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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전에 나도 도움을 받았으니


BY 살구꽃 2020-12-01

호적만 부부로 사는 우리  시부모님. 지난번에 친정 모임하던날에 시아버지가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연락을 받고 다음날에 남편만 병원엘 다녀왔다.
어차피 보호자 한명만 면회가 되니까. 호적상 보호자가 남편이라서 수술동의서도
남편이 써야하니. 가볼수밖에 없었다.

아버님이랑 사는 사람들은 사실상 법적으론 아무사이도 아니기에,그냥 동거인이지.
그래도 아들이라고 중환자실에서 남편을 찾더란다.

지금까지 남남처럼 살아왔고, 몇년전에 아버님이 우리집에 서너번 정도 다녀가시곤
아버님 본지도 벌써 몇년이 되었지만. 내일 요양병원으로 퇴원을 하신다는 연락을 오늘받았다.

병원비가 150정도 나온다는 연락을 그쪽에서 받고. 병원비 낼돈이 부족해서 연락해서
남편하고 상의하려고 그랬던 모양이다. 나도 짐작은 하고있던 일이라서..
병원비를 조금 보태야될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 생각은  하고있던거다.

100만원쯤 보태야 하나 얼마를 보태게 될까 나도 돈도 없는데 걱정을 하고있던터라.
오늘 80만원 아버님 보호자 쪽으로 내가 보내줬다.
남편도 그러는거다 예전에 우리도 아버지께 도움을 받은게 있으니  100만원 보내주라는거
내가 80만원만 보내준다했다.

 그리 보내주면 이사람아 우리가 돈이많아 그리보낸줄 알거라고.
그랬더니 남편도 암말 안한다, 울아들 낳을때 그때 아버님이 200을 보내주셨던가 그랬다.

그때 너무 감사했던 기억이 있어서. 93년도에 울아들 낳고 아들놈 인큐베이터 들어가 있을때였다. 미숙아로 낳아서 그랬던거다. 우리도 돈도없고. 그랬을때 아버님이 돈을 보내줘서,
남편 작은아버지께 어떻게 연락을 받고 그렇게 우리를 도와주려고 그래도 아버지니까
자식에게 도움을 주려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감사한일이지.

사람이 은혜를 입었으니. 갚는다 생각하고 생각지도 않던 돈이지만, 보태드렸다.
아버님이 몇년전에 우리집에 칮아와서. 천만원을 맡겨두려고 했었는데.남편은 싫다고
이걸 왜 나한테 맡기냐고, 그쪽에 같이사는 보호자에게 맡겨야 하는거라고 그리고 아프게되면 관리 받으라고 우린 거절했던거다.

 그쪽에 확인해서 오늘 물어보니 처음듣는 소리라 하니.
아버님이 돈을 그쪽에 맡기지않고 지금껏 가지고 있는건지. 맡겼는데 그쪽에서 다쓴건지
아버님이  아직 회복이 덜되서 나중에 물어봐야 정확히 알겠지만,그런일이 있었다고
그쪽에도 알렸으니 아버님 정신 제대로 회복하면 물어봐서 이젠 알아서 하라했다.

남편은 이미 그쪽에 말은 해놨단다. 나는 아버지 돌아가셔도 상주 노릇은 못하고. 조문은 하러 올거라고..그래서 내가 그말을 듣고. 그래도 참 호적상엔 아들인데 안가면 모를까..ㅠ
가서 조문만 하고 온다는게 좀 그렇잖아. 참 골아픈 족보다.

 나중일은 나중에가서 봐야아는 일이니 나는 신경 꺼야지, 시엄니는 알면 난리칠테니..나중에 죽더래도 몰래 남편은 가봐야 하려는지 알수가없다,,그래도 핏줄인데. 부부야 뜻이 안맞아 따로 살더래도.부부가 오손도손 살지못하고..ㅠ 친정엄마도 그렇고.시엄마도 그렇고 두분다 팔자가 쎄서 그런건지..ㅠ 서방복이 없으니 어쩌겠나.그저 팔자려니 해야지..ㅠ

여자는 자고로 서방복이 최고인데. 자식이 아무리 잘한들 남편 그늘만 못하다고 하지않나.
자식들에게 참 본보기가 못되고 골치아픈 족보만 꼬이게 만들어놓은 부모님들..ㅠ
친정이나 시댁이나  부모들이 어리석고 모지라서 그런걸 어디가서 참 말하기도 챙피한 가족사다. 이 또한 내 기구한 팔자려니하고 살어야지 어쩌겠나...팔자도망은 못한단다.

그래도 천만 다행인게 내 팔자가 울엄마 팔자를 안닮은게 그나마 천만 다행이다.
어제 셋째오빠가 엄마를 요양원가서 보고 온 모양이다. 사진을 찍어서 내게 보내줬는데
사진을 잠깐보고 얼른 닫었다, 엄마 사진을 보면  눈물이나려해서 사진을 나는 오래보지 않는다 아버지랑 엄마랑 요양원서 찍은 사진이 핸드폰에 여러장 있지만. 일부러 피한다.

사진을 보고있으면 불쌍해서 눈물이 나려하니까. 아버지 못난 아버지. 인물값 하느라 그랬나.
울엄마 가슴에 대못박고, 자식들 가슴에 피멍이 들은지도 모르고 한량처럼 살다가
내 가슴에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남자에대한 안좋은 기억만 남게해줘서. 하나도 내 인생에
도움도 안됐던 어리석은 양반, 이미 작년에 돌아가셔서 세상에 없지만..

나의 꽃같던 청춘에는 아버지가  원망의 대상이었고. 징그럽고 싫었던 기억뿐이다.
결혼하면서 용서하고 어쩔수 없이 받아드릴수 밖에없던 내 못난 아버지.

얼른 엄마좀  데려가라고해도. 안데려 가시네.ㅎ 닭띠.개띠 만나서 원수로 살았던 양반들.ㅎ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결국엔 아버지는 외도해서 작은부인 거느리고 첩의자식까지 두고 살다가 이복형제도 만들어주고 가신 양반이다.

요양원에서 10년을 사시다 가신지가 2년이 돌아오고있다, 이젠 원망도 부질없어 안한지 오래고.ㅎ 진짜 아버지 원망 많이도 하며 젊은날 내 영혼을 갉아먹으며.맘고생 했던 생각을하면.ㅎ
내가 어리석었구나 싶다.

진짜 방황 많이하던 젊은날에  내 청춘. 내 방황의 원인 제공자 였던 우리 부모였다.

 어쨋든 그래도 나는 성실한 남편 만나서 여자 문제로 속썩는일 없이
아들하나 낳고 세식구 그래도 오손도손 잘살고 있으면 된거지. 그렇게 맘을 비우며 살고있다.