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주어진 생이란 것이
애당초 내딛고 싶지 않은 첫걸음을 떠밀려 딛는 것과 같다.
그 앞에 놓인 삶이란 멈추지 않는 일방통행 에스컬레이터 같아
어떻게든 앞으로만 나아가야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에스컬레이터는 문득 멈춰 서고 이제부턴 네 의지야 등을 떠민다.
눈앞엔 수 갈래 길이 놓여 있지만 그 닿는 곳이 어딘지는 알 길이 없다.
몰라도 나아가야 하는 것이 운명이란 소리를 듣고 허둥거리는 움직임엔 실은 내 의지가 없다.
그렇게 얼떨결에 선택되어진 하나의 길.
길 위에서 만나는 숱한 시간들이 마냥 버겁기만 해도 결코 멈출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잔인하고도 두려운 길.
누가 나를 이 길로 떠밀었나.
분명 내 의지란 없었다.
잠시 둘러본 세상은 정말 많은 길들이 있고 다들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탄탄대로 훤한 길 걷는 저 이는 자신의 의지가 있었던 걸까
저기 울퉁불퉁 험한 길 위,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저 이도 자신의 의지가 있었던 걸까.
가도 가도 끝없는 길 위에서 혼자 묻는다.
혼자 물으면서 억울하다 생각한다.
지금 이 길, 정말 싫거든.
이젠 내 의지로 한번 살아보고 싶단 간절함이 솟구쳐
뒷걸음질 치고 몸부림도 쳐 보지만 길은 나를 내려주질 않아.
나도 누군가처럼 괜히 넘어지고 또 넘어지기만 할 뿐.
물은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법이라며 똑똑한 자는 말한다.
그 자의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린다.
더구나 법이라니 지켜야 하는 법.
법을 지키니 차라리 편안하다.
진즉에 그냥 내 길에 순응할 것을.
출렁출렁 물길에 이 몸 맡기니 뾰족한 돌에 찍히기도 하고 커다란 바위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그거야 상처 아물면 그뿐.
누군가의 속살거림이 들리는데
아, 글쎄 이 길이든 저 길이든 닿는 곳은 한 곳이라네.
출렁출렁 그 곳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