님 변기를 비누로 깨끗이 씻는다. 그리고 어머님을 휠체어에 모시고 나와 서 아침식사를 한다.

설거지를 끝낸 후 어머님 양치를 도와 드린 뒤 다시 침대로 모신다.

아침 일과는 일단 끝났다.

 

 

<그리고 며칠 후- 오늘로부터 3일 전이다.>

 

어머님이 조금씩 걸으신다.

아직은 옆에서 부축해 드리거나 지켜보아야 하지만 그래도 몇 걸음이라도 걸으시는 게 어딘가 싶다.

아침에 한번, 큰 것을 보실 때는 이제 화장실로 가신다.

화장실 들어가실 때 기저귀를 벗겨 드린다.

조심스럽게 변기에 앉혀 드린 후 용무 보실 동안 나는 밖에서 기저귀를 처리한다.

어머님은 치질이 있으셔서 요즘처럼 앉아서 변을 보시면 꼭 좌욕을 하셔야 한다.

따끈한 물을 좌욕기에 받아 드린다. 좌욕하실 때 나는 엉덩이와 앞쪽 부근을 씻어 드린다.

비누칠해서 씻지 않으면 밤새 기저귀에 절은 냄새가 진동한다.

변기에서 용변을 보셔도 내가 할 일은 여전하다.

 

목욕은 전적으로 남편이 해 드린다.

남편은 어머님 냄새를 질색한다.

대놓고 옷 갈아입으시라고 한다.

물론 어머님은 언짢아하시지 않는다.

잘 해 드리려는 마음임을 다 아시니까.

그래도 며느리인 나는 대놓고 그렇게 말씀드리진 못한다.

어제 갈아입었는데 아직 더 입어도 될 것 같다 하시면 그래도 이왕이면 깨끗한 게 더 좋으시잖아요 정도로 말씀드린다.

어머님 무안하시지 않게.

옷을 벗으시는 어머님 표정은 곤혹함으로 찌푸려져 있지만 그 속에 나에 대한 미안함이 숨겨져 있음을 충분히 느낀다.

 

 

어머님 퇴원하신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내가 앞으로 이 일을 얼마나 더 해야 할지는 미지수다.

밤에 혼자 거동하실 수가 없어서 기저귀를 해야 하는데 아마도 그것은 한동안 계속될 듯하다.

그래도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어머님이 다치시기 전에도 사실 이런 일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었다.

예전에 어머님과 나눈 대화이다.

 

<어머님,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제가 어머님 대소변 받아낼 일이 생긴다면 전 마스크 쓰고 비닐장갑 끼고 처리할 것 같아요.

사실 전 제 것도 냄새나고 싫거든요. 어머님도 비위 약하시지요? 저도 비위가 많이 약해요.

그러니 구역질하고 그러는 것보다는 아예 처음부터 마스크 쓰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요. 그래도 괜찮지요?>

 

입이 방정이었나 보다. 정말 그 일이 내게 닥쳤으니.

그런데 막상 당하고보니 비닐장갑까진 괜찮은데 마스크는 차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어머님 자존심 너무 건드릴까 조심스러운 맘에.

어머님이 알아서 미리 그렇게 하라고 하시면 못 이기는 척 하겠지만 어머님은 그때 대화를 잊으셨는지 아무 말씀이 없다.

 

사실은 첫날, 첫 일처리 때 놀랍게도 내 코가 막혔는지 어머님의 그것에서 별 냄새를 맡지 못했다. 어머님은 그 말씀을 듣고 무척 좋아하셨다.

그것에 대해 어머님은 두 가지로 생각하셨을 것이다.

하나는 진짜로 냄새가 안 나는구나.

이 경우는 스스로에 대한 만족이 있을 것이다.

그래, 손주들이 다 그러더라. 할머니한테는 노인 냄새도 안 나고 좋은 냄새 난다고.ㅎㅎ

사실 그런 면도 있다.

노인 냄새, 어머님에게서 나도 맡아본 적이 없다.

다른 하나는 내가 냄새가 남에도 불구하고 어머님 배려해서 그렇게 말씀드리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이다.

이 경우는 며느리에 대한 만족감과 고마움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전화 넣으시며 자랑하셨을 테지.

에미가 내 것은 냄새도 안 난대. 하시며...

 

근데 이상한 일이지, 진짜 냄새가 안 난 것은 처음 딱 한번 뿐이었다.

두 번째부터는 비위가 조금씩 상했다.

더구나 비닐장갑 없이 일처리 하다가 아뿔싸, 내 손에 그것이 묻어버렸던 것이다.

너무너무 당황해서 그 다음부터는 무조건 양 손에 비닐장갑을 꼈다.

비닐장갑 끼고 나니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수시로 보시는 작은 볼일 처리는 이제 척척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이 이력이 나서 수월해지거나 무뎌지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할수록 더 힘들고 더 비위 상하는 것 일 같다.

그렇지만 이 일로 어머님에 대한 감정이 나빠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머님과 나와의 미묘한 거리감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그리고 어머님이 주로 방에만 계시다보니 내가 하는 일에서도 조금은 관심이 덜해진 듯하다. 그로 인해 나는 작지만 고마운 평화를 얻는다.

간섭(?) 받지 않으니 오히려 살림이 야물어졌다.

 

그리고 몇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노인의 삶이란... 하는 것에 대한 생각들.

 

어머님이 나에게 대소변 받아내는 일보다 훨씬 더 고마워하시는 일이 있다.

가려운 곳을 먼저 알아서 긁어 드리는 일이다.

기저귀 차고 계셨던 곳이나 속곳 고무줄 자리 난 곳 등을 골라 긁어 드리면 아유 고맙다 시원하다 탄성을 지르신다.

내 몸 가려운 곳 팔이 맘대로 움직이질 않아 긁지 못하는 신세.

어머님은 당신의 그런 처지가 한탄스럽다.

어머님을 긁어 드리면 후두둑 살비듬이 떨어진다.

나와서 소파에 잠시 앉으셔도 그 밑은 온통 살비듬 투성이다.

검은 바지 입고 그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면 바지가 온통 흰 살비듬으로 뒤덮인다.

그래서 자꾸 청소기를 밀게 된다.

어머님은 그것도 속상하시다.

오일을 발라드려도 잠시 뿐이다.

남편은 어머님 몸에 수분이 모라라서 그런 거라면서 계속 물드시기를 권한다.

어머님은 고역이다.

억지로 물드시기도 고역, 물드신 뒤 연신 소변보시는 것도 고역이다.

이래저래 고역이다.

인체는 노인이 되면서 급격하게 허물어진다. 씁쓸한 현상이다.

그래서 어머님을 보는 내 눈빛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하다.

내게도 노년은 어김없이 올 것이기에.

 

그 서글픈 노년과 나는 지금 온 몸으로 부대끼고 있다.

노년과 부대끼는 이 일. 사실 이 일은 닥치면 누구나 해야 한다.

그리고 해 보면 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이 일은 대단한 일이 된다.

사실 나도 내가 아닌 남이 이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을 봤을 때 참 대단하다 감탄했었다.

뭐, 남이 하는 것은 대단하고 내가 하는 것은 대단치 않다고 말하진 않겠다.

지나친 겸손도 아니고 도리어 이상한 위선같이 비칠 수도 있을 테니.

다만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라도 해 내는 일인데도 우리는 이 일을 대단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고백하자면 내가 치우는 것은 어머님 똥만이 아니다.

우리 집 강아지 막둥이 것도 있다.

그런데 막둥이 똥을 처리할 때면 더럽다는 생각보다 귀엽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리고 지정한 곳에 잘 누었다고 늘 간식을 던져준다.

강아지는 똥을 누고 상을 달라 짖어대는데 웃어른이신 어머님은 용변을 보시면서 주눅 들고 마음을 졸이신다.

나도 막둥이 똥은 상까지 주면서 즐겁게 치우는데 어머님의 그것 앞에서는 자꾸 고개를 돌리고 비위를 상하게 된다. 그러면서 반성하곤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상하게 똥이나 오줌은 강아지보다 사람의 것이 더 비위에 거슬린다.

 

어머님을 시중들면서 새삼 느끼는 것이 나도 사람이지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은 참 더럽구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적나라하게 본다는 것은 참 씁쓸한 일이구나 하는 것이다.

 

힘들다, 힘들지 않다를 떠나 어쨌든 이 일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도 나는 결론적으로 훌륭하게 이 일을 해내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본능적인 거부감 말고는 그래도 마음을 다해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근본적인 생각은 이런 것이다.

 

지금 누워 있는 사람이 나라면.

 

이 생각이 한번이라도 더 어머님 방으로 향하게 하고 어디 불편하신 게 없는지 여쭙게 만든다. 이 생각이 어머님 말씀하시기 전에 미리 가려운 곳 찾아서 긁어 드리게 만드는 것이다.

 

다리 벌리고 치부를 다 보여주는 일. 처음에는 얼마나 한심하고 서러울 것인가.

내 몸뚱이 내 손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또 얼마나 절절할 것인가.

누군가에게 맡겨도 마음 쓰이고 애간장 타는 그런 마음 고단한 일.

 

때문에 이 일은 조금만 더 정성을 기울이면 하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더 장하고 대단한 일이 되는 것이다. 하나를 하고도 열의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일.

속된 말로 남는 장사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이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맘까지 갖곤 한다.

마음의 평화 때문인지 얼굴에 살도 살짝 오른 느낌이다.

어머님 힘드신 것만 아니라면 분명 이 일은 나에게 축복이다.

 

그리고 하나 더 공치사하자면 내가 묵묵히 해내는 이 일이 정말 많은 이들에게 평화를 준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있는 것에 대한 감사에는 둔하지만 없는 것에 대한 불편에는 매우 민감하다.

내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짜증내고 불편하게 해 드린다면 다른 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

엄마가 맘에 걸려 하루가 백년 같고 매우 우울한 시간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최대한 힘든 내색 하지 않는다.

마치 원래부터 이런 일 해 왔던 사람처럼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조용히 해 내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안절부절 미안해하던 가족들이 지금은 많이 편안해하고 느긋해진 것 같다.

이 정도면 얼마나 큰 선물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대견하다.

내 하는 일이 진짜 대단한 일 같다.

정말 여러 사람 살리는 일이니까.

 

별일 아닌 일이 대단한 일로 승화되는 이 일은 그래서 신난다.

보람이 느껴진다.

 

<참고로 나는 이 글을 올리는 동안에도 어머님 소변을 세 번 받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